[비즈한국] 애플과 삼성의 경쟁 구도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다. 애플이 혁신적인 기술이나 제품을 내놓으면 삼성이 재빨리 쫓아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구도는 깨진 지 오래다. 삼성이나 그 외에 기업이 먼저 도입한 기술이나 디자인이 1~2년 후에 아이폰에 적용된 사례는 이제 무수히 많다. 이를 두고 애플에 우호적이지 않은 진영에서는 이제 더 이상 혁신이 없는 기업이라는 비난마저 나온다.
하지만 팀 쿡 CEO 아래 애플은 ‘퍼펙트 팔로어(Perfect Follower)’로 거듭났다. 애플의 이 같은 전략은 경쟁사들이 애플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도입한 몇몇 기능 중 시장성이 검증된 것들을 뽑아내 애플 특유의 방식과 완성도로 앞선 제품보다 더욱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베젤(테두리)을 극단적으로 줄인 디스플레이 디자인을 비롯해 무선충전, 방수방진, 듀얼카메라, 증강현실(AR) 등이 그것이다.
‘아이폰X’는 이러한 전략의 결정체다. 아이폰X의 대표적인 특징들은 얼핏 보면 어느 것 하나 크게 새롭지 않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이폰X가 매력적인 제품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 그간 전례를 감안하면 아이폰X 역시 꽤 많이 팔릴 제품이다. 가격이 역대 가장 비싼 999달러로 책정됐음에도 그렇다.
# OLED로 완성한 슈퍼 레티나 디스플레이
아이폰X는 LCD가 아닌 OLED 디스플레이 패널이 탑재된 최초의 아이폰이다. OLED에 대한 사용자들의 호불호는 크게 갈리는 편인데, 아이폰이 삼성 제품과 달리 OLED가 아니라서 쓴다는 의견도 제법 많다. 게다가 애플 입장에서도 질 좋은 중소형 OLED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경쟁사인 삼성전자밖에 대안이 없다는 점이 불안요소로 지적된다. 벌써부터 OLED 부족으로 인해 아이폰X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아이폰X에 OLED 패널 채택은 불가피하다. 베젤리스 디자인에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베젤리스 디자인은 샤오미,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일찌감치 시도해 호평을 받으며 이미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애플은 슈퍼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두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초로 아이폰의 기준을 충족할 만큼 품질이 크게 향상된 OLED’라고 설명한다. 바꿔 말하면 그동안 OLED를 채택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들이 만든 기준에 충족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설명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자기합리화는 숨어있다. 실제로 OLED는 수년 전부터 LCD의 스펙을 크게 앞질렀기 때문이다. OLED는 완벽한 검정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명암비를 크게 높일 수 있고, sRGB, P3 등 색영역 측면에서도 전문가급 모니터 못지않은 구현이 가능하다. HDR 기술이 주목받는 요즘 분위기도 OLED에 무게가 실린다.
그간 애플은 LCD 패널을 가지고 아이폰을 비롯해 아이맥, 맥북 프로 등 각종 제품에서 최고 수준의 화질을 뽑아내는 세계 최강의 기업이었다. 그러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LCD보다 진보한 OLED를 채택한 아이폰X의 디스플레이는 10주년을 장식하기 충분해 보인다.
# ‘보안의 완성은 얼굴’ 페이스ID
요즘 대부분 스마트폰에 도입된 ‘지문인식’은 스마트폰의 핵심 생체보안 기술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더욱 발전시킨 디스플레이 지문인식 기술을 애플과 삼성 중 누가 먼저 도입하는가에 관심이 모아졌다. 삼성은 후일을 기약했고, 애플은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바로 안면 인식 기술인 ‘페이스ID’다.
안면 인식 기능 역시 아이폰X가 최초가 아니다. 삼성 갤럭시S에도 안면 인식 기능이 탑재돼 있고, 사용 방식이 비슷한 홍체 인증도 있다. LG전자도 자사 제품에 비슷한 기능을 탑재했다. 하지만 이는 아이폰X의 페이스ID와 질적으로 다른 기술이다. 갤럭시S에 탑재된 안면 인식 기능은 실제 얼굴이 아닌 사진으로도 쉽게 무력화된다. 삼성도 이를 알기 때문에 편의 기능으로만 안내한다.
반면 아이폰X의 페이스ID는 안면 정보를 3D로 읽어내기 때문에 사진으로는 인식이 불가능하다. 아울러 머신러닝 기능이 더해져 노화와 같은 얼굴의 변화를 스스로 학습한다. 그래서 짙은 화장이나 변장을 하더라도 얼굴을 제대로 인식한다는 것이 애플의 주장이다.
아이폰X는 페이스ID에 ‘올인’한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폰X 전면 상단에는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이라고 명명된 적외선카메라, 투광 일루미네이터, 도트 프로젝터가 있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역시 페이스ID의 머신러닝 기술에 최적화 된 ‘A11 바이오닉’ 칩이 탑재됐다.
아이폰X는 페이스ID 구현을 위해 불가피하게 상단 카메라 영역의 디스플레이를 도려내야 했고, ‘탈모 디자인’이라는 웃지 못할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얻은 것이 더 많다. 어떠한 액션 없이 자연스럽게 본인인증을 하고, 이모티콘에서 더 진화한 ‘애니모티콘’ 기능으로 더욱 풍부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 특히 앱 개발자들이 애니모티콘과 관련된 API를 활용해 만들 창의적인 앱도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관건은 인식률이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시연 영상을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이전 아이폰에서 홈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문이 인식되듯, 사용자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이 인식되는 수준이라면 페이스ID는 성공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 ‘설마 공진?’ 무선충전 그리고 고속충전
애플이 드디어 아이폰에도 무선 충전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해 무선충전컨소시엄(WPC) 총회에 깜짝 참석했을 때 충분히 예상된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애플이 5W급 Qi 규격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애플은 Qi 표준 대열에 합류하면서 독자적인 기술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내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힌 ‘에어파워’가 그것이다. 원래 자기유도 방식의 Qi 규격은 동시에 3개의 제품을 동시에 충전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렵다. 또 충전 중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도 안 된다. 그런데 애플은 Qi 표준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와 관련해 WPC 주요 회원사인 코마테크의 정상문 실장은 흥미로운 가설을 내놨다. 애플이 도입한 Qi 규격이 기존 자기유도가 아닌 공진 방식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정 실장은 “Qi 규격에도 공진 방식이 있는데 아직 표준이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라며 “공진의 경우 내년에 본격적으로 표준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은데, 애플이 에어파워를 내년에 출시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고속충전 역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는 퀄컴의 퀵차지 기술을 중심으로 이미 대중화된 지 오래다. 하지만 애플은 그동안 고속충전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원래 전반적인 충전 속도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앞섰고, 고전류를 지원하는 아이패드 충전기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아이폰X에 30분 충전 시 배터리의 50%가 충전되는 고속충전 기술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아쉬운 점은 고속충전을 위해서 별도의 액세서리를 사야 한다는 점이다. 애플이 직접 만든 액세서리는 결코 저렴하지 않다.
아이폰X는 지난 10년간 전 세계에 출시된 모든 스마트폰의 최신 기술이 빠짐없이 전부 집약된 스마트폰이다. 그래서일까. 가격에서도 새로운 장을 열었다. 64GB 모델 기준 999달러. 256GB 모델은 소비자들이 충격을 받을 것을 걱정했는지 이번에는 아예 공개하지 않았다. 그간 애플코리아의 국내 판매정책과 최근 환율을 감안하면 약 127만 원 전후의 가격이다.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 소비자가 외면할 것이라는 분석보다, 오히려 애플의 영업이익을 더욱 높여줄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만약 아이폰X이 흥행한다면 애플과 팀 쿡 CEO의 퍼펙트 팔로어 전략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
삼성 '갤럭시노트8'은 어떻게 다시 강력한 폰이 되었나
·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 스타트업'을 입는다
·
전 세계 휴대폰 도감청 몸살, '통신보안' 전쟁 속으로
·
'JPG 눌러버려' 구글-애플 이미지 압축 전쟁
·
'디스플레이 지문인식'이 뭐길래, 삼성·애플이 사활 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