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발 ‘한반도 전술핵무기 재배치론’이 나오면서 국내에서도 전술핵 논란이 뜨겁다. 청와대는 최근 ‘한반도 비핵화’라는 기존 입장을 공식화했지만, 국회에서 정치 쟁점화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군 내부 일각에서 별도의 전술핵 논란에 대한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를 유지하면서도 북핵 억제력을 갖추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이다.
미국에서 전술핵 재배치 검토가 거론된 건 북한 6차 핵실험 직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9월 3일 소집한 국가안보회의(NSC)에서였다. 북한에 대한 외교적 압박과 선제 타격, 핵무기 사용 등 대응방안이 폭넓게 논의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요청할 경우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하겠다”라는 발언이 나왔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수십 년간 금기시해온 전술핵 재배치를 논의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국내로 옮겨왔다. 정치권 일각에선 전술핵 재배치를 위한 ‘천만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여‧야 각 당은 최고위원 회의 등에서 찬반 의견을 내놓으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청와대가 9월 11일 춘추관에서 “변한 게 없다”며 공식적으로 재배치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줄지 않고 있다.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논의는 북한과 대화가 재개돼도 김정은 체제가 생존과 직결된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분석에서 나왔다. 한반도 비핵화를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개발로 군사적 균형이 기울어진 만큼,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해 ‘공포의 균형’을 찾는다는 게 트럼프 외교안보팀의 구상이다. 중국 측 압박 카드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전술핵 재배치에 이르기까지 현실적 난관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개발 명분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가 체결한 군축협정을 깨야 하는 위험까지 안고 있다. 사드 배치를 두고 국내‧외에서 발생한 갈등을 볼 때, 더 큰 논란이 촉발될 가능성도 높다.
이와 관련, 군 내부에서 새로운 대안이 제시된다. 이른바 ‘비핵 공포의 균형’이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군사적 측면만 고려하면 전술핵 재배치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도입은 어렵다”며 “비핵 공포의 균형은 북한의 핵무장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군 안팎의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비핵 공포의 균형’이란 국군이 ‘핵무기에 버금가는’ 자체 전력을 갖추면 비핵화를 유지하면서도 군사적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정호섭 전 해군참모총장이 포럼 등에서 이 개념을 사용한 것을 비롯해 군 내부에서 꾸준히 거론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번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군 내부에서는 ‘비핵 공포의 균형’ 논의가 봇물 터지듯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의 기존 전략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돼 있다. 한-미 군사훈련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핵실험으로 기본 전제가 깨진 것”이라며 “군 내부에선 심각한 군사적 비대칭이 현실화됐으며, 기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도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2016년 9월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에서 파괴력을 10~20kt으로 추정했지만, 이번 6차 핵실험은 10배가 넘는 282kt으로 추정한다. 사실상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핵무기에 버금가는 전력의 대안으로 ‘미사일’이 꼽힌다. 북한의 핵공격 징후가 감지되면 다량의 미사일을 동시다발적으로 발사해 거점을 타격하는 방식이다. 한 거점에 적게는 100발부터 최대 1000발의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하는 식이다. 단순 계산해 미사일 한 발의 위력을 1kt로 보면 핵무기와 맞먹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사일 도입 방안 역시 군 내부에서 수차례 논의된 내용이다. 2008년 권태영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전 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도 논문을 통해 ‘미사일 1만 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권 박사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북한의 공격 징후가 포착되면 주요 시설에 다량의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하는 방식”이라며 “수십 년 전부터 논의가 활발했다. 핵무기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다량의 미사일이라는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다량의 미사일 보유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우리 군의 기존 계획을 대폭 수정하지 않더라도 도입과 운용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정창욱 예비역 공군 소령도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다량의 미사일 도입은 새로운 전략이 아니라 현재 운용되고 있는 킬체인(Kill Chain:타격순환체계, 선제타격 등 공격형 방위 수단)과 KMPR(대량응징보복, 평양을 구역별로 나눠 북한 전쟁지휘부를 타격하는 작전)의 확장으로 보면 된다”며 “미사일은 사거리에 제한이 있고, 표적을 전략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 재래식 무기에 속해 주변국에서 반대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략 수정이 필요하지만, 기존 군부대에서 이동식 발사대 등을 통해 운용할 수 있다. 사드와 달리 새로운 지역에 배치할 이유도 없다. 국내‧외 갈등을 최소화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군 내부 관계자 역시 “△수천 발에 달하는 다량의 미사일을 한꺼번에 발사할 수 있는지 △정밀한 거점 타격이 가능한지 △ 연속 발사가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답은 ‘가능하다’. 이미 전력을 갖추고 있으며 일부 계획을 수정하면 충분히 운용 가능해 보인다”라고 전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군이 보유한 탄도미사일의 탄두 중량 제한 해제에 합의하면서 미사일 도입 의견에 힘이 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군 관계자는 “한-미 미사일 통제지침 등을 보면, 사거리와 탄두 중량에만 제한이 있었다. 수량에 대한 제한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비핵 공포의 균형’은 역대 정부들이 이어온 ‘강 대 강’ 대치 반대 입장과 다른 아이디어다. ‘핵무기에 버금가는’ 전력을 갖추는 것 자체가 핵무기 도입과 크게 다르지 않아, 북한은 물론 주변국까지 자극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한반도의 기존 안보전략의 핵심은 북핵 억제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 동맹, 주변국과의 외교적 합의,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에 방점을 뒀다”면서도 “최근 과정을 보면 위협은 커지고 북핵 억지력은 낮아졌다. 미사일은 공격 수단이 아닌 억제력 강화 측면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술핵은 미국에 결정권이 있지만 미사일 운용은 우리나라에 결정권이 있다. 자주적인 운용 체계다. 북핵과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단어도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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