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여름, 아시아 내 긴장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었다. 동북아에서는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정세가 요동을 쳤고, 남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인도가 히말라야 고원 도클람 지역에서 두 달간 무장 대치하며 군사적 긴장감을 높였다. 남으로 북으로 아시아는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상태였다.
금번 인-중 국경갈등은 1962년 인-중 전쟁 이후 55년 만에 최장이자 최악의 일촉즉발의 대치였다. 남아시아를 전쟁위기로 몰아간 이 국경분쟁의 발단은 중국군의 도클람 지역 내 도로 건설 시도였는데, 이 지역은 부탄-중국 간 영유권 분쟁이 있어 왔던 곳이다.
도클람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인도가 1949년에 체결된 인도-부탄 간 우호조약을 근거로 즉각 병력을 투입하여 중국군의 공사를 저지하였으니, 이 지역을 실효지배하고 있는 중국은 이를 영토 침입 행위로 간주하며 반발하였다.
하지만 인도의 입장은 달랐다. 도클람은 인도 본토와 동북부 7개 주를 잇는 폭 20km의 실리구리 회랑을 지척에 두고 있는 매우 중요한 전략요충지다. 인도는 도클람 내 중국의 도로 건설을 자국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병력을 파견해 대응한 것이다. 인도 외교부는 6월 30일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중국의 도로 건설은 도클람 지역의 현 상태(status quo)를 변경을 의미하며 인도에게는 중대한 안보적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인도-중국 양국군이 도클람 지역에서 아슬아슬한 대치 상황을 이어가고 있는 동안 양국 정부와 언론은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등 연일 강도 높은 경고를 주고받았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모디 인도 총리는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미소 지으며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하였지만, 양자회담은 개최하지 않으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8월 중순에는 히말라야 산맥 서부에 위치한 또 다른 국경 분쟁 지역인 라다크 지역에서 인-중 양국군 간 난투극이 벌어지며 다른 국경으로 확산되며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증폭되기도 하였다.
인-중 관계가 항상 나빴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실리주의를 내건 모디 인도 총리는 2014년 취임 직후 그간 서먹한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뛰어들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모디 총리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인도를 방문했다. 시진핑 주석과 모디 총리는 2014년 9월과 2015년 5월 상호 방문 시 서로의 고향으로 초대하며 우의를 다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은 2016년 6월 서울에서 개최된 원자력공급국그룹(NSG)의 제26차 총회에서 인도의 원자력공급국그룹 가입을 반대했고 유엔에서 파키스탄 무장단체 자이시-에-모하마드(Jaish-e-Mohammad)의 수장을 테러리스트로 지정코자 하는 인도의 노력을 저지했다.
이에 질세라 인도는 미국 및 일본과의 협력관계 강화에 공을 들였고, 지난 4월에는 달라이 라마의 아루나찰 프라데시 방문을 승인하는 등 양국 관계는 다시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금번 도클람 사태는 단순 영토분쟁을 넘어 지역 내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인-중 간 파워게임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티베트를 포함 히말라야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코자 하나 인도와 가까운 부탄이 항상 골칫거리였다.
부탄은 1949년 인도와 체결한 우호조약으로 인도의 안보·외교·경제적 지원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으며, 중국과 아직 수교도 맺고 있지 않다. 인도가 영토주권 침해를 이유로 지난 5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일대일로 정상회의에 불참했을 시, 부탄 역시 불참을 통보했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부탄의 일대일로 정상회의 불참을 녹록지 않게 본 중국이 인도와 부탄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이번 사태를 야기했다고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도클람 지역을 둘러싼 인도와 부탄의 이해관계는 상이하다.
중국은 2005년 다른 분쟁지역 내주고 도클람을 대가로 얻는 패키지 딜을 부탄에 제안하였고, 경제협력 가능성이 높은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코자 했던 부탄은 중국의 제안을 받아드리려 했다. 그러나 도클람을 중요한 전략요충지로 간주하는 인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부탄에 군대를 파견한 인도의 전례 없는 선제 조치를 두고 다른 분석도 나오고 있다. 6월 26일 인-미 정상회담을 앞둔 인도가 대중(對中) 견제 파트너로 충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미국에게 보여주고자 함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인도와 미국은 중국을 겨냥해 12년을 끌어온 군수지원협정을 체결하고, 국방협력 관계를 ‘주요 국방 파트너’로 진전시킨 바 있다. 그리고 미국은 지난 6월 정상회담에서 비 나토(NATO)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인도에 무인기 ‘가디언’ 22대를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추구하던 인도가 미국과 손을 맞잡고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기로 한 것이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인-중 국경갈등이 8월 말 양국이 병력을 철수시키는데 합의하며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디 총리는 9월 3(일)~5일(화) 중국 샤먼(廈門)에서 개최된 9차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했으며, 시진핑 주석과 양자회담을 개최했다.
브릭스 정상회의라는 국제적 행사를 앞두고 양국은 모디 총리가 불참하거나 혹은 참석하더라도 어색하게 만나는 상황을 피하기 우선 급한 불을 끈 것이다. 하지만 우방전선 구축을 위해 물밑 외교전이 여전히 치열하게 벌여지고 있으며, 도클람 사태를 포함 여러 사안에 대한 인-중 간 온도차는 줄어들고 있지 않다.
동북아를 넘어 인도와의 협력을 강화코자 하는 문재인 정부에게 있어 인-중 간 갈등 심화는 큰 딜레마를 안길 수 있다. 또한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현안인 북핵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정도로 아시아 내 외교·안보지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불확실성 시대에 재빠르게 전략적으로 대처할 준비가 되었는지 다시 한 번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박소연 국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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