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청와대는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며칠 전만 해도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금감원장 내정자로 분류됐지만 하루아침에 최흥식 금감원장 임명이 이뤄진 것. 그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까지 금감원장에는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일부 언론에는 내정자라고까지 보도됐다. 금감원에 대한 감사원의 강도 높은 감사가 이어지고 국장급을 비롯해 수십 명의 금감원 직원 비위 사실이 포착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시기였다. 금융권에서는 13일 김수일 부원장보의 채용비리 선고공판 결과가 나오고 감사원이 금감원 감사결과를 발표하면 적폐 청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때맞춰 김 전 총장을 임명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급부상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김 전 사무총장이 금감원장으로 오는 것을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노무현 정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김 전 사무총장은 문재인 대통령 선거캠프에서도 활동해 현 정부에 지분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김조원 전 사무총장이 금감원장으로 오면 금융위원회와 어깨를 나란히 할 금융감독위원회를 만들 수도 있다고 봤다”며 “그만큼 금감원 입김이 세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금감원 노동조합은 이례적으로 4일 성명을 내고 김 전 사무총장의 임명을 촉구했다. 이 성명에서 “김 전 사무총장은 공직 대부분을 감사원에서 보냈는데 이런 경력은 금감원이 워치도그(watch dog·감시견)로 다시 태어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평가했다. 금융관료 몫으로 여겨지던 금감원장 자리에 힘 있는 인사가 오면 기관의 목소리가 세질 것으로 평가한 셈. 김 전 사무총장은 행시 22기로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 최종구 위원장보다 기수로도 선배다.
결정적으로 4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김 전 사무총장에 대해 “금융 문외한이 아니다”고 발언해 사실상 김 전 사무총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각 정부 기관에서도 김 전 사무총장이 금감원으로 가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뀐 것은 6일 오전 최흥식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가 금감원장 내정자로 급부상하면서다. 당일 오전만 해도 긴가민가하던 분위기는 금융위 정례회의에 최흥식 금감원장 임명 의결이 급작스럽게 안건으로 올라오며 반전됐다. 금융업계 관계자들도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진웅섭 전 금감원장의 퇴임식이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번갯불 인사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전해진다. 당초 금감원장을 두고 김조원·최흥식 후보가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금융 전문성 면을 고려해 최흥식 금감원장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최흥식 신임 금감원장은 실무경험이 풍부한 금융 전문가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노무현 정부 때 한국금융연구원장을 지내고 연세대학교 경영대 교수로 일했다. 2010년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 발탁돼 하나금융그룹에 영입됐다. 2012~2014년에는 하나금융지주 사장을 지냈다.
하지만 최흥식 금감원장 인선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피감기관인 하나금융지주 사장을 역임한 최 원장이 금융감독기구의 수장을 맡음으로서 금감원의 독립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금융당국 출신 인사는 “김승유 회장과 연을 맺었던 인사가 신임 금감원장이 돼 하나금융으로서는 금감원에 지분이 생긴 셈”이라고 말할 정도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최 원장 임명에 반대하는 입장을 연이어 발표했다.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하던 시기 금융지주 사장으로 재직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타 대표는 “하나금융과 김앤장 핵심인 이헌재 사단의 최흥식 전 하나금융지주 사장이 금감원장이 되면 금감원은 그 존립 이유가 없다”며 “차라리 금감원을 해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최흥식 금감원장의 오랜 인연을 두고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장하성 실장과 최흥식 원장은 경기고 1년 선후배 사이다. 1994년 한국증권학회에서 ‘한국 주식시장에서의 주가변동 특성과 계절적 이례현상에 관한 연구’ 논문 집필에 공동 참여했다. 둘이 함께 서울파이낸셜포럼(SFF)의 개인회원으로 몸을 담고 있기도 했다. 서울파이낸셜포럼은 민·관·학을 막론한 금융계 인사로 구성된 비영리 포럼이다.
정치권에서는 7월부터 계속된 청와대의 금융권 인사검증에서 불거질 문제가 없는 후보에게 금감원장 자리를 줬다는 풀이도 나온다. 최 원장은 지난 3월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24억 9651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그는 다주택을 보유하는 과정에서 갭투자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유력 후보였던 김 전 사무총장은 재산형성 과정에서 더 큰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조심스레 흘러나온다.
금융투자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이번 금감원장 인선은 정치권발 내리꽂기”라며 “안철수 라인인 장하성 정책실장이 내는 목소리를 여당이나 청와대에서 수용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장 실장은 정권 창출에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탕평책을 위해 모셔온 인사인 만큼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
금융당국 관계자는 “막 임명된 만큼 신임 금감원장에 대해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민간 출신에서 오는 것이 낯설긴 하지만 장점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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