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99패를 하더라도 마지막에 1승을 하면 그 기억이 끝까지 간다. 종일 기분이 안 좋아도, 자기 전에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행복하게 잠들 수 있다. 첫 화가 아니라 최종화가 드라마를 완성하듯 말이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짜 웃는 자라면, 스타리그의 역사에서 진정한 승자는 허영무다. 최후의 스타리그를 우승한 마지막 우승자이자 최후의 프로토스이기 때문이다. 지난 편의 정명훈과 더불어 스타리그의 마지막에 절정의 기량을 보여줬고 역대 우승자 중 최고령이라는 기록을 지닌 허영무를 알아보겠다.
허영무의 끝은 창대했으나 시작은 미미했다. ‘삼성전자의 숨겨진 카드’, ‘송병구를 잇는 삼성전자 프로토스’ 등으로 불리며 팬들의 기대를 받았으나 프로리그에선 연패를 거듭했다. 허영무가 처음으로 가진 별명은 허영무는 필패카드라는 뜻을 가진 ‘허필패’였다.
그럼에도 팬들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이유는 그의 전지전능한 대테란전 플레이 때문이었다. 허영무가 허필패를 탈출해 하느님과 합성한 ‘허느님’이란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부터다. 많은 팬은 이윤열의 탱크 부대에 하늘을 가득 채운 사이오닉 스톰으로 맞선 혈전을 기억한다.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인데, 이때부터 허영무는 테란 잡는 귀신으로 불렸다. 실제로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세 번의 준우승을 하는 등 개인리그에서의 활약도 매서웠다.
세 번의 준우승을 기록한 이후 허영무는 기록적인 연패의 늪에 빠졌다. 2010년 중반부터 후반까지 기나긴 슬럼프 동안 허영무는 패배의 왕이란 뜻을 가진 패왕이라 조롱받았다. 개인리그는 32강과 16강을 전전했고, 프로리그 1라운드에선 전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즈음 허영무는 팬들을 “게임을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라 지칭해 논란을 일으켰다. 결승전을 드나들던 허영무에서 패배의 왕, 그리고 팬들과 싸우는 선수로 전락해버렸다.
이 모든 게 담금질이었을까. 패배의 아이콘이던 허영무는 2011년을 기점으로 귀신같이 각성했다. 진에어 스타리그 2011에서 허영무는 당시 신이라 불리던 이영호를 이기고, 팀 선배인 송병구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당시 2회 연속 우승을 노리던 정명훈. 5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허영무가 우승컵을 쥐었다. 예선을 전전하던 선수가 와일드카드를 거쳐 당시 내로라하는 선수를 꺾고 우승하는 이야기는 이제 소년만화 시나리오로도 쓰이지 않는다. 근데, 그걸 허영무가 해냈다. 허영무는 곧이어 개최된 온게임넷의 마지막 스타리그 티빙 스타리그 2012에서도 우승을 거두어 스타리그를 2회 연속 우승한 최초이자 최후의 프로토스가 됐다.
2007년에 데뷔해 2012년에 스타크래프트 1 커리어가 끝났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선수 생활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굴곡진 커리어였다. 2회 우승과 3회 준우승이란 커리어 옆엔 필패카드와 패배의 왕이라는 오명이 놓여 있었다. 그 누구보다 아래로 추락했고, 더할 나위 없이 위로도 올라가봤다. 허필패에서 최후의 프로토스로 남은 선수, 허영무였다.
구현모 알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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