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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시작,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황야의 무법자·석양의 건맨·석양의 무법자 차별화 된 서부극…엔니오 모리꼬네의 환상적 음악까지

2017.09.06(Wed) 21:33:31

[비즈한국] “위대한 서부극을 만든 감독들은 상당수 유럽 출신이다. 존 포드는 아일랜드, 프레드 진네만은 오스트리아, 윌리엄 와일러는 프랑스 출신이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 사람(나)은 그 그룹에 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이해할 수 없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독특한 영화 장르를 창시한 이탈리아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 1929~1989)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레오네는 자신의 작품을 폄하하는 당대 미국 영화계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당시 미국 할리우드는 정통 서부극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레오네의 작품을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칭하며 이단이라고 멸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할리우드의 시각은 곧 뒤바뀐다. 기존의 정형화된 미국 서부극의 틀을 깨고 보다 현실적인 서부 개척시대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은 고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전환됐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틸 컷.

 

‘스파게티 웨스턴’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타일리시한 연출,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1930~)의 포스 넘치는 마초 연기, 영화음악의 천재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1928~)의 박진감 넘치는 음악, 이 삼박자가 들어맞으며 탄생했다. 세 사람은 지금도 ‘스파게티 웨스턴’의 상징으로 지구촌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이탈리아의 자본과 제작진에 로케이션도 대부분 미국이 아닌 스페인이었다. 할리우드처럼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지 못하는 한계로 ‘스파게티 웨스턴’은 경비절감을 위해 미국 서부처럼 황야와 사막이 있는 스페인의 알메리아 같은 곳을 찾아 촬영해야 했다. 

 

존 웨인, 게리 쿠퍼 등이 형상화 한 미국 정통 서부극 주인공의 이미지는 정의의 사도 같은 총잡이나 보안관으로 정형화돼 있다. 교과서적인 선악 구분, 인디언과 멕시코인은 나쁜 쪽, 권선징악과 상투적인 해피엔딩 등. 식상한 전개로 인해 미국 서부극은 1960년대 들면서 급속한 쇠퇴기를 맞았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부모가 모두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벤허’(1959) 조감독을 맡는 등 정통 영화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의 작품을 구상하던 중 미국 서부극의 몰락에 주목하고 이와는 전혀 다른 공식의 서부극을 창조하기로 했다. 

 

정통 서부극에 흐르던 기사도 정신, 청교도 정신, 영웅주의 등에 대해 그는 장르적 전복을 시도한다. 그가 영화를 통해 창조해낸 캐릭터들은 조연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인공조차 자신의 이익만을 쫓으며 선과 악 어느 쪽에 서 있는지 불분명한 인물들이다. 레오네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미국 서부개척시대는 정의도 영웅도 없는, 무법과 폭력만 난무한 추악한 시대였다고 꼬집는다.

 

이러한 파격적인 서부극은 때마침 등장한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반발을 표방한 히피 문화와 맞물려 전 세계의 열광 속에 엄청난 대성공을 거두었다.

 

레오네가 구상한 서부개척시대의 모습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의해 형상화된다. 193cm의 장신에 떡 벌어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외모는 마초맨의 전형이었다. 레오네는 미국 TV 시리즈물로 주로 활동하면서 서부극 드라마에 출연한 이스트우드에 주목하고 자신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 줄 것을 제안했다. 

 

이스트우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여행이라도 간다는 생각으로 결국 출연에 응했는데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최초의 스파게티 웨스턴 작품으로 꼽히는 ‘황야의 무법자’​(Per un pugno di dollari, 미국명 A Fistful Of Dollars, 1964)다. ‘황야의 무법자’ 원작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미후네 도시로 주연의 ‘요짐보’(1961)다. 

 

레오네와 이스트우드는 계속 의기투합을 하면서 ‘석양의 건맨’​(Per qualche dollaro in, 미국명 For a Few Dollars More, 1965), ’석양의 무법자’​(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미국명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를 찍었다. 세 작품은 흔히 ‘무법자 3부작’으로 통용된다. 

 

이 3부작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영화 장르의 시작이자 그 특성을 설명할 경우 필요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탄생해 아시아 전역을 열풍에 몰아넣었던 ‘홍콩 느와르’의 대명사인 오우삼 감독, 주윤발 주연의 ‘영웅본색’시리즈처럼 말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미장센과 스타일리시한 연출에 탁월했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총을 쏘기전 레오네는 다양한 시각적인 배치와 정적마저 감도는 고요함을 동원했다. 그 후 연기자가 가차 없이 총을 난사하는 방식으로 총격전의 묘미를 극대화시켰다. 

 

레오네는 비흡연자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영상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찌푸린 인상이어야 한다”며 그의 등장 씬마다 그 독한 시가를 피우게 했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이스트우드는 시종일관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레오네는 그야말로 배우가 배역과 혼연일치되도록 하는 ‘메소드(Method) 연기’를 주문했던 것이다.

 

‘석양의 건맨’과 ‘석양의 무법자’에는 매혹적인 매부리코를 소유한 네덜란드 출신 리 밴 클리프(Lee Van Cleef)가 조연으로 출연한다. 리 밴 클리프는 188cm 큰 키에 말쑥하게 양복을 입고 나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클리프는 ‘하이 눈​(High Noon)’​(1952)에서 정의의 보안관 게리 쿠퍼와 대결하는 악당 중 하나로 출연해 개성 넘치는 외모로 영화팬들에게 각인돼 있었다. 

 

클리프는 ‘석양의 건맨’에선 딸의 복수를 위해 이스트우드를 도우는 역할로 출연했고 ‘석양의 무법자’에선 ‘The Good(좋은 놈)’ 역의 이스트우드와 대척점에 있는 ‘The Bad(나쁜 놈)’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The Ugly(추한 놈)’은 엘리 웰라치(Eli Wallach)가 연기했다.  

 

쉰 살을 넘어 이 영화에 출연한 엘리 웰라치는 젊은 시절 상당한 호남이었다. 영화 제목의 ‘추한 놈’은 하는 짓이 매우 비열한 캐릭터로 설정돼 있어 이 역할을 맡은 웰라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3부작 모두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은 역할도 선한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이 배역들은 법과 규칙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현상금을 얻기 위해 총을 쏘아대는, 사실상 악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석양의 무법자’의 인물 설정과 장면은 김지운 감독의 2008년 작 ‘좋은 놈, 나쁜 놈, 상한 놈’에서 상당 부분 패러디됐다.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가 각각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출연한 이 영화는 뜬금없이 ‘스파게티 웨스턴’을 베낀 영화가 아니라 ‘만주 웨스턴(Manchuria western)’의 맥을 잇는 영화였다. ‘만주 웨스턴’이란 서부극의 영향을 받아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 일제강점기 광활하고 황량한 만주 벌판을 배경으로 풀어낸 한국식 웨스턴 장르다. 

 

‘무법자 3부작’ 주제음악은 물론 장면마다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까지 더해지면 그 완성도는 최고조에 이른다. 

 

3부작에 흐르는 음악들은 모두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 ‘석양의 무법자’ 테마 음악을 가장 좋아한다. 곡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스캣(가사 없이 부르는 노래 선율)인 ‘와아아아아 와와아’ 는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의 비명소리를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이 곡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격렬한 리듬의 트럼펫 소리는 영화의 영상과 맞물려 관객을 숨이 멎을 것 같은 긴박감으로 몰아붙인다.

 

‘석양의 무법자’ 프랑스 개봉 당시 포스터.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명칭은 ‘무법자 3부작’이 서부개척정신의 가치를 모욕한다는 이유로 이탈리아 대표 음식인 스파게티를 붙여 조롱하던 이름이다. 그랬던 이 장르 명칭의 유래가 지금은 차별화 된 이탈리아 서부극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돼 버렸다. 혹평과 달리 미국 현지에서도​ ‘무법자 3부작’​이 흥행에 성공하자 할리우드는 오히려 저자세로 세르지오 레오네를 불러 서부극을 찍게 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C'Era Una Volta Il West, 미국명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와 ‘석양의 갱들’​(Giu la testa, 미국명 A Fistful Of Dynamite, 1971)이 미국 자본이 투입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서부극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는 미국의 대배우 헨리 폰다(Henry Fonda), 액션 스타 찰스 브론슨(Charles Bronson), 이탈리아의 자랑 당대의 미녀 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Claudia Cardinale)가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간 줄곧 선한 배역을 맡아 오던 헨리 폰다의 연기 변신이다. 폰다는 이 영화에서 비열하기 짝이 없는 악당 프랭크 역을 소름끼치리만치 소화해 내 그를 보아왔던 영화팬들을 경악시켰다.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프라노 스캣송의 대명사인 이 영화의 주제곡도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해 친구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을 더욱 빛을 발하게 했다. ​ 

 

한동안 국내에서 ​ ‘스파게티 웨스턴’​​을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지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명 영화 평론가인 요도가와 나가하루가 “스파게티는 가늘고 약하다”며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부르면서 한국에 유래된 것이다. 미국과 이탈리아는 물론 전세계에서 이 장르를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부르고 있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서부극 외에 자신의 필생의 역작으로 삼겠다며 감독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1984)가 삭제와 편집으로 난도질을 당하며 흥행에 실패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60세인 1989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레오네가 생전 그려내고자 했던 내용들을 충실히 담은 긴 러닝타임의 다양한 버전들이 나오면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최고의 걸작 ‘갱스터 무비’​​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히고 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 연기파 배우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는 로맨틱한 면이 있는 갱스터 누들스(Noodles) 역을 맡아 역대급 명연기를 보여준다. 친구인 레오네의 유작인 이 영화에 참여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도 굉장히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말년이 불우했던 것과 달리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80대 후반인 현재에도 배우와 감독으로 거침없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스트우드는 1960년대에는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1970년대에는 형사물인 ‘더티 해리’ 시리즈를 넘어 1980년대 이후 여러 장르에 출연하면서 흥행과 함께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그는 영화감독으로도 성공해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1992),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2004)로 각각 1993년 65회, 2005년 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차례나 감독상을 수상했다. 음악적인 능력도 대단해 ‘체인질링(Changeling)’​​(2008)과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 자신이 감독한 영화의 음악까지 작곡해냈다. 

 

이제 더 이상 ‘스파게티 웨스턴’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으며 미국 서부극 역시 거의 제작되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총잡이들의 총싸움 장면을 아련한 향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폭력 미학’이라는 컬트적 장르물이다. 그런 점에서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엔니오 모리꼬네 세 사람은 영화팬들에게 기억될 만한 이름이리라.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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