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화벨이 울린다. 의뢰인을 고소한 상대방이다. “혹시 ○○○ 아시죠? 그 사람 완전 사기꾼이에요. 변호사님도 똑같은 사람이군요.” “감사합니다. 새겨 듣겠습니다”라고 하고 끊는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한 번은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데 피고인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이 “당신 아까 법정에서 뭐라 그랬어? 내가 바람을 피우고 먼저 때렸다고?”라며 거의 멱살까지 손을 올린다. 다행히 법원 경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가끔 형사재판에서 검사와 눈이 마주치면 그가 나를 백안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형사재판 중에 일어나는 이런 일들에 이제는 특별히 감정을 다치지 않는다. 나는 변호인이되 피고인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범죄를 비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형사 변호인에 대해 변호를 좀 해볼까한다. 사람들은 악질 범죄인뿐만 아니라 그 변호인도 욕한다. 그러나 피의자가 저지른 범죄를 이유로 변호인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형사사건 ‘변호인’과 민사사건 ‘대리인’은 다르다.
민사사건에서는 ‘사인(私人) 대 사인’ 이지만 형사사건에서는 ‘국가(검찰) vs 사인’이다. 전통적 법원칙에는 ‘무기(武器) 대등의 원칙’이란 게 있다. 그래서 형사사건에서는 국가보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피고인에게 ‘무죄추정의 원칙’, ‘자백보강의 법칙(수사과정에서 한 자백만으로는 유죄의 직접증거가 안 된다)’ 등의 무기가 주어지는 것이다.
형벌이 높은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이 경제형편을 이유로, 또는 변호사들이 전부 변호하기를 기피하는 경우 국가가 강제로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준다. ‘파렴치범이라도 누구나 변호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이런 형사사건의 경우에 적용된다. 아무리 악질 사이코패스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 변호인을 비난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지은 만큼의 처벌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명사회에서 사적 응징이 불가능한 이유는 개인이 죗값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형 법정주의’는 사적 폭력이 난무하는 원시자연 상태에서 인류를 단 한걸음 진보하게 하였으므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형사 변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이유다.
만약 부적절한 방법으로 형사 변호를 하는 경우라면 그에 대해 충분히 지적할 수 있다. 범죄인의 입장에 선다고 해서 변호인이 고의로 거짓을 주장하거나, 악의적으로 증거를 인멸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변호사법 제24조).
누가 봐도 중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무죄가 나오는 경우, 사람들은 판사와 변호인을 욕한다. 이는 원칙적으로는 검사가 입증에 실패한 것이지 변호사가 사악해서 그런 게 아니다. 현대 형사법원칙 중 가장 중요한 명제는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죄인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판사는 위 명제에 따라 증거불충분 또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되지 않아 피고인에게 무죄를 내린 것이고, 변호인은 검사의 수사 중 허술한 부분을 잘 강조해낸 것이다. 무죄 판결은 변호인이 거짓말을 하거나 증거를 없애고 왜곡하지 않더라도 가능한 결과다.
요컨대 강력한 무기로 중무장한 트랜스포머 로봇과 같은 국가와, 벌거벗은 인간과의 싸움에 형사 변호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변호 받을 권리’는 최소한의 인권을 지켜주는 방어막이며 국가권력을 향한 질서유지선이기 때문이다.
첨언하자면 민사사건은 좀 다르다. 민사 ‘대리인’은 사인과 사인의 싸움에서 경제적 이해관계, 권리의 종속(유무) 관계라는 내용으로 다투므로 사건 내용에 따른 가치판단의 여지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변호사가 사채업자를 대리해 피해자인 서민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경우 우리는 “안 그래도 힘센 놈을 더 힘세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나”, “그 정도 비싼 수임료라면 맡으려는 변호사가 넘쳐날 텐데 굳이 그 사건을 해야 했나”라는 식으로 변호사의 도덕성 내지 가치관을 비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서두에 언급했던, 고소인이 내게 전화로 항의한 사기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 검사의 기소 내용 중 일부만 유죄로 인정돼 집행유예 확정 후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항의 내용처럼 ‘완전 사기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류하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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