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유통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살충제 계란, 간염 소시지 등 예상치 못했던 논란들이 동시에 발생한 데다, 최근 정부가 ‘유통질서 건전화’를 앞세워 고강도 규제책까지 내놨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또 터지지 않을지 조마조마하다.”
한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관련 보복 문제와 오프라인 매장 수익률 악화 등 안팎에서 ‘이중고’를 겪던 업계에 최근 굵직한 이슈들이 동시에 불거졌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유통업계를 뒤흔든 ‘먹거리’ 논란이 대표적이다. 8월 초, 국내산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부터 공포가 확산됐다. 대형 유통업체 등은 사상 처음 전국 전 점포에서 계란 판매를 중단했고, 정부 조사 결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판매를 재개하고 가격도 낮췄지만 재고처리에 문제가 생겼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논란이 불거진 후 계란 소비가 급감했다. 직매입하는 계란은 공정거래법상 반품이 금지돼 있어 적정 수준의 재고 관리에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E형 간염 유발 의혹이 불거진 독일·네덜란드산 돼지고기를 원료로 만든 베이컨과 햄 논란도 장기화되고 있다. 살충제 계란 사태가 터진 지 10일 만에 또 다른 먹거리 논란이 생기면서, 대형 유통업체들은 8월 25일 일제히 유럽산 베이컨과 햄 판매를 중단했다. 최근 깨끗한나라가 제조한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 논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통업계의 고민은 해당 제품들의 판매량 감소에만 머물지 않고, 관련 제품들에도 불안감이 퍼진다는 점에 있다. 계란 논란은 계란 가공식품, 닭, 오리고기, 가공육 등으로도 번졌고 생리대는 기저귀, 휴지까지 퍼졌다. 또 다른 대형마트 관계자는 “계란, 소시지, 생리대를 중심으로 매일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정부에서도 대처하고 있고, 추석을 앞두고 소비심리가 회복될 것으로 보지만 여러 논란이 동시에 불거져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유통 개혁’ 정책에 따른 고민도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 대책’이 대표적이다. ‘경제검찰’이라는 별명이 붙은 공정위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프랜차이즈 업계에 이어 최근 2차 타깃으로 유통업계에 칼날을 겨눴다.
공정위가 발표한 대책은 ‘갑질 근절’에 집중돼 있다. 공정위는 8월 13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판매수수료 공개 확대 등 15개 실천과제를 공개하면서, 대형 유통업체의 △상품대금 부당감액 △부당반품 △납품업체 직원 부당사용 △보복행위 등을 4대 악의적 불공정거래 행위로 규정했다.
이 같은 행위로 발생한 피해에는 3배의 배상책임을 부과하기로 했는데, 기존 ‘최대 3배’ 규정을 ‘일괄 3배’로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공정위가 유통업체의 불공정 행위를 적발해 부과하는 과징금은 2배로 높아진다.
유통업계도 프랜차이즈 업계처럼 신규 점포 출점 제한 규제도 받는다. 이번 정책은 그동안 임대사업자로 구분돼 대형 유통업 규제에서 제외됐던 복합쇼핑몰로도 확대된다. 현재 영업시간 및 의무휴일 적용을 받지 않는 복합쇼핑몰·아웃렛도 내년부터 대형 유통업체와 같은 제한을 받을 방침이다.
유통업계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새 정부가 일자리 확대를 유통업계에도 강조하고 있는 과정에서, 최저임금 인상, 신규출점 및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업 등의 규제가 동시에 강화돼 셈법이 복잡하다는 속내다. 한 중소 유통업체 관계자는 “업계에선 최근 거론되는 새로운 규제들이 도입되면 ‘대기업 계열 유통기업들만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 유통업계가 정부 정책과 규제의 중심에 있는 이상 피할 길은 없다고 본다”며 “정부 기조에 맞추면서 순기능적 측면을 강화할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납품업체들의 반응은 갈린다. 이번 정부대책을 반기는 쪽은 “아직까지는 현장에서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다만 이번 대책으로 고질적인 불공정 관행들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우려하는 쪽은 “공정위 대책으로 대형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서 파견되는 판촉직 등을 대폭 줄일 가능성도 높다”며 “상황을 더 지켜보자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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