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처음 소송이 제기된 지 6년 만이다. 길고 긴 재판 끝에 나온 1심 재판부의 판단은 기아차 노동조합의 승리였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기아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는 원고(노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사측이 노조 측에 원금 3126억 원, 이자 1097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조 측 요청액의 절반가량을 인정한 셈인데, 어제(30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과 기아차 통상임금 측 원고 승소 판결까지, 법원이 문재인 정부에서 달라진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기,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으로, 연장, 야간, 휴일근무 수당 산출의 기준이 된다. 연장, 야간 근무가 많은 생산직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실질 소득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임금 가이드라인 중 하나인데, 노사협상 때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이번 재판에서 기아차 근로자들이 법원에 청구한 금액은 각종 수당과 퇴직금 명목의 1조926억 원. 노조 측은 “2011년 연 700%에 이르는 정기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서 수당, 퇴직금 등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13명의 기아차 근로자는 통상임금 대표 소송을 내면서, 재판 결과는 다른 근로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대표 소송은 소송을 내지 않은 근로자에게도 효력을 발휘한다. 때문에 만일 기아차 노조 측의 주장을 법원이 고스란히 인정했을 경우 기아차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3조 1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결국 이번 판결의 쟁점은 ‘기아차의 실적’이었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인천 시영운수 운전기사들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통상임금을 인정했을 때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사정이 인정될 때에만 신의칙에 따라 추가 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결국 회사가 운영되는 게 우선이고, 그 다음이 상여금에 대한 통상임금 인정이라는 판단이었던 것.
때문에 기아차 노조 역시 재판 과정에서 “청구액을 지급해도 회사 경영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 역시 “기아차의 실적이 나쁘지 않다”며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자연스레 통상임금을 둘러싼 유사 소송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통상임금 관련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의칙을 어기지 않았는지, 회사의 실적이 통상임금 인정 반영분을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나왔는지 정도”라며 “기아차의 경우 언론에 나온 실적을 봤을 때 나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어제 나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실형(징역 4년) 선고부터,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준 기아차 통상임금 선고까지, 법원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원래 법원이 검찰보다 더 치밀하게 정치적인 조직”이라며 “개별 재판부의 독립성이 존중되고 있는 것은 알지만, 각 재판부가 정권에서 선호할 만한 결과를 이렇게 잇따라 내놓는 것을 보면 법원의 판단을 더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최민준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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