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음반이 돈이 안 된 지도 꽤 되었습니다. 음반업계는 다양한 변칙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하고 있는데요. SM엔터테인먼트 등 아이돌 산업에서는 다양한 굿즈(goods)를 포함해 앨범을 팬이 소비하는 굿즈로 만들었습니다. 지드래곤은 아예 앨범을 USB로 내버렸습니다.
해외에서도 음반의 형식을 뒤집는 시도가 진행 중입니다. 대표적으로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은 앨범을 동영상으로 만들었지요. 신인 아티스트들은 사운드 클라우드에 무료로 앨범을 공개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다양한 형식 실험에서도 가장 특이한 시도를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앨범. 힙합 그룹 우탱클랜(Wu-Tang Clan)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샤오린(Once Upon A Time In Shaolin)’입니다.
우탱클랜은 1990년대 초반부터 장기간 힙합을 지배했던 그룹인데요, 데뷔 앨범 ‘엔터 더 우탱(Enter the Wu-Tang)’은 둔탁한 사운드, 중국무술에 빗댄 강렬한 콘셉트로 힙합을 상징하는 명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힙합을 대표하는 음반 중 하나입니다.
데뷔 앨범의 대성공 후 멤버들은 서로 다른 음반사에 들어가 활동합니다. 솔로 앨범 협업을 병행하며 우탱클랜은 수많은 작업물을 쏟아냈습니다. 멤버 개개인 또한 힙합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전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탱클랜의 데뷔 앨범의 대표곡 ‘C.R.E.A.M.’. 90년대 초중반의 우탱클랜은 힙합 그 자체였다.
우탱클랜은 2000년대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샤오린’을 무려 6년 간 녹음합니다. 110분이 넘는 대형 앨범이었습니다. CD 한 장에 담을 수 없을 더블 앨범이었습니다. 이 대작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요?
우탱클랜은 이 앨범을 딱 한 장 제작했습니다. 스트리밍 시대, 음악이 흔해진 시대에 역행한 겁니다. 미술작품처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음악을 만든 거지요. 네덜란드의 프로듀서 실바링스(Cilvaringz)는 우탱클랜에게 앨범을 한 장만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바로크 시대 예술품처럼 가치 있게 만들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팀의 리더 르자(RZA)는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였습니다.
앨범을 파는 조건은 간단했습니다. 이 앨범을 스트리밍 서비스에 공개하지 말 것. 이 앨범은 오로지 오프라인 파티에서만 틀 수 있고, 그 외에는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게 조건이었습니다. 앨범을 공개할 수 있는 기간은 2103년이었습니다. 대중에게는 90년 가깝게 비밀로 남아 있어야 하는 음악인 셈입니다.
팬들은 반발했습니다. 우탱클랜의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됐다는 불만이었습니다. 심지어 우탱클랜의 멤버 메소드 맨(Method Man)조차 이 앨범의 홍보 방식에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르자는 “이번 앨범의 표현방식은 음악이 예술로서 대접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전략이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앨범이 단 한 장만 존재하게 되자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스트리밍 시대에 음악은 수돗물처럼 흔한 상품이 되었는데요. 형식이 바뀌자 대접이 바뀐 것입니다. 음반은 ‘예술작품’이 되었습니다. 앨범을 둘러싼 모든 상황은 마치 미술품을 둘러싼 맥락과 비슷해졌습니다.
앨범이 하나뿐이니 물건을 팔려면 당연히 경매를 해야겠지요. 마치 미술품처럼 말입니다. 치열한 경매 끝에 헤지펀드 매니저 마틴 슈크렐리(Martin Shkreli)가 앨범을 샀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200만 달러에 팔렸다고 합니다. 르자는 수익의 많은 부분을 기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음악의 소유주 또한 음악가보다는 구매자가 되었습니다. 앨범의 유일한 구매자 마틴 슈크렐리는 과격한 트럼프 지지자였습니다. 그는 트럼프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우탱클랜의 앨범을 부숴버리겠다”고 협박하며 트럼프를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미술작품을 소장한 소유주가 소유권을 주장하듯 말이죠. 트럼프 당선을 기념하며 공공장소에서 우탱클랜 앨범을 틀기도 했습니다. 우탱클랜의 뜻과 상관없이 이 앨범은 트럼프와 연관된 음악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틴 슈크렐리 또한 논란이 되었는데요. 그는 제약회사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 임산부와 에이즈 환자가 주로 사용하는 감염 치료제 약값을 55배 올려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우탱클랜 앨범을 산 직후 일어난 일입니다. 이후 슈크렐리는 투자자에게 회사의 상황을 정직하게 보고하지 않고,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피소되었습니다. 미국 법정은 8월 4일 그의 8개 혐의 중 3개에 유죄를 선고했지요.
슈크렐리는 유튜브 개인방송으로 법정에서의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중죄를 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녀사냥에서 승리했다”며 “처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면서 승리의 송가로 우탱클랜의 음악을 틀었지요.
유튜브에 유출된 우탱클랜의 앨범. 이 앨범을 경매에서 산 슈크렐리는 인터넷 방송에서 본인의 ‘법적 승리’를 자랑하며 이 음악을 틀었다.
돌이켜보면 원래 음악의 소유주는 구매자였습니다. 하이든 시절만 해도 음악가는 귀족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자에 가까웠지요. 이후 베토벤을 거치면서 비로소 음악의 주인은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현재 음악은 무료에 가깝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공기처럼 받을 수 있지요. 대신 음악은 온전히 음악가의 것입니다. 음악가 외에는 누구도 음악을 소유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요. 덕분에 음악이 성공하면 음악가는 명성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명성을 활용해 공연과 굿즈로 돈을 법니다.
‘음악이 바로크 시대처럼 다시 예술이 된다.’ 얼핏 들으면 좋아보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거꾸로 음악의 소유권을 온전히 구매자에게 넘겨준다는 뜻도 됩니다. 그 결과는 우탱클랜의 앨범이 잘 보여줬습니다.
우탱클랜은 자신의 음악이 트럼프 찬가이자 경제사범의 법적 승리 축하곡이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예술작품이 되자 음악의 가치는 확실히 올랐습니다. 하지만 대신 음악의 소유주는 음악가가 아닌 구매자가 되었습니다.
스트리밍은 창작자에게 돈을 많이 주지 않습니다. 덕분에 음악은 모두의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음악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요즘 아티스트들이 본인 음악을 사운드 클라우드, 유튜브 등 음원 사이트에 무료로 푸는 게 아닐까요. 그럴수록 본인은 점점 커지니까요. 무료 음원 시대에 무료로 나누면 나눌수록 음악가가 커지는 아이러니를 생각해보게 하는 앨범, 우탱클랜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샤오린’이었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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