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거래소가 신임 이사장 선임 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번번이 ‘낙하산 인사’ 논란을 빚었던 수장 자리에 처음으로 내부인사들이 하마평에 올랐기 때문이다.
최근 증권업계 시선이 한국거래소에 쏠렸다. 한국거래소가 8월 28일 5대 이사장을 공개모집한다고 밝히면서부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소 이사장 선임 때마다 ‘낙하산’ 등 ‘말’이 많이 나왔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1대 이사장부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56년 출범한 거래소는 전직 금융당국 인사들이 이사장 자리를 맡아왔기 때문이다. 2005년 증권거래소‧코스닥증권시장‧선물거래소‧코스닥위원회가 통합 출범한 이후 ‘낙하산 인사’ 논란이 극에 달했다.
지난해 10월 이사장직에 올라 임기 2년을 남기고 최근 사퇴 의사를 표명한 정찬우 이사장은 취임 전부터 뭇매를 맞으며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정 이사장은 강석훈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서울대 동기로, 박근혜 전 대통령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낙하산 인사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지난 20대 총선(2016년 4월)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에서 탈락한 뒤 거래소 이사장으로 내정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은성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전직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한국거래소 내‧외부에서 낙하산 인사에 대한 시선이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증권거래소 시절엔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부족했고, 주식시장이 안착하기 위해선 각 부처와 소통이 원활한 관료 출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러한 인식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당국, 정치권과의 소통은 한국거래소 실무와 성향이 다르다”며 “이제는 전문성을 갖춘 인력도 늘었다. 정부 입김보다는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시장을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업계 목소리는 새 한국거래소 이사장 자리를 놓고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에서 확인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7월부터 금융권 출신 4명, 거래소 내부 출신 3명 등 총 7명이 후보군에 올랐다.
이 가운데 한국거래소 내부 출신은 김재준 코스닥시장위원장, 최홍식 전 코스닥시장본부장, 강기원 전 파생상품시장본부장이다. 세 사람은 모두 1987년 증권거래소 22기 입사 동기다.
김재준 위원장은 한국거래소 내부에서 ‘정통 인사’로 평가된다. 입사 이후 증권선물거래소 종합시황총괄팀장, 시장감시부장, 비서실장을 거쳤다. 한국거래소 통합 후에는 전략기획부장, 경영지원본부장, 파생상품시장 본부장보 등을 역임했다.
최홍식 전 본부장은 국제부장, 경영지원본부장보 등을 거쳐 코스닥시장본부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2014년부터는 라오스 기업 코라오홀딩스 부회장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담당 중이다. 강기원 전 본부장은 잔략기획부장, 코스콤 사외이사, 경영지원본부 상무 등을 역임했다. 현재 코스닥 상장사 ‘이엠텍’의 경영전략실장이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거래소는 현재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사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정부에서 무산된 지주사 전환 재추진 등 굵직한 현안도 있고, 최근 셀트리온의 코스피 이전상장 문제로 생긴 내부 조직 간 갈등 문제도 풀어야한다. 세계 거래소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와 경쟁력 강화 목소리도 높다”고 말했다.
반면, 외부출신 인사들에게도 업계 시선이 쏠린다. 하마평에 오르는 유력한 외부 인사는 4명으로, 정은보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행정고시 28회), 서태종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행정고시 29회), 김성진 전 조달청장(행정고시 19회), 이철환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행정고시 20회) 등이다.
정은보 전 부위원장과 서태종 수석부원장은 이번 정부 들어 금융권 기관장에 빈자리가 나올 때마다 이름이 거론됐다. 198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정 전 부위원장은 2008년까지 기획재정부에서 일하다 2010년 금융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정책국장, 부위원장, 증권선물위원장 등을 거쳤다. 업계 일부에선 가장 유력한 한국거래소 이사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서 수석부원장은 앞서 금감원장 후보군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수출입은행장 등 금융공공기관장 후보로도 오르고 있다. 이철환 전 위원장도 행시 20회 관료 출신이다. 재정경제부에서 근무하다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사도 있다. 김성진 전 조달청장과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다. 김 전 조달청장은 앞서의 두 인사와 비교해 금융권에서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다. 재정경제부출신으로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지냈으며 2007년 조달청장을 역임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캠프에 합류해 자본시장과 관련된 자문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환 전 이사장은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되진 않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부산시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2008년 한국거래소 2대 이사장으로 선임됐지만 당시 이명박 정부와의 마찰로 취임 1년 7개월 만에 자진사퇴했다.
한편, 한국거래소는 9월 4일까지 이사장 후보를 공개 모집한다. 이를 위해 총 9명의 이사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최근에 완료했다. 사외이사 5명,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대표 각 1명, 금융투자협회 추천 2명 등이다.
이사후보추천위원회 운영규정 제11호에 따라 공개모집과 추천 방식을 병행하고,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거쳐 신임 이사장을 선출할 계획이다. 임기는 3년이다. 이사장 선임 안건과 관련한 임시 주주총회는 9월 28일 열린다. 주주총회 결의 후 이르면 다음달 중 신임 이사장 선정이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진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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