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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겨드랑이털에 자유를!

남자는 선택 여성은 암묵적 강요…겨털 제모 시작은 면도기회사의 마케팅에서

2017.08.28(Mon) 10:03:05

[비즈한국]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겨드랑이털 안 밀기 운동이 SNS에서 번졌다. 최근 몇 년 새, 여름이면 겨드랑이털에 대한 자유를 외치는 여자들이 생긴다. 겨드랑이털에 가장 민감할 시기가 바로 여름이다. 민소매를 입거나 비키니를 입거나 등 겨드랑이털이 노출되는 시즌이 되면, 이걸 면도할지 뽑을지 고민에 빠지는 여자들이 많다. 

 

남자든 여자든 털이 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왜 여자에겐 겨드랑이털, 다리털 제모를 강요할까? 남자의 털은 그대로 두는 걸 문제 삼지 않으면서, 왜 여자에게만 털을 밀게 할까? 여자의 털은 지저분하고 나쁜 것이고, 남자의 털은 그렇지 않단 말인가? 물론 요즘엔 제모하는 남자도 늘고 있다. 피부 관리와 깔끔한 이미지를 위해서다. 그러나 남자의 제모는 선택인 반면, 여자의 제모는 사회적 강요였다. 남자나 여자나 다 겨드랑이털은 나는데, 왜 여자의 겨드랑이털만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이것 자체가 차별이므로 거부하겠다는 흐름이 계속 번진다.

 

마일리 사이러스는 겨드랑이털을 분홍색으로 염색해 여성의 제모 문제에 반기를 들었다. 사진=마일리 사이러스 트위터


사실 이건 단순한 남녀차별이 아니다. 특정 기업의 마케팅 때문이다. 여자의 겨드랑이털에 대한 혐오를 만든 건 면도기 업체란 분석이 가장 타당하다. 1915년 미국의 면도기회사 질레트는 여성전용 면도기를 처음 출시한다. 그때 신문광고를 하면서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이미지와 ‘겨드랑이는 얼굴처럼 부드러워야 한다’는 카피로 털 없는 겨드랑이를 미의 기준으로 부각했다. 면도기 마케팅 차원에서 여성의 겨드랑이털이 수치스럽다는 인식을 퍼뜨렸던 셈이다. 

 

다른 면도기 회사도 여기에 동참했고, 결과적으로 여성면도기 시장은 급성장했다. 미국에서 여성의 겨드랑이털 제모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는데, 이 유행을 할리우드 여배우들도 받아들이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반인이 겨드랑이털 제모를 당연시하기 시작한 건 몇십 년 되지도 않았다. 미국을 필두로, 유럽으로, 아시아로 순차적으로 퍼졌을 텐데,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확대되면서 더더욱 겨드랑이털을 미는 행위도 확산되었다. 사회생활을 위한 에티켓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100년 전 면도기 회사에서 시작된 마케팅 메시지가 트렌드를 낳고, 결국 문화를 만들어낸 셈이다. 

 

트렌드는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 때문에 유도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셀럽들과 영화나 음악 등 대중예술 콘텐츠를 통해 더 빨리 확산되는 경우도 많다. 여성 겨드랑이털에 대한 혐오나 수치의 시각이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마케팅의 힘이 이래서 무섭다.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의 상술은 지적하면서 겨드랑이털 문제는 무감각하게 100년을 관성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1915년 잡지에 게재된 질레트의 첫 여성면도기 광고. 여성의 겨털 제목는 알고 보면 면도기회사의 마케팅에서 시작되었다. 사진=구글북스


그동안 미디어에서 나온 걸그룹이나 미녀상은 머리카락과 눈썹을 제외한 털이 말끔하게 제거된 느낌이다. 할리우드 영화건 한국 영화건, 시대극이 아니고선 섹시한 여배우들은 한결같이 겨드랑이털이 없다. 반대로 남자들은 겨드랑이털이 있건 없건 그다지 신경도 안 쓴다. 유독 여자에게만 털을 개인적 선택이 아닌 사회적 선택으로 강요했던 셈이다. 

 

남자 제모가 트렌드가 되는 상황에서, 반대로 여자의 반 제모 움직임도 새로운 트렌드가 된다. 사실 둘은 서로 상반되는 게 아니다. 남자나 여자나 털을 관리할 자유, 제모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모든 남자가 트렌드로서 제모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여자가 제모를 당연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털이 길든, 없든, 짧든, 그건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다.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차별의 간극이 좁혀진 서양에서도 여전히 겨드랑이털에 대한 차별은 남아 있다. 마돈나와 마일리 사이러스 같은 유명 팝스타들도 SNS에 겨드랑이털을 기른 사진을 공개하며 인식 전환을 도모했다. 마일리 사이러스는 겨드랑이털을 핑크색으로 염색한 사진을 올려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에 수많은 여성이 겨드랑이털을 염색하며 이런 흐름에 동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이슈가 되고 있고, 당당히 겨드랑이털을 드러내는 여자들이 늘고 있다.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남녀 모두 동등하게 가져야 한다.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현대 문명국가에서 아직도 외모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슬픈 일이다. 이젠 생각의 수준을 좀 높여보자. 관성에만 의존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 바로 생각을 고쳐먹을 수 있는 사람, 클라스는 이런 데서 나오지 않을까? 백년을 그랬건, 수십 년을 그랬건 간에 문제인 게 확실하다면 과감히 바꾸자.​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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