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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인생독서] 어쩌다 보니 기레기, 그러다 보니 투쟁

박성제, 최승호 두 해직 언론인의 책과 영화를 보며

2017.08.22(Tue) 14:49:00

영화 ‘공범자들’에서 최승호 피디가 김재철 전 MBC 사장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모습.


[비즈한국] 2012년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에서 부위원장으로 일하던 저는 170일 동안 집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MBC 프리덤’ 같은 파업 영상을 연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은 제게 구속영장을 2번 청구하고, 회사는 제게 대기발령이니 정직 6개월이니 징계를 때렸죠. 

 

그때 극심한 자괴감에 빠진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가 해고된 거예요. 뒤에서 집회 구경을 하던 선배들이 갑자기 잘린 걸 보고 멘붕에 빠졌습니다. ‘저분들은 왜 해고된 거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파업 집행부 중 제가 실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정영하 노조 위원장에게 살짝 서운한 마음도 들었어요. ‘두 분에게 어떤 막중한 임무를 맡겼기에 부위원장인 내게까지 비밀로 한 걸까?’

 

몇 년 후, 그 징계의 어이없는 사정이 밝혀집니다. 백종문 MBC 부사장이 술자리에서 ‘최승호 박성제는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말한 녹취록이 나오거든요. 제게 자괴감을 안겨 준 그 징계가 알고 보니 그냥 한 일이라니, 두 선배는 뉴스를 보고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박성제 기자는 해고 후, 동네 공방을 찾아가 목공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대패를 밀고 못질을 하며 마음을 달랩니다. 음악 감상이 취미였던 그는 직접 나무를 깎아 수제 스피커를 만드는데요, 디자인과 소리가 탁월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밀려들어 ‘쿠르베’라는 수제 스피커 회사까지 차립니다.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라는 책에서 그는 어쩌다 보니 해직 기자, 그러다 보니 수제 스피커의 장인이 된 자신의 사연을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몇 년 전부터 기자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라 불리게 되었어요. ‘​우리는 어쩌다 ‘기레기’라 불리게 된 걸까?’​ MBC 기자회장을 거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으로 일했던 박성제 기자는 시민들의 눈에 비친 언론의 실상을 살펴보고,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책 ‘권력과 언론-기레기 저널리즘의 시대’를 새로 냅니다. 

 

‘기레기’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권력자에게 고개 숙이고, 광고주에게 무릎 꿇고, 사주에게는 충성을 바칩니다. 자신들의 치부에는 눈을 감으면서, 어설픈 엘리트 의식으로 걸핏하면 독자를 가르치고 훈계하려 듭니다. 선정적 과장과 악의적 왜곡도 서슴지 않고, 오보가 밝혀져도 사과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기레기 저널리즘’이라는군요. 지난 5년, 언론의 몰락을 지켜본 해직 기자의 고민이 책 속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박성제 기자는 ‘​어쩌다 보니’​ 해직기자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스피커 장인이 되었다. ‘기레기 저널리즘’을 다룬 ‘권력과 언론’에서는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유 없이’ 잘린 또 한 사람의 해직 언론인, 최승호 PD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그는 펜 대신 카메라를 듭니다. ‘뉴스파타’에서 일하며 자신을 해고한 이들을 쫓아다닙니다. 김재철, 백종문, 안광한 등을 집요하게 찾아다니며 “도대체 나를 해고한 이유가 뭡니까?” 하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댑니다. 추격 액션 코믹 블록버스터 영화 ‘공범자들’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영화 ‘공범자들’을 극장에서 보면 객석에서 웃음이 빵빵 터집니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시사 다큐가 이렇게 심각하게 웃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악당들은 똑똑하고 무섭지요? 방송을 망가뜨린 ‘공범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비루하고 하잘 것 없는 이들이 지난 5년간 방송을 망치고 나라를 망가뜨렸습니다. 영화 속 악당들의 모습에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싸움에 나서기 전, 상대방의 전력을 과대평가하면 싸우기 쉽지 않아요. 겁을 먹고 풀이 죽습니다. 일상의 악당들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루한지 깨닫는 순간, 내 삶의 변화를 위한 동력이 생겨납니다. 더 나은 삶과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함께 보면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하신다면 ‘권력과 언론’을 읽고 그 방법을 고민해도 좋고요.

지난 5년, 수백 명의 MBC 조합원들이 부당 전보와 부당 징계에 시달리면서도 노동조합을 지켜왔습니다. 최근 ‘PD 수첩’ 제작 거부를 필두로, 시사 제작, 보도, 아나운서, 각 부문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외침이 번져갑니다. MBC에는 이제 총파업의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기레기’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떨칠 수 있는 마지막 싸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김민식 MBC 피디​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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