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뜨거운 한여름 더위가 달아오른 프라이팬처럼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 8월 초, 꽃 탐방 길에 나선 사할린 땅에도 연중 최고의 햇살이 내리쏟아졌다. 북구 지역이라서 무더위는 없지만, 이곳도 한낮에는 여름답다.
하지만 사할린의 여름은 짧다. 긴 겨울 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늦은 봄까지 풀릴 줄 모르다가 5월이 되어서야 풀리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 이 기후에 적응해서 살아온 이 지역 야생 식물은 뒤늦은 봄에 새싹을 다투어 밀어 올린다. 그리고 9월이 되면 벌써 산과 들에 무겁고 어두운 겨울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사할린 지역은 비옥하고 푸른 광활한 땅이 있지만 짧은 여름과 긴 겨울 때문에 콩, 옥수수, 감자마저 재배가 어려워 경작지로 활용할 수 없다. 이러한 기후 특성으로 식량 자급이 어렵고 어업과 광산물, 임산물에 기대어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것이 이곳 주민의 생활이다.
땅이 풀리면 바로 싹을 내고 쏜살처럼 흐르는 한여름 햇살에 반짝 꽃 피우고 열매를 익히는 데 적응한 식물들만이 이 땅의 주인이 되어 자라고 있다. 이곳 식물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한 꽃차례에서 꽃이 핀 개체가 있는가 하면 바로 아래에는 이미 열매가 맺힌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에게는 촌음이 아까운 한여름의 햇살이다.
하루가 다르게 한여름 햇살에 무섭게 자라나는 이곳 식물들은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한반도나 일본의 온대지역에 자라는 식물들보다 훨씬 키가 큰 종(種)이 많다. 머위, 구릿대, 어수리 등도 이곳 식물에게는 ‘왕’이나 ‘큰’이라는 접두사를 붙여야 할 만큼 크다. 동물이라면 겨울 추위를 견디도록 피부에 지방질을 많이 비축해야 하기 때문이겠지만, 식물은 무슨 까닭으로 대형화되는지가 궁금하다.
푸른 초원이 아득히 이어지는 광활한 벌판에 산들꽃이 한참 어우러지고 멀리 벌판 끝 산머리에 피어오르는 하얀 뭉게구름이 그림처럼 곱다. 그 넓고 푸른 초원에 큼직한 사할린의 구릿대, 단풍터리풀, 왕어수리, 큰조뱅이, 큰톱풀이 다투어 꽃을 피웠다. 그 풀꽃들 사이에 한여름 태양 빛처럼 강렬하고 붉은 꽃을 매단 채 우뚝 솟은 꽃이 보인다. 바로 날개하늘나리이다.
날개하늘나리는 꽃이 하늘을 향해 피고, 줄기는 둥근 것이 아니라 날개처럼 납작한 능선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한여름 반짝하는 북구 지역의 작열하는 태양과 맞서 훤칠하게 위로 쭉쭉 뻗어 올라 하늘 바라 활짝 꽃을 피운다.
주황빛 감도는 붉고 큼직한, 활짝 펼친 꽃잎에 태양과 맞설 만큼 당차고 힘이 넘쳐나는 호탕한 꽃이다. 푸른 초원에 불타듯 타오르는 횃불 같은 꽃송이를 피워 올린다. 지난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한이 서린 듯 한여름 푸른 벌판의 주변을 화려하고 뜨겁게 달구는 불같은 꽃을 피우는 북방계 식물이다.
날개하늘나리는 해방 전 백두산에서 채집된 기록이 있을 뿐 남한 학계에는 표본조차 없던 드문 식물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 태백산에서 처음으로 자생이 확인되었으며 지리산 노고단에서도 자생하는 것이 최근 확인되었다. 평안북도, 함경남·북도 등지에 주로 분포하며 남한에서는 설악산, 태백산 등 특정 지역의 몇 군데에서만 자생하는 까닭에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하여 보호, 관리된다.
꽃은 길이가 7~8cm이고, 황적색 바탕에 자주색 반점이 있으며 원줄기 끝과 가지 끝에 1~6개 꽃송이가 우산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핀다. 화피 갈래 조각은 6개이고 비스듬히 퍼져 끝이 약간 뒤로 젖혀지며 넓다.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은 꽃잎보다 짧다.
고산지대 식물이며 한국에 자생하는 나리류 가운데 관상 가치가 가장 높은 종이라 할 수 있다. 비늘줄기는 식용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정신을 안정시키는 효능과 기침, 다리 붓는 병 등에 효과가 있어 약용으로도 이용한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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