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타크래프트가 리마스터됐다. 데스크톱이 없는 나로선 친구들의 후기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맥북으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건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게임은 책상에 앉아 모니터와 혼연일체 되듯 목을 앞으로 빼고 해야 제맛이다.
게임은 리마스터 됐지만 추억은 새로 리마스터 되지 않는다. 라이벌전 역시 마찬가지다. 희대의 라이벌이었던 선수들은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코치로, 감독으로, 방송인으로, 직장인으로 말이다. 오늘은 리마스터 됐으면 하는, 꼭 다시 보고 싶은 라이벌전을 이야기해 보겠다.
첫 번째 라이벌전은 박정석과 최연성이다. 등짝토스, 무당토스, 가을의 전설, 영웅토스 등 수많은 별명을 가진 박정석은 물량 프로토스의 거목이었다. 최연성 역시 마찬가지다. 임요환과 이윤열을 잇는 세 번째 ‘본좌’로서 테란의 빌드를 집대성하고 물량전과 심리전의 새로운 장을 연 선구자다. 물량하면 절대 밀리지 않는 두 선수 사이의 대결은 항상 피바람을 몰고 왔다. 3연벙(3회 연속 벙커러시)이 일어나기 1주일 전 박정석과 최연성은 에버 스타리그 2004 4강전에서 붙었다.
모든 팬이 바라는 ‘드림 매치’였다. 물량 대 물량, 힘 대 힘으로 맞붙는 경기는 소년들의 마음을 들끓게 했다. 실제로 명경기가 펼쳐졌다. 1경기부터 전맵의 자원을 파먹고 인구수 200을 꽉 채운 물량전이었다. 3:2로 최연성이 이겼지만, 경기 후 “물량으로 져본 적이 처음이다”며 박정석의 물량에 혀를 내둘렀다. 이후 그들은 우주배 MSL 4강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프로토스 다크 아칸의 ‘마인드 컨트롤’ 기술을 습득한 듯 테란의 ‘마인’도 콘트롤한 박정석 앞에 최연성은 0:3으로 패배했다. 심리전으로 이기고 들어가는 최연성과 심리전 따위 무시하는 우직한 박정석의 대결은 예측 불가였다. 꼭,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두 번째 라이벌전은 이윤열과 강민이다. 비록, 이윤열은 리마스터 기념행사에서 박정석과 붙었으나, 진정한 프로토스 라이벌은 강민이었다. 이윤열과 강민은 묘하게 닮았다. 프리스타일이라고 불린 이윤열과 몽상가로 불린 강민 둘 다 전략 및 전술과 물량 싸움 모두에 충실했다. 서로의 성향을 잘 알다 보니 항상 처절한 경기가 나왔다. 비록 Stout MSL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3:0으로 꺾은 강민이지만 일방적이진 않았다.
둘은 하나씩 주고받았다. MSL에선 강민이,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선 이윤열이 우세했다. ‘유보트 대첩’이라 불리는 센게임 4강에서 강민은 이윤열을 50분 간의 혈전 끝에 꺾었다. 반대로, 온게임넷 듀얼토너먼트에서 이윤열은 강민에게 탱크 장벽을 선보였다. 전략과 전술에 능통한 둘이었지만, 서로의 경기에선 유난히 정통파 물량싸움을 즐겼다. 전략을 기대한 팬들은 실망할 법하지만, 매번 치열한 명경기가 나와 틈이 없었다.
마지막 라이벌전은 이영호와 정명훈이다. 둘의 대결은 개인과 개인을 넘어 팀과 팀의 대결이었다. KT에게 프로리그와 팀리그 그리고 개인리그 우승을 선사하고 스타크래프트 1의 ‘갓’이 된 이영호였다. 임요환과 최연성을 잇는, 한때 ‘테란1시’ 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SKT T1 테란의 계보를 가진 정명훈이었다. 통신사 라이벌, 테란 라이벌, 우승자 라이벌이었다.
둘은 주요한 결승의 길목에서 만났다. 만날 때마다 명경기가 나왔다. 명경기의 제물은 주로 정명훈이었다. 둘은 빅파일 MSL 4강에서 만나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이영호는 개인방송에서 아직까지 자기 자신이 어떻게 이겼는지 모르겠다며 역전승의 소회를 밝혔다. 이 패배에 이를 간 정명훈은 최후의 스타크래프트 1 리그인 티빙 스타리그 4강에서 이영호를 0:3으로 이겼다. 주요한 길목마다 본인의 발목을 잡은 이영호를 스윕(전승)했으니 마지막에 웃은 셈이다.
아프리카TV에선 지난 대회의 경기들을 리마스터 버전으로 다시 보여준다. 경기는 UHD 화질로 돌아왔지만 우리의 추억은 4K UHD급으로 여전히 생생하다. 아, 다시 한 번 저 라이벌전을 보고 싶다. 생생하게 말이다.
구현모 알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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