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에서 유전자 검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불륜’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드라마에서 극적인 장치로 유전자 검사를 통한 친자 확인을 주로 사용해서다. 지금도 주요 포털에 ‘유전자 검사’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의료 기사 절반, 드라마 기사 절반이 뜬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서는 유전자 검사가 질병을 예방하고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만약 본인이 유전적으로 어떤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보다 효과적인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암 예방에 좋다고 하는 그 수많은 음식들을, 암에 걸리기 전에 섭취함으로써 암 발병 확률을 낮출 수도 있다. 혹은 이미 발병한 질환에 대한 원인을 보다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치료를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유전자 검사에 대한 인지도는 대단히 낮다. 여전히 희귀 질환이 의심되거나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일부 부유층이나 하는 것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검사 비용이 크게 저렴해지고, 규제가 점차 완화되면서 급속한 대중화가 이뤄졌다는 평가다. 유전자 검사와 관련돼 알아두면 좋을 핵심 정보를 간추렸다.
# 다양한 유전자 검사 방식 존재…‘NGS’ 차세대 기술 각광
현재 대부분 온라인 쇼핑몰에는 각종 유전자 검사 키트가 판매 중이다. 가격은 10만~20만 원. 소비자가 키트를 구입한 다음 침을 담아서 지정된 주소로 보내면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이처럼 소비자가 직접 검사를 의뢰하는 방식을 DTC(Direct to Consumer)라고 한다.
DTC는 2016년 6월 의료기관이 아닌 민간 유전자 관련 기업이 검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되면서 본격적으로 가능해졌다. 다만 직접적인 질병과는 무관한 12개 항목에 한해서만 허용됐다. 크게 보면 비만(체질량 지수, 중성지방 농도,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카페인 대사), 피부(색소침착, 피부탄력, 피부노화, 비타민C 농도), 탈모(원형 및 안드로겐 탈모, 모발 굵기)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아직까지 의료기관의 개입 없이 민간에 허용된 유전자 검사는 질병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들만 있다. 본격적인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검사는 반드시 의료기관에서만 하도록 돼 있다. 특히 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 4대 중증 질환 관련 134개 유전자 검사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보편적인 유전자 검사 방식으로는 CES(Capillary Electrophoresis Sequencing)가 있다. CES는 특정 유전자 몇 개를 정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분석하는 방식이다.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받았던 유전자 검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안젤리나 졸리는 유방암과 관련된 유전자인 브라카(BRCA1, 2) 검사를 통해 자신이 고위험군임을 알게 되고, 결국 암 발생을 막기 위해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CES는 검사 정확도가 높지만 표적 유전자 이외의 정보는 알 수 없고 비용도 비싼 편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NGS(Next generation Sequencing) 기반의 유전자 검사가 각광받고 있다. NGS는 혈액 검사를 통해 전체 DNA 염기서열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
# 7년 대비 비용 1000분의 1 “몰라서 안할 뿐”
이름 그대로 차세대 유전자 검사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NGS는 혈액 침 등 체액 검사를 통해 단시간 내 많은 양의 유전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이렇게 얻어진 유전체 정보는 표준 유전체와 비교 분석을 통해 변이를 일으킨 유전체 정보를 금방 찾아낼 수 있다.
NGS가 주목받는 이유는 유전체 검사 장비의 기술 눈부신 발전과 관련이 깊다. 미국 유전체 분석장비 전문업체 일루미나는 2014년 한 사람의 유전정보 전체를 해독하는데 1000달러(113만 원)밖에 들지 않는 장비 ‘하이섹’을 선보이며, 당시 전기자동차를 발표한 테슬라를 누르고 미국 MIT가 선정한 혁신기업 1위에 선정됐다.
심지어 일루미나는 올해 초 신형 장비 ‘노바섹’을 출시하며 검사비 100달러(11만 3000원) 시대를 예고했다. 불과 3년 만에 유전자 검사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춘 셈이다.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유전체 분석에 사용한 10만 달러(1억 1360만 원)와 비교하면 1000분의 1 수준이다.
국내 유전자 분석 기업 및 의료기관에서 앞 다퉈 일루미나 노바섹을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 발맞춰 건강보험공단은 암 환자와 희귀질환자의 NGS 유전체 검사에 건강보험 적용을 발표하면서 더욱 불이 붙었다. 본인부담금 50%만 내면 전체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22개 의료기관에서 NGS 유전체 검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비용은 45만~66만 원으로 알려져 있다.
# 유전자 검사 대중화를 둘러싼 상반된 시선
올해부터 비용이 크게 저렴해지면서 유전자 검사 대중화의 발판이 마련됐음에도 아직까지 실제 검사는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인지도 때문이지만, 각종 규제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우선 NGS 검사는 22개 지정 의료기관에서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병원 등 요양기관이 아닌 곳에서 하는 전체 유전자 검사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유전자 관련 토종 전문 기업들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만약 의료기관이 아닌 유전자 검사 전문기업을 통해 DTC 방식으로 NGS를 허용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는 각종 규제로 인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해외에서는 유전자 검사에 대해 문제가 되는 부분만 금지하는 네거티브 규제가 이뤄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의료당국은 아직까지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가령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아내 앤 워치츠키가 창업한 DTC 전문 스타트업 ‘23앤미(23andme)’는 우리나라에서 허용하는 비 의료정보는 물론 각종 의료 정보와 혈통, 유전병 정보까지도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만, 탈모, 피부미용 이외에는 모두 금지하고 있다.
유전자 검사업체 한 관계자는 “유전자 검사를 통한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라며 “우리나라도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 마땅히 육성해야 할 분야”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보수적 접근을 무조건 잘못된 규제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만약 유전자 검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허용하면 일어날 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실 검사를 통해 특정 질병에 대해 고위험성 판정이 난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질병에 걸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럴 확률이 높을 뿐이다. 그럼에도 지나친 건강염려증 환자에게는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게다가 전문 의료기관이 아닌 일반 기업에 유전자 분석을 허용할 경우, 적절한 의료적 조언이 뒷받침 되지 않아 이러한 불안감을 가중시킬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만 가진 문화적 특수성도 무시할 수 없다. 결혼 과정에서 배우자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자칫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유전자 검사에 대한 종합적인 육성책과 더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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