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 데뷔 10년 만에 시즌 2승으로 첫 다승자 타이틀을 달더니 2주 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며 3승까지 내달렸다. 2010년 이후 지난 5년간 LPGA 투어 우승이 없었던 과거는 잊혔다. ‘제2의 전성기’라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지난 6일(한국시간)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프로골퍼 김인경(한화)의 이야기다.
김인경은 ‘팔색조’ 또는 ‘4차원’이라고 불린다. 골프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 커리어 10년 만에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우승, 시즌 3승을 달성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김인경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 이후 캘리포니아에 머물고 있는 그와 11일 전화 통화가 연결됐다.
김인경은 지난 7월 2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 우승에 이어 리코 위민스 브리티시 오픈에서도 우승했다. 1주일 간격을 두고 우승 행진이 이어졌다. 연이은 경사에도 김인경은 차분했다. 우승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아직 며칠 안됐는데 벌써 오래전 일인 것 같은 기분이다. 마지막 라운드를 6타차로 리드하며 시작해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경기 할 수 있어서 만족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현재 컨디션에 대해서는 “푹 쉬어서 나쁘지 않은 상태”라고 답했다. 그는 대회 우승 이후 영국에 이틀을 더 머물다 미국으로 넘어갔다. 영국 여행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실제 보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에 김인경은 “조금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는데 특별히 여행을 한 것은 아니다”며 “대회 직후에는 보스턴을 경유하는 비행기밖에 없어서 피로감 때문에 이틀을 기다렸다가 미국에 왔다. 영국에 있는 동안 특별한 일정 없이 마사지 받고 휴식을 취했다. 시차적응에 어려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 김인경의 ‘나 혼자 산다’
혼자서 오래 생활을 하다 보니 악기 연주 외에도 독서, 산책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즐긴다. 그는 “한 지역에서 한 달 이상 머무르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 나가거나 다른 사람과 어울려서 하는 활동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인경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골프를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주로 아버지나 가족이 함께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혼자 나선 미국행이었다. 그는 “이제는 오래전 일이라 출발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미국투어를 나가고 싶으니까 현지에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며 그때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지금 돌아보면 외동딸을 혼자 보내는 부모님 결정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오는 친구들은 혼자서도 많이들 온다. 나도 똑같이 생각했었다”라고 말했다.
김인경은 한국나이로 19세가 되던 2006년 LPGA 퀄리파잉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했고 이듬해 투어에 데뷔했다. 이후로도 계속 혼자 활동했다. 바쁜 투어일정을 소화하며 미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이번 브리티시 오픈처럼 다른 나라도 오간다. 그래서인지 김인경은 미국에 ‘집’이 없다. 그는 “한번 집이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투어 생활로 비워만 두니까 별로 의미가 없더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호텔 등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김인경은 “투어 생활이 10년이 넘어가다보니 도움 주시는 분들이 많다. 때로는 친구 집에서 지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4년에는 함께 ‘박세리 키즈’로 불리는 절친한 또래 동료 박인비의 결혼식에 유소연, 오지영, 최나연과 들러리로 참석하기도 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크게 웃으며 “내가 신이 아니니까 특정 시점을 계획할 수는 없다”며 “아직 나를 알아가는 시기인 것 같다. 혼자 있으면 혼자 즐겁게 살고, 누가 생기면 둘이 즐겁게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혼자 있는 게 좋다”고 답했다.
그는 LPGA 휴식기에 돌입한 현재는 캘리포니아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를 선택한 이유로 “클럽 피팅이나 훈련을 하고 있다. 투어 중반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테일러메이드, 캘러웨이 등 골프브랜드 본사가 있는 이곳이 편하다”고 설명했다.
선수 생활에 대해서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선수들은 ‘30세까지 하고 싶다, 최대한 오래하고 싶다’ 등의 말을 하곤 하는데 그는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 아닌가”라며 웃었다. 농담이라고 밝히며 “골프보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마음으로 느낀다면 자연스레 그만두게 되지 않을까. 아직까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자를 해볼까. 이상한 질문을 많이 할 거 같아서 안 되겠다. 선수들에게 상처 주는 질문을 할 것 같다”며 웃었다.
김인경은 브랜드 로고가 새겨지지 않은 셔츠, 여러 브랜드 클럽이 섞인 골프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수의 골프선수들이 한 브랜드의 클럽을 후원받고 수입도 올리는 것과 달리 김인경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클럽을 골라 쓰고 있다. 클럽 스폰서를 받지 않는 자신만의 이유를 차분히 설명했다.
“처음 투어를 시작할 때는 클럽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클럽이 좋고 어떤 샤프트가 좋은지 몰랐다. 그땐 소속팀이나 회사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제는 투어 생활이 5년, 10년이 넘어가면서 어떤 클럽이 나에게 맞는지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지금이 편하다. 또 내가 그동안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기도 했다(웃음). 그냥 이게 나만의 방식인 것 같다.”
# 박세리와의 인연
그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며 두각을 드러낸 또래 선수들인 박인비, 신지애, 오지영 등은 함께 ‘박세리 키즈’로 불렸다. 90년대 후반 초등학생이던 이들은 박세리의 활약을 지켜보며 골프 선수로서 꿈을 키웠다.
김인경이 지난달 우승한 마라톤 클래식은 박세리와 유난히 인연이 깊은 대회였다. 그런 대회에서 박세리 키즈가 우승을 거두자 은퇴선수임에도 박세리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기도 했다.
김인경은 “21언더파로 우승했는데 대회 최저타 기록이 세리 언니 23언더라고 하더라. 마지막날 8언더파를 쳤는데 관계자분들은 신기록을 기대하기도 했던 것 같다”며 “나는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내 경기만 하는 스타일이라 특별히 관심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세리 언니와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명예의 전당 선수와의 비교다. 자체로도 기쁜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10년 전부터 박세리 키즈들은 돌풍을 일으켰고 이제는 이를 보고 자란 신예들이 속속 미국 무대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에게 해줄 만한 조언을 구하자 김인경은 “후배가 아닌 동료”라는 현답을 내놨다. 그는 “운동하는 친구들이 워낙 성숙하기도 하다. 선배 대접을 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이제는 분위기도 예전과 좀 달라졌다. 나도 전부터 그런 부분에 구애받지 않았다. 같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사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오랜 경험을 쌓은 선배로서 첫발을 내딛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하자 “다 잘하는데 무슨 조언을 하겠나. 오히려 내가 배운다”며 웃었다.
# 슬럼프 극복
그는 지난해 레인우드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LPGA에서 5년 만에 우승컵을 안았다. 2010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 이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인경은 지난해 우승 당시 “책 ‘조선왕조실록’을 읽은 게 도움이 됐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이전에 7박 8일 코스로 동북아청년역사기행을 다녀오며 백두산, 광개토대왕비 등을 둘러봤다. 고조선, 발해 역사 등을 공부하며 조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김인경은 우연히 공항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샀고 이틀 만에 이를 독파했다.
그는 대뜸 기자에게 “역사 좋아하냐”고 질문하며 “역사가 너무 재미있다. 역사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마음 공부도 되더라. 왕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왕은 은퇴가 없더라. 계속 공부만 해야 된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나락으로 떨어진 문신도 있는 걸 보며 내 삶만 힘든 게 아니라고 깨달았다. 그 책에서 희망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인터뷰 중에는 갑자기 기자의 본관을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청도 김씨’라고 소개했다.
그의 이름 뒤에는 ‘불운’, ‘트라우마’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지난 2012년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 18번 홀에서 30cm짜리 우승 퍼트를 놓친 것이 두고 두고 회자됐기 때문이다. 실제 김인경은 이후로 우승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수도 없이 받았을 ‘불운’에 대한 질문이 조심스러웠지만 그는 자신이 먼저 그 일을 꺼냈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 갈 수 있기에 괴로움을 피하고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괴로움이 없을 수 없다. 반면 괴로움이 아닌데도 괴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퍼트 미스를 한 것도 지나간 일인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안 좋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빠지고 과거를 생각하면 힘들다. 현재를 즐기려는 연습을 한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실제 그는 수년간 ‘마음 단련’에 노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교 신자인 그는 인도네시아 단식원에 가거나 법륜스님과 수행·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불교 이야기를 하며 기자가 ‘군대에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하자 그는 갑작스레 “나도 군대를 다녀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김인경은 “군대 다녀온 분들의 확실한 장점이 있다. 어떤 부분에서든 팀플레이를 잘하는 것 같다”며 “트럼프가 군대에 가야하는데…”라며 웃었다.
김인경은 ‘기부 천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퀄리파잉스쿨 수석 상금도 전액을 기부했고 틈틈이 기부활동을 이어갔다. 금전적 부분 이외에도 발달장애인 스포츠 대회인 ‘스페셜 올림픽’의 홍보대사 직함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스페셜 올림픽 선수들에게 직접 골프를 가르치기도 한다.
그는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은 안 된다”며 “공통 관심사가 골프라는 종목으로 엮여서 함께하고 있다. 운동선수라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아서 좋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는 운이 좋아서 프로도 되고 제가 하고 싶은 길을 걷고 있는데 그들은 저보다도 노력을 많이 하고 골프를 좋아하지만 저처럼 좋은 여건에서 마음껏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더 알려주고 싶고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활동을 계속하다보니까 오히려 내가 더 배우는 느낌이다. 그분들이 저를 가족처럼 생각해주다보니 계속 관계가 이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상래 일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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