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디어 업계가 어렵다고 합니다. 기성 미디어는 물론이고 뉴미디어도 돈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미디어가 세상을 호령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는 푸념도 나옵니다. 정말 그럴까요? 혹시 미디어업계는 진화했는데, 우리만 진화한 미디어를 미디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이를테면 구글같은 회사 말이죠.
실리콘밸리 대표주자인 구글은 미국 증시를 이끄는 거대 기업입니다. 구글은 알고리즘을 통해 기사를 포함한 웹페이지를 검색으로 보여줍니다. 검색 알고리즘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전 세계 네티즌이 구글을 사용하지요. 덕분에 구글은 검색광고로 천문학적인 광고수익을 법니다. 그 수익을 다시 다양한 사업에 재투자하지요.
저는 구글이 미디어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구글의 ‘언론’으로서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언론으로서 구글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우선 구글 뉴스가 생각납니다. 기성 미디어의 기사를 재배치해서 보여주는 서비스지요. 한국에서 네이버, 다음 등 포털과 마찬가지로 구글 뉴스도 언론사 홈페이지보다 큰 영향력을 가진 뉴스 포털입니다.
2016년 6월, 신문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안민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신문과 포털의 계약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포털 뉴스를 통해 포털이 얻는 수익은 3528억 원입니다. 그에 비해 신문사가 받는 비용은 30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안 교수는 포털이 신문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3000억 원에 이르는 수익이 ‘뉴스’라는 콘텐츠 때문이라면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수익이 콘텐츠 때문만이 아니라 뉴스를 편하게 찾아 볼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 때문이라면 어떨까요?
잘 만들어진 디자인, 빠른 검색, 기사 추천 등 많은 부분에서 포털 뉴스는 뉴스 사이트보다 월등하게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합니다. 유저들은 기사를 포함한 ‘IT 서비스’를 사용합니다. 포털 뉴스라는 제품에서 기사가 전부는 아니라는 거지요. 하다 못해 웹사이트 서버를 유지하는 데도 비용이 듭니다. 정말 포털 뉴스의 수익이 뉴스 때문이었다면 사람들은 뉴스 사이트에서 기사를 보는 걸로 만족했을 테지요.
구글 뉴스는 일반 언론사 홈페이지보다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뉴스를 깔끔한 화면으로 보여줍니다. 우선 디자인과 개발 능력이 뛰어납니다. 기사 선택도 중요합니다. 구글은 취재원, 기사 생산량, 기사의 길이, 편집국의 규모 등으로 매체를 평가합니다. 이를 기준으로 고품질의 기사를 노출하지요. 유저 정보를 바탕으로 유저가 원하는 기사를 상단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구글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소통도 뛰어나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본인들이 데이터를 어떻게 시각화하는지를 정기적으로 공개한다.
구글 뉴스는 다양한 언론사의 기사를 유통시키기에 언론사 홈페이지보다 풍성하게 기사를 보여줍니다. 덕분에 구글 뉴스는 9·11 테러 등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에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테러의 충격을 발 빠르게 다양한 기사로 전달한 구글 뉴스가 하나의 기사, 소수의 취재원만 동원할 수 있는 언론사 홈페이지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은 겁니다.
한국에서 네이버가 그렇듯, 구글 뉴스도 언론사의 생명줄이 되었습니다. 구글에서 빠지는 순간 아무도 그 언론사의 뉴스를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론사는 독자적으로 생존하기보다는 구글에 잘 보이려 애쓸 수밖에 없지요.
구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직접 기사를 제작한 겁니다. 소수의 저널리스트와, 구글의 무기인 인공지능을 통해서입니다.
2017년 7월, 구글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인공지능을 통해 로컬뉴스를 제작하겠다는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기자와 데이터와 로봇’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구글은 영국에 로컬뉴스를 보급합니다. 5명의 기자가 기사 템플릿을 제작합니다. 공공기관, 지역단체 등은 기초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를 인공지능이 결합해 로컬기사로 생산합니다.
구글의 프로젝트는 흥미롭게도 ‘로컬뉴스’를 겨냥했습니다. 로컬뉴스는 기성 언론의 취약점입니다. 언론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로컬 언론시장이 무너졌습니다. 한국처럼 작은 나라는 물론, 미국처럼 큰 나라조차 세계적 규모의 대형 언론이 모든 파이를 가져갔지요.
중소 규모의 언론사가 사라지면서 시골의 로컬뉴스를 쓰는 리포터는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통신사 또한 지방뉴스를 취재하기 어렵고요. 자동화를 통해 인력을 줄이면 자본 논리를 유지하면서 로컬뉴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구글 뉴스는 ‘자동화’를 통해 기성 언론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려 하는 셈입니다.
단순 사실전달 기사라면 자동화가 가능합니다. 인간 기자가 틀을 만들고 외부에서 데이터를 받아 인공지능이 이를 조합해 기사화합니다. 단순 스트레이트 기사는 인공지능이 충분히 생산할 수 있습니다. 기상청 담당 기자 없이 기상청이 제공한 날씨정보를 받아 템플릿을 활용해 기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구글은 이런 방식으로 정보성 단신기사를 대체하려 합니다.
구글은 기획기사도 만듭니다. 기획기사는 단신과는 달리 자동화가 불가능합니다. 주제, 소위 말하는 ‘야마’를 잡아야 합니다. 취재도 필요하지요. 정보를 스토리화해 기사로 만드는 작업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저널리스트의 역량을 따져봤을 때는 언론사가 구글보다 뛰어납니다. 언론사의 특기 분야니까요. 하지만 구글에게도 구글만의 무기가 있습니다. 기술력입니다.
할리우드의 여자배우 부족현상을 지적한 구글 공식 블로그의 포스팅은 구글의 기술력이 훌륭한 저널리즘으로 이어진 좋은 예입니다. 이 기사에서 구글은 1년 동안 미국에서 만들어진 모든 영화를 분석했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 영화에서 여성 배역이 차지하는 비율을 분석했지요. 사람이라면 해낼 수 없는 ‘노가다’입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해 ‘영화에서 여성 배역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의 근거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데이터를 누구보다 멋지게 시각화해 뉴스로 만들었습니다.
구글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 산업이 어떻게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드는지 파헤쳤다. 그 방식으로는 머신러닝을 활용했다.
멋진 기획입니다. 구글의 딥러닝 기술이 없었다면 만들 수 없는 기사이기도 하지요. 사회의 성평등 의식 제기에 기여합니다. 그러면서도 본질적으로는 구글의 딥러닝 기술을 홍보한 기사입니다. 회사의 수익모델에 기여하는 글인 셈이죠. 사회적 기여와 수익모델 모두를 잡은 기사인 셈입니다.
언론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디어가 세대교체를 이루는 상황일지 모릅니다. 과거에는 신문, 방송이 플랫폼이었지요. 하지만 기존 플랫폼은 기사 단위로 분절화하고, 이를 다시 하나로 통일한 IT 플랫폼이 그 자리를 대체했습니다.
구글은 기성 언론보다 더 편하고 중독성 있는 방식으로 기사를 제공합니다. 나아가 자동화, 효율화를 통해 기성 언론이 만들지 않는 로컬기사를 만듭니다. 기술과 자본을 활용해 기성 언론이 다루지 못하는 기획기사를 생산하기도 하지요. 훌륭한 미디어기업입니다.
뉴미디어가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기존 언론과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기성 언론과 대결하려 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취재력, 저널리즘 역량, 언론의 광고 영업력 등에서 기성 언론의 경험을 이기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아예 새로워서 이게 언론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방식이라면 어떨까요? 새로운 길이라면 기성 언론을 능가하는 언론이 될지도 모릅니다.
기성 언론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차별화해 미디어적 영향력을 갖게 된 IT 플랫폼, 구글이었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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