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저는 고교 시절 심한 왕따를 당했어요. 그 기억은 어른이 된 후, 저의 취미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더군요. 1980년대 말 대학을 다닐 당시 프로야구가 붐이었는데요. 많은 사람이 한 목소리로 상대팀 선수에게 야유를 보내는 모습이 제게는 불편했습니다. 스포츠 대신 영화나 소설을 즐겼습니다. 운동경기는 아무리 열심히 응원해도 우리 팀이 이길 확률이 반반이지만, 소설이나 영화에선 무조건 우리 팀이 이기거든요.
그 시절, 제게 최고의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이었어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풀 메탈 재킷’ ‘샤이닝’ 등 손대는 영화마다 해당 장르에서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냈지요. 특히 ‘샤이닝’은 제가 본 공포 영화 중 최고였습니다. 영화를 본 후, 원작 소설도 읽고 싶었어요.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가 썼는데, 그의 작품 중 ‘캐리’나 ‘미저리’처럼 영화로 흥행한 작품이 많더군요. 당시엔 스티븐 킹의 소설이 국내 소개되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결국 용산 미군기지 앞 헌책방을 뒤져 페이퍼백 원서를 구해 읽었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 시원한 도서관에 틀어박혀 스티븐 킹의 공포 소설을 읽었는데요. 최고의 피서였어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지거든요. 물론 그 덕분에 영어 실력도 많이 늘었고요.
요즘도 제게 최고의 피서는 독서입니다. 만약 내가 지금 대학생이라면 방학을 맞아 어떤 책을 읽을까? 아마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를 읽을 것 같습니다. 해리 보슈는 LA 경찰서 살인 전담 강력계 형사입니다. 정말 끈질기게 범인을 추적하지요. 온갖 단서와 제보를 쫓다보면 진범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많은데, 보슈는 낙담하는 법이 없습니다. “형사는 허탕 칠 때마다 기뻐해야 한다. 용의자들 중에서 범인이 아닌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진범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니까.”
죽은 자를 위해 정의를 집행하는 그에게 적은 산 자들입니다. 살인범이나 공범, 혹은 그 배후세력이 그의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집요하게 압력을 가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뇌물도, 정치적 압력도, 통하지 않아요. 보슈에게 룰은 딱 하나입니다.
‘Everybody counts or nobody counts.(모든 사람이 소중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소중하지 않다.)’
경찰서 상부에서는 그를 달가워하지 않아요. 외로운 늑대로 좌충우돌하며 살던 그는 결국 은퇴를 하는데요. 퇴직한 후, 자꾸 한쪽다리를 절면서 걷게 됩니다. 수십 년간 오른쪽 허리춤에 무거운 권총을 차고 다닌 탓에, 권총이 없으니 묘하게 몸의 균형이 틀어진 거죠. 결국 퇴직한지 3년 만에 해리 보슈는 미해결 사건 전담반으로 복귀합니다. 17년 전 미해결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맡은 보슈에게 수사반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 전담반(미해결 사건)이 이 건물(LA경찰서)에서 가장 고귀한 곳이라는 겁니다. 피살자들을 잊는 도시는 길을 잃은 도시죠. 이곳은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예요. 우리는 9회 말에 불려나오는 투수 같은 존잽니다. 마무리 투수. 우리가 끝낼 수 없으면, 아무도 끝낼 수 없는 거예요. 우리가 일을 망쳐버리면 게임은 끝나는 거고, 왜냐하면 우리가 최후의 수단이니까.” -‘클로저’ 중에서
추리소설 읽기는 제게 평생 가는 취미입니다. 마이클 코넬리 같은 믿음직한 작가, 또 그가 창조한 해리 보슈 같은 형사를 만나면, 연전연승하는 최고의 팀을 만난 셈입니다. 이렇게 든든한 길동무가 있다면 퇴직 후 긴 시간도 두렵지 않아요.
더위를 피해 시원한 동네 도서관에 가셨다면, 마이클 코넬리를 찾아보세요. 보슈 시리즈는 출간 순서대로 읽는 편을 권해드립니다. 국내 소개된 작품 중에서 블랙 에코, 콘크리트 블론드, 라스트 코요테, 유골의 도시, 혼돈의 도시 등의 순으로 추천합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나 ‘시인’도 재미있습니다. 왕따의 괴로운 기억은 책 읽는 즐거움으로 날려버렸어요. 독서의 즐거움 속에 무더위도 싹 날려버리시길 바랍니다.
김민식 MBC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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