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잠깐, 2012년으로 돌아가 보자. 누군가에게 2012년은 대통령을 잃어버린 해, 유로 2012가 있었던 해, 혹은 디아블로 3가 나온 해다. 하지만 내겐 외가와 친가에 대한 이중잣대와 이들을 둘러싼 사회의 차별을 인지한 해였다.
그해 여름, 외가 친척 한 분이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던 나는 출근길에 급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공익담당자와 수간호사 및 간호과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방향을 틀었다. 친척의 황망한 죽음보다 날 절망하고 분노케 한 것은 정신없이 삼일장을 치르고 나서 써야 했던 연차서류였다.
사회경험이 없으니 그전까지는 몰랐다. 같은 촌수의 친척이더라도 외가냐 친가냐에 따라 쓸 수 있는 경조사 일수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외가 친척의 경조사에 쓸 수 있는 휴일은 친가의 그것보다 하루 모자랐다. 내게 주어진 연차는 2일이었고, 난 삼일장을 지켰다. 개인 연차를 추가로 사용했다.
개인 연차 하루를 더 쓰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 친척과 7년 동안 함께 살며 쌓은 추억과 슬픔이 외가라는 이유 하나로 평가절하 받는 기분이었다. 무슨 기준으로 친가와 외가에 쓸 수 있는 경조사를 나눈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이 말하는 공동체 의식일까, 아니면 성균관 유생들이 말하는 유교 의식인 걸까, 혹은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적폐인 걸까.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같은 문제를 지적했지만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은 듯하다. 외가 경조사만 검색해도 관련기사가 수두룩하게 나온다. 경고만으로 고쳐질 세상이면 진작 고쳐졌겠다. 최근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성차별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호주제가 폐지된 지 어언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여성은 남편의 이름 모를 친척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유리천장이라는 말도 웃기다. 남성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너무나 잘 보이는 장벽 아닌가. 한국은 여성 CEO(최고경영자)가 드물기로 유명한 나라다.
성차별을 극복해 성평등 사회로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임금차별은 경력단절이라는 복잡한 문제가 있고, 제사는 가정의 문제다. 유리천장 역시 한 번에 깨뜨릴 수 없다. 하지만 경조사 연차일수 차별은 다르다. 아무 근거도 없이 규정된 날짜의 숫자를 1만 올리면 된다. 가장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해소해 나가자. 슬픔을 차별하지 말자.
구현모 알트 기획자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2030현자타임] 장애인 이동권 없으면 '포용도시'도 없다
·
[2030현자타임] 청소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정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
[날;청년] "첫날부터 퇴사하고 싶었고 지금도 퇴사하고 싶어"
·
[날;청년] '프로불편러'가 필요 없는 세상을 바라는 프로불편러
·
[2030현자타임] 서글픈 남녀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