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노인복지를 전공한 한혜경 교수가 1000명에 달하는 은퇴자를 만나 삶의 질을 조사했는데요.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의 이야기 중 가장 많이 떠올랐던 단어가 ‘후회’랍니다. 평소 한 교수는 여성 사회학자로 살며 ‘이 땅에서 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불리한 일인가?’하며 분통을 터뜨렸답니다. 그런데 은퇴한 남자들을 만나 보니 그들 또한 ‘위너’는 아니더란 거죠.
한때 잘나가던 남자들이 은퇴를 하면 금세 초라해집니다. 직장에서 만났던 관계가 다 사라지거든요. 가족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고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취약한 존재로 전락해버립니다. 은퇴를 준비하는 40~50대 남자들에게 저자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당신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라. 가족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에서 벗어나라.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일에 죄의식을 가지지 말라.’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한혜경, 아템포)
빛의 화가 모네는 젊어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을 했는데요, 59세가 되어 노르망디 지방 지베르니에 있는 자신의 집 연못의 수련만 그리기 시작했답니다. 86세에 죽을 때까지 200여 점의 수련 연작을 남겼대요. 누군가의 전성기는 나이 60에 시작되기도 하는 겁니다. ‘이제 나이 60이 넘어 젊은 날의 열정과 체력은 없으니 그림은 포기해야겠다.’ 모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우리가 아는 수련 연작은 나오지 않았겠지요. 나이 80에 붓을 잡은 모네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 우리 집 연못에 있는 수련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진작 알았더라면, 쓸데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방황하지 않았을 텐데.”
청춘의 시기에는 행복을 찾아 헤매었다면, 장년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삶의 낙을 찾아야 합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나 자신이 있습니다. 은퇴 후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욕심을 줄이는 것도 은퇴 후 삶을 준비하는 자세이겠지요. 체조 선수 양학선이 그런 말을 했대요.
“더 높게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착지가 중요하니까.”
기대수명과 실업률이 동시에 높아지는 시대, 우리는 앞으로 장시간 놀아야 합니다. 어려서는 공부를 잘 하고, 젊어서는 일을 잘 하는 게 중요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잘 노는 게 중요합니다. 퇴직 후, 어떻게 놀아야 할까 그것을 늘 고민하는데요. 한혜경 교수님이 추천하는 취미 활동 중 하나는 글쓰기입니다.
나이가 들면 체력은 약해지지만 감성은 더 풍부해집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글쓰기를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맑아집니다. 일흔 넘어 한글을 처음 배운 할머니에게 물었대요. 한글을 배우니까 뭐가 좋으냐고.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안 보이던 꽃이 보이더라.”
5년 전부터 블로그를 운영했어요. 블로그의 주된 내용 중 하나가 독서일기입니다. 블로그의 오랜 독자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제가 블로그에 올리던 서평과 ‘비즈한국’에 연재하는 ‘인생독서’는 또 다른 느낌이라고. 아무래도 제 이름을 걸고 매체에 연재하는 칼럼이니 좀 더 공을 들이게 됩니다. 책을 고를 때도 신경을 쓰고, 글을 다듬는 데도 더 오랜 시간을 들이고 있어요.
글쓰기든, 영어 공부든, 은퇴 준비든 잘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게 답입니다. 은퇴 준비를 잘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금이라도 일찍 은퇴 준비를 시작하는 거죠. 은퇴 후 가장 큰 후회는 은퇴 준비를 너무 늦게 시작한 것 아닐까요?
김민식 MBC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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