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틈이다. 세계는 물질성과 물질이 주인공인 개별자들의 영역이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틈으로 구성된다. 틈이 세상의 전면이고 정면이다. 그런데 틈은 한없이 어둡고 탁하고 깊다. 미술평론가 김윤섭의 말처럼 틈은 ‘검을 흑(黑, black)’이 아니라 ‘가물 현(玄, dark)’이다. 그러므로 틈은 세상에 모습을 좀처럼 나타내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이 틈에 주목한 화가가 있다. 빛과 색이 주무르는 틈, 화가 이지수는 가물가물한 어둡고 탁하고 깊은 틈을 빛과 색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사람이다. 빛은 작가를 틈으로 인도하고, 작가는 색으로써 틈을 세상의 전면에 부각시킨다. 따라서 빛이 있어 틈이 있고, 색이 있어 틈은 지속된다.
오랫동안 뉴욕에서 활동하다 지난 해 귀국한 화가 이지수의 초대전이 오는 6월 12일 오픈한다. 서초동 갤러리 마노에서 7월 1일까지 계속되는 <빛과 색, 상상할 수 있는 너머의 유혹> 전은 한국화에서 시작해 서양화법의 세례를 받은 화가 이지수의 귀국 신고이면서, 동시에 ‘빛과 색’의 참다운 가치로 되돌아가자는 선언이기도 하다.
화가 이지수는 2008년 뉴욕 카네기 홀이 선정한 작가로 뽑혀 카네기 홀에서 발행하는 잡지의 커버를 장식하였으며, 2009년 4월엔 ‘The Artlist’ 라는 작가들을 위한 웹 매거진에서 4월의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시인 허만하는 “틈을 주무른다.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더듬는 알몸의 포옹이 만드는 캄캄한 틈. … (중략) … 존재는 틈이다. 손이 쑥쑥 들어가는 적막한 틈이다”라고 했다.
팔순의 노시인과 화가 이지수는 30여 년에 이르는 연차도 있지만, 서로 만날 수 없는 물리적 거리를 두고 생활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지수 작가의 특징을 이처럼 날카롭게 압축하고 있는 시구를 찾기도 어렵다. 세대를 넘고 장르를 초월한 시와 회화의 참다운 콜레보레이션이라고 할 만하다.
허만하 시인은 틈을 언어로 주물렀으나, 이지수 작가는 빛과 색으로 주물러댄다. 그녀가 주물러댄 틈의 어둡고 탁하고 깊은 양상은 다채롭지만 과시적이지 않다. 며칠 전 타계한 하모니즘(Harmonism)의 대가 김흥수 화백처럼 이지수의 이번 전시는 틈 속에 세상의 진리가 함축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가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문의 <갤러리 마노> 02-741-6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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