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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아이스커피, 좋아 좋아 좋아

여름엔 아이스커피? 따뜻한 커피 마셨을 때보다 갈증 더 빨리 해소된다고 느껴

2017.07.26(Wed) 16:56:56

[비즈한국] 나는 지금 휘경여자중고등학교 앞에 있는 작은 카페 Coffee Mama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물론 몇 명 되지 않는 손님은 언뜻 보더라도 휘경여고 학생들이다. 이들 중에는 한 시간 후에 있는 내 강연을 들으러 방학 중인데도 학교에 나온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빙수를 사이좋게 나눠 먹고 나는 아이스커피를 마신다.

 

예전에는 커피는 사치품이었다. 오죽하면 점심 값보다 더 비싼 커피를 마신다는 지청구를 했을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커피는 하루라도 건너뛸 수 없는 필수음료가 되었고 가격도 밥값보다는 싸졌다. (밥값이 많이 오르기도 했지만 커피 값도 분명히 내렸다.) 그리고 내 소득도 제법 늘어서 커피 정도는 맘껏 마시게 되었다.

 

나는 원래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 에스프레소를 투 샷으로 주문한다. 하지만 여름에는 웬만하면 아이스커피를 마신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것도 모자라 찬 얼음까지 잔뜩 넣은 커피를 맛있다면서 마시는 게 조금 웃기지 않은가?​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여름에는 아이스커피를 많이 마신다. 왜일까?


우리가 물을 비롯한 음료를 마시는 이유는 분명하다. 몸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체중의 70퍼센트는 물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내 배가 출렁이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 몸을 차지하는 물은 맹물이 아니라 소금물이다. 

 

우리 몸에 있는 소금의 성분은 바닷물의 성분과 같다. 단지 농도만 다를 뿐이다. 바닷물이 약 3.4퍼센트 소금물이라면 우리 몸은 0.9퍼센트 소금물이다. 우리는 매일 1그램 정도의 소금을 먹어야 이 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농도를 유지 못하면 생명 작용은 심각하게 떨어진다. 예를 들어 신경 전달에 나트륨 원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트륨이 부족하면 5분도 견디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 병원에 응급환자가 들어오면 일단 식염수를 주사하고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소금만 조절하면 되는 게 아니라 물도 조절해 줘야 한다는 것. 우리가 땀을 많이 흘리거나 짠 음식을 먹으면 소금물 농도를 조절하기 위해 물이 더 필요하다. 물을 마셔야 한다. 그런데 우리 세포 속에 물이 부족한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지 않은가. 생명은 기가 막힌 장치를 발명했다. 그것은 바로 ‘갈증’이라는 괴로움이다. 세포 속의 소금물 농도가 높아지면 뇌는 우리 몸에 갈증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것은 “여보게, 이러다가는 쓰러지겠어. 빨리 물을 마시라고!” 하며 경고하는 것이다.

 

땀 흘리는 여름이라고 해서 딱히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찬 물이나 더운 물이나 몸속에 들어가면 어차피 36.5도의 물로 바뀔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왜 아이스커피를 마실까? 차가운 물을 마시면 금방 갈증이 가시기 때문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차가운 물을 마시면 갈증이 빨리 가실까? 과학자들이라고 왜 이게 궁금하지 않겠는가.

 

2013년 학술지 ‘Appetit’에는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입안에 냉각수용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차가운 물이나 얼음 또는 아이스크림이 입안의 냉각수용체를 자극하면 뇌는 갈증이 해소된 것으로 해석한다. 피부에 있는 냉각수용체는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면 ‘춥다’라는 반응을 일으키지만 입안의 냉각수용체는 몸이 ‘춥다’라는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단지 갈증이 해소되었다는 반응만 일으킨다. 

 

실험 결과, 찬물은 따뜻한 물보다 갈증 뉴런을 빠른 시간 안에 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든 아이스커피를 마시든 몸에 물을 공급하는 건 같지만, 우리 뇌는 아이스커피를 마셨을 때 빨리 갈증이 해소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진화적으로 어떤 이점이 있기에 이런 현상이 몸에서 일어날까? 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 3년이 걸렸다. 2016년 9월 29일자 ‘Nature’에 갈증 반응에 대한 논문이 실린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는 갈증이 완전히 해소된 다음에 갈증 뉴런을 끄는 것이 아니라 입에 물이 들어오면 갈증 뉴런을 끈다. 입에 들어온 물이 각 세포로 전달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만약에 세포에 물이 충분히 공급된 다음에야 갈증 뉴런을 끄면 결국 세포에는 과도한 물이 공급되게 된다. 소금물의 농도가 너무 낮아지기 때문에 다시 물을 제거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걸 막기 위해서 일찌감치 갈증 뉴런을 끄는 것이다. 

 

실험을 해보니 찬물은 따뜻한 물보다 갈증 뉴런을 빠른 시간 안에 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든 아이스커피를 마시든 몸에 물을 공급하는 결과는 같지만 우리 뇌는 아이스커피를 마셨을 때 빨리 갈증이 해소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쓰디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한여름에는 아이스커피를 찾게 된다.

 

휘경여고 앞의 작은 카페 Coffee Mama에서는 큰 사이즈의 아이스커피가 단 3000원이며 자매인 듯 모녀인 듯한 두 여인은 친절하다. 마치 새소리처럼 고운 목소리로 조근조근 재잘거리던 휘경여고 학생들도 빙수를 다 먹고 사라졌다. 아마도 내 강연을 들으러 올라갔을 것이다. 강연장에 올라가면 선생님은 차가운 냉수를 준비해 놓으셨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다. 여름에는 아이스커피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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