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최대 방위산업체 KAI(한국항공우주산업)의 비리 혐의를 포착한 검찰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KAI 사건을 두고 “방산 비리로 보기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성용 전 KAI 사장과 임원들의 경영 비리와 정·관계 로비 의혹과는 별개로, 방산 비리와 직결되는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개발 과정의 원가 조작과 기체 결함 묵인 의혹 등은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인데 그 이유가 없지 않다.
KAI 검찰 수사와 관련,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은 크게 세 가지다. △하성용 전 KAI 사장과 측근들의 경영비리 △수리온 개발 과정서 원가를 조작해 개발비 부풀려 574억 원 편취 △결빙으로 인한 기체 결함 및 하자에 대한 KAI, 방사청의 묵인‧방조 등이다. 경영 비리를 제외한 나머지 두 개는 방산 비리 의혹이다. 모두 2015년 감사원의 KAI 감사 보고서에서 제기됐다.
현재 검찰 수사의 초점은 하 전 사장과 KAI 경영진 비리에 모아진다. 이들은 하 전 사장의 측근이 운영하는 특정 하도급 업체에 일감을 몰아준 뒤 ‘백마진’ 형태로 뒷돈을 받아 비자금을 챙기거나, 차명으로 설계 용역업체를 차려 수십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감사원 감사보고서와 이후 접수된 추가 제보 등을 토대로 이미 사실 관계를 상당 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하 전 사장이 재임시절 연임을 위해 정·관계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까지 나오면서, 전 정권을 향한 전방위 사정으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런데 군과 법조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KAI 비리 의혹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방위산업 전문가는 “KAI 경영진 비리 등에 대해선 별다른 이견이 없다. 다만 이번 수사를 대규모 방산 비리로 보는 것에 대해선 신중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감사원의 원가 조작과 기체 결함 등의 방산 비리 지적을 뜯어보면,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는 주장이다.
# 계약서에 명시됐는데도 방산 비리?
‘비즈한국’이 입수한 감사원 감사결과 보고서를 보면, 방사청은 2006년 수리온 개발을 위해 KAI 등 22개 국내외 업체와 기술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KAI는 기술 개발을 총괄하면서 방사청의 개발비와 투자 보상금 등을 나머지 21개 업체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KAI는 2013년 방위사업청에 청구할 원가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해 원가를 부풀렸다고 한다. 감사원은 “KAI가 직접 투자하지도 않은 21개 국내외 업체 투자 보상금을 ‘제조원가’로 명시했고, 방사청은 이를 그대로 인정해 KAI에 230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줬다”고 밝혔다.
KAI는 독점기술을 갖고 있는 외국업체에 지급한 기술이전료도 앞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성해 317억 원을 더 받았다. 감사원은 KAI가 부당하게 받은 금액은 총 547억 원에 달하며, 이 금액 중 일부가 KAI 경영진의 비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감사원의 지적이 사실이라면 KAI와 방사청이 공모해 국방비를 빼돌린 대형 방산 비리가 된다.
그런데 감사원이 지적한 투자보상금은 ‘일반관리비’ 항목이다. 국방부령 ‘방산원가대상물자의 원가계산에 관한 규칙’을 보면, 일반관리비는 무기 개발 및 양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료비, 노무비, 경비 등 각종 관리비용을 말한다. 계약금의 2~3%로, 그동안 대부분의 방위산업 계약 과정에서 ‘제조원가’에 포함돼 왔다.
방위사업청-KAI의 계약에도 앞서의 훈령이 적용됐다. KAI가 방사청을 속이고 원가를 부풀려 일반관리비를 청구했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와 다르다. 수리온 헬기 개발 및 제1, 2차 양산 계약조건을 보면 KAI는 기술 개발 총괄을 맡았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리비는 KAI가 청구하도록 명시돼 있다. 해외 기술이전비(핵심 부품 수입비) 역시 경비원가에 해당하고, 이에 따른 일반관리비 청구가 가능하다는 내용도 있다.
즉 수리온의 핵심 부품을 수입했더라도 이는 제조원가에 포함되며, 조립‧양산도 KAI가 총괄 수행하기 때문에 KAI의 일반관리비 산정 및 청구는 앞서의 국방부 훈령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방위산업 전문 변호사는 “원가 조작 비리 혐의가 적용되려면 사기나 허위문서 작성 등이 확인돼야 하는데, KAI와 방사청은 공개된 자료를 토대로 협의하에 계약을 맺었다”며 “원가 산정과 일반관리비 지급 과정을 두고 발생한 법리적 해석의 차이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계약 위반’ 사건이다. 형사가 아닌 민사로 풀어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2015년 감사 결과를 토대로 방사청에 ‘KAI의 원가부풀리기’에 대한 조치를 권고했다. 방사청은 KAI에 대해 방위사업관리규정 제420조 제2항(기타 외부기관에서 계약업체의 부당이득 편취 사실이 확인되면 부정당 제재나 부당이득금 환수 조치)에 따라 감사원이 지적한 금액 574억 원에 대한 부당이득금을 환수했다. 방사청은 수리온 제1, 2차 양산 과정에서 지급된 일반관리비를 모두 회수했고, 3차 양산 계약에서는 일반관리비 항목을 제외했다.
문제는 앞서의 방위사업관리규정은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기 전, 수사 기관의 결과 통보만으로도 적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방사청은 법원의 결정 없이도 행정조치를 내리고 집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KAI와 방사청은 앞서의 부당이득금 환수 조치를 두고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KAI는 “최초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이행했다”며 “1, 2차 일반관리비 회수는 물론, 법원 판단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 3차 양산에서 일반관리비 항목을 제외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사청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른 행정조치”라고 맞서고 있다.
# 결빙 테스트, 추후 평가 조건으로 명시
결빙에 의한 수리온 기체 결함 관련 의혹도 앞서의 원가조작 의혹과 비슷하다. 결빙 관련 의혹은 KAI뿐만 아니라 방사청과 장명진 전 방사청장으로도 번져있다. 방사청이 기체 결함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KAI가 양산을 하도록 묵인‧방조했다는 내용이다.
결빙 문제가 크게 이슈화됐지만, 이를 형사처벌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방사청과 KAI의 계약조건 및 수리온 시험평과 과정을 보면, 당초 결빙 테스트는 특수계약조건으로 별도 항목으로 명시돼 있다. 즉 결빙 테스트까지 통과해야 수리온 양산이 가능한 게 아니라, 최초 계약부터 ‘추후 시험 평가’로 정해졌다는 얘기다.
수리온의 결빙 테스트 기준은 영하 30℃다. 혹한기에 북한의 개마고원 등 일부 지역에서 작전을 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만든 기준이다. 문제는 국내에서 영하 30℃까지 떨어지는 지역이 없어 시험평가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해외에 기체를 옮겨 시험 평가를 해야했는데 결빙 테스트만 1년 소요가 예상됐다.
군의 한 관계자는 “수리온은 개발부터 양산까지 총 6년이 걸렸다. 해외 대규모 방산업체들은 헬기 개발부터 양산까지 최소 10년에서 최대 20년에 걸쳐 진행하지만, 수리온은 노무현 정부의 지시에 따라 대부분의 핵심 부품을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방식으로 빠르게 개발‧양산됐다. 1년을 결빙 테스트로만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군사 전문가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윈도가 7, 8, 10으로 업그레이드 되듯, 헬기도 마찬가지다. 알파, 브라보, 찰리 순으로 버전 업을 한다”며 “전력화가 되더라도 국내와 북한 지역에서 영하 30℃까지 내려가는 지역은 거의 없기 때문에 결빙 테스트를 버전 업 과정에서 진행하는 조건으로 계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수리온에서 다양한 기체 결함이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헬기도 기계다. 설계 단계에서 예상을 하고 제작해도 1만 시간 비행에서 안 나타나던 결함이 2만 시간 비행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기술개발을 하고 버전 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감사원, 부실 감사 지적 받던 시기
KAI에 대한 감사원 결과와 실제 계약 내용이 다른 이유에 대해 군 관계자들은 감사 당시 상황을 지적한다. 감사원이 KAI를 감사하고 발표했던 시기는 2014년 10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방산 비리 척결’ 의지를 보였던 때와 맞물린다. 이후 정부는 경찰·검찰·감사원·국세청 등 각 사정기관에서 파견된 인력 100여 명으로 구성된 방산 비리합동수사단을 구성했고, 이와 별도로 감사원도 대대적인 방산 비리 관련 감사에 나섰다.
문제는 당시 실적에 급급한 나머지 부실 수사, 감사 등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합수단은 2015년 12월 전‧현직 장성급 11명 등 77명을 기소하면서 1년 만에 활동을 마쳤지만 1심 재판에서 무죄율 31%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일반 형사사건 무죄율은 2.2~3%였다. 합수단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고 볼 수 있다. 합수단은 적발한 방산 비리 액수도 당초 9800억 원이라고 밝혔으나, 이는 비리 금액이 아닌 단순히 각 사업의 총 액수를 더했던 것으로 드러나 ‘성과 부풀리기’ 비판을 받았다.
감사원이 KAI를 조사한 기간 동안 이뤄진 감사원의 방위산업 조사에 대해서도 합수단과 비슷한 비판이 나온다. 당시 방위산업 업계에선 “방위산업 비전문가로 구성된 한정된 인력의 감사원 조사관들이 복잡한 무기도입체계를 제대로 감사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비즈한국’이 입수한 2013~2016년 방사청과 업체 간 소송 관련 자료를 종합하면, 감사원이 방사청에 행정조치 권고를 내린 이후 제기된 행정소송 총 78건 중 재판이 종료된 47건에서 방사청 패소율이 34%에 달한다. 여기서 다시 방위산업 관련 소송으로만 추리면 패소율은 51%에 이른다.
앞서의 KAI-방사청 민사소송과 같이 감사원이 일단 방산 비리로 조치 권고를 내리면 방사청이 행정조치를 내렸는데, 뚜껑을 열고 보면 방산 비리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방산업계 관계자들이 “당시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신뢰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당시 방산 비리와 관련된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던 합수단이 KAI 사건을 외면했다는 의혹도 앞서의 감사원의 무리한 감사와 연결된다. 전 합수단 관계자는 “당시 감사원이 넘긴 내용만으로는 비리나 사기 등 형사사건 적용 요건이 안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이후에도 KAI 방산 비리 추가 수사를 안한 게 아니라, 감사원 보고서만으로는 강제수사를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KAI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은 ‘방산 비리’라는 단어를 공개적으로 한 차례도 쓰지 않고 있다. 그동안 접수했던 추가 제보와 내사 내용도 대부분 하 전 사장 등 KAI 경영진 비리 의혹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검찰이 최근 수사 영역을 넓히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방산 비리 혐의가 새롭게 드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일단 KAI의 경영상 비리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하고 있다”며 “그 다음은 비자금과 하 전 사장의 연임 로비 의혹이다. 다른 의혹 등은 그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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