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요즘 주위에서, 햇살 따가운 날 양산을 들고 있는 남성을 본적 있다는 이들이 있다. 잘못 본 거 아니다. 우산도 아니고, 양산 맞다. 만약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양산을 쓴 남성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오히려 그게 당신이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이 뚜렷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증거일 수도 있다.
더 이상 사회적으로 남녀의 차이는 사라졌다. 패션과 뷰티에서 남성은 여성 못지않은 적극적 소비자가 되었다. 꾸미는 것, 자기관리는 성별과 상관없는 모두의 욕망이 됐다.
사실 양산은 자외선 차단에선 최고의 방법이다. 자외선 차단제를 아무리 발라도 양산 쓰는 것만 못하다. 심지어 양산은 탈모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강한 자외선은 피부뿐만 아니라 모발을 구성하는 케라틴이란 단백질을 손상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름철 건강관리에도 양산이 효과적인데, 양산을 쓰면 최대 8℃까지 체감온도가 내려간다고 한다. 들고 다니는 게 번거로워서 그렇지 꽤나 실용적인 도구임엔 틀림없다.
요즘 들어 지방자치단체에서 한여름 도심의 횡단보도 앞 간이천막을 쳐두는 게 유행인 듯하다. 신호대기 중 뜨거운 햇살을 잠시 피하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공공의 대형 양산인 셈이다. 남녀노소 자외선과 더위로부터 힘든 건 마찬가지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남성에게도 자외선 차단제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여겨진다. 20대 남성들만의 얘기가 아니라, 멋 부리는 3040까지도 해당된다. 골프장에 가면 5060 남성들까지 자외선 차단제 열심히 바른다. 남성에게 연령과 상관없이 자외선 차단제는 필수품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그런 점에서 양산 들고 다니는 여성들이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양산 들고 다니는 남성들도 서서히 자연스러워 보일 날이 올 것이다.
양산을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시대착오다. 여성이 양산을 쓰는 건 햇살을 피하기 위해서다. 즉 자외선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건 남성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2013년에 ‘양산남자(洋傘男子)’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었다. 남성들에게도 양산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며, 남성용 양산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실제 남성용 양산이 많이 팔리며 보편적 물건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일부 용감한 남성들에 의해 남성용 양산이 선보여지고 있지만 아직은 극히 소수다. 하지만 이들을 좀 더 관대하게 봐줄 필요도 있다. 남이 양산을 쓰건 우산을 쓰건 그게 뭔 상관인가. 그냥 무심히 지나치자. 우린 쓸데없이 타인에게 과한 오지랖을 부린다. 전혀 애정도 배려도 아닌 그냥 쓸데없는 참견일 뿐인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시오가오(しおがお)’도 유행했다. 시오가오는 소금얼굴이란 뜻인데, 수염자국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부가 희고 좋은 얼굴을 가리킨다. 외모에서 남성성보다 중성적인 이미지가 강조된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줄어든 이미지며, 패션과 스타일이 중요해졌다.
2000년대 일본에서는 구릿빛 피부의 남성이 인기가 많았다. 햇볕에 잘 그을린 스포츠맨 타입의 남성의 인기를 이젠 햇볕을 피하고 피부도 잘 관리해서 하얀 남성이 대신하고 있다. 이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근육질이나 수염, 힘 등 티 나는 육체적 남성성으로 남성의 매력이 가늠되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남성의 매력은 잘 관리하고 멋지게 스타일링한 것에서 나오는 시대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외모관리를 적극적으로 한다. 패션과 뷰티는 성공한 남성의 필수가 됐다. 과거엔 시사경제 잡지를 보고, 덩치도 좀 있고 뱃살도 좀 있으며 운동까지 잘하는 게 성공한 남성의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패션잡지 보고 문화예술 공연 즐기며 뱃살 없이 몸매관리 잘하는 게 오히려 성공한 남성의 이미지다.
과거였다면 남성성이 부족하다고 했던, 다소 여성적이거나 감성적이고 유약해보였던 남성일 수 있다. 남성성이 신체적 조건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으로 확실히 변한 셈이다.
화장품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파우더룸’의 회원수가 2017년 7월 기준으로 180만 명 넘는데, 이중 남성 회원이 34만 명 이상이다. 비율로는 전체의 19% 정도 된다. 2008년에는 회원 중 남성의 비율이 6.1%였던 것을 감안하면 급증한 셈이다. 특히 2015년을 기점으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고 한다.
화장품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뷰티 커뮤니티는 여성들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루밍족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남성들도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군인들도 중요한 화장품 소비자가 되었다. 화장품 업계에선 군인전용 화장품을 만들고 군인에게만 혜택주는 이벤트도 많이 진행한다.
심지어 군인 화장품 전용 브랜드도 있을 정도로 이미 군인은 화장품에서도 주요 소비자다. 사실 군인은 대학생과도 같다. 20대다. 20대 남성이 가지는 스타일과 미백에 대한 욕구는 군인이어도 비슷한 것이다.
한국인은 전세계에서 남성 화장품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적어도 한국의 2030 남성들 사이에선 외모관리를 하는 남성을 일컫는 그루밍(Grooming)족은 특별한 남성이 아닌 그냥 보통의 보편적 남성이다.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도 패션과 외모관리에 관심 많은 남성을 일컫는데, 과거엔 소수의 남성들의 얘기였지만 지금은 모든 남성들의 보편적 얘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50대 아저씨들도 멋진 중년이 되려고 패션과 외모에 투자를 하고, 6070대 할아버지들도 멋진 노년이 되려고 스타일에 관심을 둔다. 안티에이징 하겠다고 화장품을 쓰는 중년남도 많고, 자외선 차단제는 늘 챙겨 다니는 남성들도 많다. 이런 시대에 2030대 남성들이 양산을 쓰고 다니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양산 쓰고 다니는 남성, 난 그들을 지지한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다를 바 없다. 우린 같다. 단지 그뿐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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