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검사 박찬호)는 14일 개발비 등 원가 조작을 통해 개발비를 부풀려 부당한 이익을 취한 혐의(사기) 등으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남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
KAI는 국내 최대 항공관련 방산업체다. 검찰은 KAI가 수리온 헬기와 FA-50 등 개발 과정에서 설계 외주를 맡긴 용역업체와 원가를 부풀려 계약하는 방식으로 400억 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 감사원 감사 ‘재탕’ 지적부터 나와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 배경을 두고 군과 방산업계 일부 관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검찰의 수사 시기가 적절하냐”는 지적부터 “새로울 것 없는 재탕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 척결 기조 아래 “첫 타깃을 제대로 잡았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수사 시기에 대한 지적은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순방과 연결된다. 문 대통령은 6월 29~30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양국 정상 간 만찬과 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T-50 구매 의사를 타진했다. 한국이 미국산 전투기를 사는 대신 미 공군이 고등훈련기를 구매하는 제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제안을 듣고 ‘그런 방안이 있느냐’며 큰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T-50은 KAI와 미국 록히드마틴이 공동 개발한 초음속 고등훈련기다. 미 공군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 등을 조종할 비행사 양성용으로 차세대 고등훈련기(APT) 구매입찰을 진행 중인데 1차 도입물량은 350대로 총 17조 원에 달한다. KAI-록히드마틴은 지난 3월이 사업 입찰을 위한 제안서를 냈다.
문제는 이번 검찰 수사와 관련, KAI가 ‘방산비리 업체’로 규정될 경우 T-50 수출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 말 입찰 결과 발표를 앞두고 KAI-록히드마틴, 미국 보잉-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의 2파전 구도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리 업체’ 이미지가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한미 군사 전문가는 “KAI는 이 사업을 발판으로 제3국에도 고등훈련기 수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면서도 “이번 문 대통령의 제안도 단순 국방력 강화 차원이 아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무역수지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 전략적으로 던진 ‘윈윈 카드’였다. 이 사업이 틀어지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KAI에 대한 검찰 수사는 ‘재탕’ 지적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이 밝힌 이번 KAI 비리 의혹은 감사원이 2년 전인 2015년 감사에서 밝혀낸 사실들과 상당 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2년여 간 ‘방치해 온’ 사건을 뒤늦게 꺼내들었다는 얘기다.
감사원은 2015년 1월부터 KAI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실명으로 비리 의혹이 제보된 이후부터다. 감사원 직원 15명이 KAI 본사에 상주하며 집중적으로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와 함께 원가계산서를 부풀려 547억 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사실을 확인했다.
감사원은 또 KAI가 2013년부터 2년에 걸쳐 48억 원에 사들인 상품권 가운데 사용처가 불분명한 11억 원 상당의 상품권 의혹과 하성용 KAI 사장의 환율조작을 통한 외화 수출대금 횡령 의혹도 제기하며 하 사장과 경영진 13명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모두 검찰이 이번 압수수색 과정에서 밝힌 혐의와 같다.
‘사건 방치’ 지적은 감사원 감사 이후 상황에서도 나온다. KAI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진전이 없었다. 전 감사원과 합수단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감사원은 특별감사 진행과 동시에 2014년 11월 출범한 검찰 방산비리합동수사단의 KAI 수사에 적극 협조했지만, 합수단은 별다른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
감사원의 감사 발표 이후 KAI 내부 관계자와 하청 업체 등이 또 다른 비리 제보를 수차례 했는데도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합수단 해체 이후 KAI 비리 의혹이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특수단)에 이첩된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전 합수단 관계자는 “최근 검찰이 2년간 광범위하게 내사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동안 수사는 캐비닛 속에 묵혀 중단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단순 방산비리 수사 아니다” 의견도
반면 검찰의 이번 수사가 재탕 수준에 머물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타깃은 따로 있다는 얘기다. 검찰과 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이 감사원의 2015년 특별감사 보고서를 토대로 새롭게 수사를 시작한 건 맞지만, 보고서 외에 추가 제보 내용까지 모두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KAI 비리가 단순 횡령사건이 아닌 박근혜 정부의 방산업체 유착비리 사건으로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사에서 검찰은 KAI가 협력업체를 돌연 제외하고 항공사업 경험이 없는 신설업체 A 사 등에 하청을 준 정황에 대해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KAI가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문고리 3인방’(이재만·안봉근·정호성) 중 한 명이 A 사에 지분을 숨긴 정황을 확인해 수사 중이다. 여기에 KAI가 최근 수년간 200여 명의 정‧관계 및 사내 임원 자녀와 친인척을 청탁 채용했다는 제보에 대해서도 사실 확인 중이다.
검찰은 과거 KAI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배경도 확인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방산업계에선 합수단 등이 수사를 하지 않았던 이유가 따로 있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감사원의 특별감사에서 확인된 내용과 달리 ‘회사 개입 없는 직원 개인 비리’로 결과가 축소 발표됐고, 2013년 4월 청와대가 하성용 KAI 사장이 경영관리본부장 시절 비리 첩보를 미리 입수해 조사했지만 중단됐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앞서의 제보, 정황 등과 함께 2015년 감사원 특별감사 결과 발표가 9개월 동안 수차례 미뤄지다 뒤늦게 이뤄진 과정에서 감사원 내부 직원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외압이 있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던 점, 합수단 수사 무마 과정에 앞서의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이 개입돼 있다는 제보 등을 추가로 확인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은 △KAI 비리 의혹 △대기업 방산계열업체의 한국형 전투기사업(KF-X) 입찰계약 독식 의혹 △F-35 도입 비리 의혹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었다”며 “이 가운데 비리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고, 전 정부와의 연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진 KAI 비리 의혹이 첫 수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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