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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생을 향해 내뻗은 '등대시호'의 꽃가지

등대시호(산형과, 학명 Bupleurum euphorbioides Nakai)

2017.07.12(Wed) 14:55:00

[비즈한국] 온갖 작물과 산천의 산들꽃이 말라 들어 애간장 녹이던 가뭄이 끝났나 보다. 곳곳에 산발적으로 집중호우가 쏟아져 피해가 우려된다는 뉴스가 나온다. 세상 으뜸인 줄 알고 살아가는 인간은 참으로 약한 존재이다. 변하는 게 기상인데 비가 조금 내리지 않아도, 많이 와도 아우성치는 것은 사람뿐인가 싶다. 아무튼,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라서 많이 온다 해도 반가운 비임이 틀림없다. 

 

오래전에 약속한 강릉의 석병산 꽃 탐사가 있어 길을 나섰다. 장마전선이 걸쳐 있고 집중호우가 예보되는 가운데 그래도 요행을 바라고 간 것이다. ‘본인 사망 아니면 불참 불허’라는 골퍼 간의 약속은 아니지만, 비가 많이 오면 다른 곳으로 목적지를 바꾸면 되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것이다. 

 

안개 자욱한 산 정상 바위틈에서 등대시호를 만났다. 방사형으로 내뻗은 꽃가지에서 생의 굳은 의지가 드러나 보인다.


동해시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석병산을 향하여 출발했다. 국내에서는 이곳에서밖에 볼 수 없는 식물을 비롯한 몇 가지 희귀종이 있어 2~3년 간격으로 계절을 바꿔가며 탐방하던 곳이다. 다행히 아침에 날씨가 흐리긴 하지만 비가 오지 않아 예정대로 산행을 나섰다. 그러나 하루 일기도 못 보는 것이 현대인의 실상이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채 안 되어 비가 오기 시작했다. 오늘날처럼 일기예보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 농경시대 우리 부모님은 아침에 하늘과 주위 자연 한 번 둘러보고 하루 일기를 가늠했다. 그러고 나서 등굣길 우산 휴대 여부를 말씀해 주셨는데 거의 틀리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오랜 기간 학업 과정을 거친 해박하고 풍부한 지식의 소유자인 현대인은 하루 일기도 예측하지 못한다. 오직 아침 TV 기상 뉴스에만 의존한다. 하루 일기를 알고 모르는 것은 TV를 봤다, 안 봤다 차이뿐이다. 그만큼 현대인은 자연과 멀어지면서 자연과의 교감력도 떨어진 것이다.

 

내리는 빗줄기가 그칠 줄을 몰랐다. 천둥을 동반한 빗방울이 유난히도 드셌다. 돌아설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폭우로 변했다.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이게 바로 진퇴양난인가 싶었다. 악전고투 끝에 석병산 정상에 올랐다. 쉰길폭포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았는데 가파른 그쪽은 포기해야만 했다. 경사가 완만한 반대쪽으로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산 정상에 오를 때쯤엔 다행히 비가 멈추고 자욱한 안개구름이 산봉우리를 감쌌다. 운무에 싸인 석병산 정상 봉우리에서 귀한 꽃들을 만났다. 돌마타리, 참배암차즈기, 돌갈매나무, 개박달나무 등 매우 보기 드문 들꽃을 만나니 폭우를 무릅쓰고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구름 속에 갇힌 희귀한 산들꽃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신비로운 감마저 들었다. 안개 자욱한 정상 바위틈에서 등대시호를 만났다. 바람 세찬 산꼭대기 바위틈에 바짝 붙어 하늘 향해 힘차게 꽃가지 내뻗고 있는 등대시호의 모습이다. 방사형으로 내뻗은 꽃가지에서 생의 굳은 의지가 드러나 보인다. 북방계 식물인 등대시호는 변하는 기후에 따라 산 정상으로 밀리고 밀려 이제 산꼭대기 뾰족한 바위 위에서나 자라는 처지가 되었다. 등대시호는 매우 희귀한 한국특산식물이다.

 

등대시호는 일반적으로 해발 1400m 이상의 고산지에서 자라는 북방계 식물이다. 고산지역의 정상 바위틈이나 메마른 풀밭에 좁게 분포하며 낭떠러지 등 접근이 쉽지 않은 곳에 붙어 종(種)을 이어가고 있다. 백두산, 설악산, 소백산, 덕유산 등 고산지대의 바위틈이나 메마른 풀밭 등에 드물게 자생한다. 머지않아 멸종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하는 북방계 희귀식물로서 국가에서는 등대시호를 한국 특산종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등대시호는 북방계 희귀식물로 한국 특산종으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등대시호는 전체에 털이 없고 줄기는 곧게 서며 가지를 많이 친다. 높이는 산꼭대기 바위틈이나 메마른 풀밭에서 자라다 보니 보통은 12~18cm 정도이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는 없으며 밑쪽이 줄기를 조금 감싸고 끝이 뾰족하며 톱니가 없다.

 

꽃은 7~8월에 줄기나 가지 끝에 황색이나 보랏빛을 띤 녹색으로 피며 꽃 모양이 독특하다. 산형꽃차례로 가지 끝에 달린다. 암술대의 밑 부분이 처음에는 자주색이지만 점차 붉은빛이 짙은 보라색으로 되고 뒤로 말린다. 씨방은 긴 타원형이며 자주색이다. 식물체보다 상대적으로 지하부의 뿌리가 굵고 땅속 깊이 들어간다. 뿌리를 말린 것을 시호(柴胡)라 하며 해열, 진정 및 진통, 소염 작용, 항병원체 작용 등이 있어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한다.

 

기후 온난화로 점점 고지의 바람 찬 산꼭대기 바위 위나 절벽 끝으로 밀려가는 등대시호의 모습을 이 땅에서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의 한계지로 점차 밀려가는 절박한 모습에서 사람뿐이 아닌 식물까지도 살아간다는 것이, 종족을 이어간다는 것이 하늘의 뜻인가 싶어진다. 생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국 주어진 자연의 한계 안에서의 일이다. 자연보호는 나약한 인간이 장대한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이 장엄한 자연 속에 자기 삶의 터전을 보호받기 위한 자구책에 불과함을 새삼 깨닫는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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