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무 살 때를 기억해보라 물으면, 동기들과 술을 마시거나 선배들과 술을 마시거나 고등학교 동창과 술을 마신 기억이 대부분이다. 잠실, 신촌, 안암을 번갈아가며 술을 마시고 노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던 스무 살이었다.
하지만 기억나는 한순간이 있다. 신문방송학과 전공필수 수업에, 교수님은 햇병아리 신입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송국은 무엇을 파는 곳일까요?” 학생들은 제각기 대답을 내놓았다. 영상을 판다거나 광고를 판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몇몇 학생은 관계를 판다거나 꿈을 판다는 꿈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교수님은 “방송국은 시청자를 팝니다”라는, 알 듯 말 듯 하지만 본질에 가까운 답변을 내놓았다. 방송업의 본질은 콘텐츠를 매개해 시청자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광고주와 거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국이 콘텐츠를 매개한다면, 프로스포츠는 경기를 매개로 시청자를 모아 광고주와 거래한다. 시청자는 항상 경기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청자가 경기에 환호하지 않는, 경기가 아닌 다른 것으로 시청자를 모으는 스포츠리그가 있다면 어떨까?
아프리카TV가 후원하는 아재리그 시즌 2 ‘더 킹 오브 아재 2017(아재리그)’은 경기로 시청자를 모으지 않는다. 변형태, 박태민, 차재욱 등이 주축이 되어 운영되는 이 리그는 경기력이 떨어져 아프리카 스타리그(ASL)에 참여하지 못하는 올드 게이머를 위한 것이다. 올드 게이머를 주축으로 한 리그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경기력은 날카롭지 않다. 눈이 높아진 시청자는 더 이상 그들의 경기에 환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꾸준하며, 아프리카TV는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했다. 아재리그에 참가한 올드 게이머들의 개인방송 콘텐츠는 게임 커뮤니티 곳곳에 돌아다닌다. 신기하다. 나쁜 경기력의 스포츠 리그가 공유되고, 후원을 받다니.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아재리그는 추억을 판다. 팬들은 올드 게이머의 경기력이 아니라 올드 게이머가 전해주는 과거 선수들의 최근 근황과 일화에 열광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 최근 경기 양상에 익숙지 않은 올드 팬들은 올드 게이머들에게 리플레이를 보내 스타크래프트 비결을 전수받는다. 스타크래프트 빌드오더가 2007년에 멈춰 있는 시청자와 선수는 각자 행복한 추억에 젖어 든다.
e스포츠라는 단어가 생소한 시절, 스타크래프트는 젊은이들만의 리그이자 10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지금, 스타크래프트는 1인 방송의 킬러 콘텐츠이자 3040 시청자와 올드 게이머의 사랑방이 됐다. 1인 방송이 모여 있는 아프리카를, 나아가 인터넷을 광장으로 본다면 스타크래프트는 10대부터 40대까지 꿰뚫는 공유지식이 됐다. 추억은 끊임없이 공유되고, 추억은 새로운 기억을 만든다. 인터넷의 순기능이다.
아재리그는 올드 게이머를 위한 리그인 듯하지만, 사실 과거에 한가닥 한 수많은 스타크래프트 올드 팬들을 위한 리그다. 이제는 마린을 생산하는 단축키마저 기억나지 않는 스타크래프트 팬들이여, 늘어난 선수들의 주름과 느려진 손만큼 진해진 추억을 선수들과 함께 기억하고 싶다면 아재리그로 오시길!
구현모 알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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