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본격적인 백수가 되기 전(이미 백수였는데도) 마지막 심기일전 여행이 필요했다. 종달리, 세화해변, 성산에 있는 광치기 해변으로 이어지는 동쪽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행 내내 최대한 예쁜 것들을 눈으로, 카메라로 담으려고 노력했다. 마치 더 이상 보지 못할 것들을 주섬주섬 챙기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카메라에는 고양이들과, 빛과, 반짝이는 장식품들이 가득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으면서 여러 가지 인생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내 인생, 어떻게 될까. 눈을 감고 선을 그어보려고 해봐도 쉽게 보이지 않았다. 인생의 흐름은 결국 그냥 살면서 뒤를 돌아야 보이는 것일까. 제주도까지 왔는데 사실 그렇게 큰 소득은 없었다. 꿈과 희망으로 재충전되지도, 마음이 간질간질 힐링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냥 살아가야겠다, 이런 마음이 간절해졌을 뿐이다.
그래도 바다를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서울은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지평선을 볼 수 없으니까. 묵었던 나흘간, 제주의 바다는 이상하리만치 맑고 파랗고 뜨거웠다. 바다에 대고 물었다.
제주에 왜 왔어?
음, 처음엔 서울이 싫었어. 시끄럽고, 깨끗하지 않고. 그래서 바다나 볼까 하고.
조용한 그 어딘가에서 나를 찾기를 바랐어.
그래서 찾았어?
나는 아무도 듣지 않을 대답도 못 하고 그냥 바다만 봤다. 어쩌면 진지한 답을 찾으러 간 게 아니라, 정말로 서울의 미세먼지가 싫었나 보다. 제주도까지 도망쳐 와서 혼자 바다 앞에 서면 뭔가 멋지고 당찬 다짐을 할 줄 알았는데. 제주도 바다는 조금 특별히 푸를 뿐, 한강 앞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답을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진짜 대책 없는 백수라니까. 무언가, 신박한 영감을 찾아야 해. 그래서 벨롱장을 갔다. ‘벨롱’은 멀리서 반짝이는 뜻의 제주말이다. 제주에 이주해 온 육지 사람들이 뭉쳐 플리마켓을 여는 행사인데, 퀄리티가 높고 구경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고 엄청 유명해서 타지에서도 많이 온다. 진열되는 물건들도 주최 측에서 심혈을 기울여 엄선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서울의 웬만한 마켓들보다 훨씬 정성스럽고 종류도 다양했다. 맛있는 것도 많이 팔고 예쁜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건 히피스러운 분위기. 마치 전국 각지에서 자유를 찾아 방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같았다. 해변을 향해 죽 이어진 세화항구에서 열리는 장이었기 때문에 더 아름다웠다.
답을 찾았다고 적고 싶다.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탈탈 털어 어딘가로 떠났으면 뭔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 나는 기자가 되어 세상의 부조리를 파헤칠 거야, 혹은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어야지! 아니면, 수녀가 되어 하느님의 사랑을 설파해야지. 그 비슷한 다짐이라도…. 정말 실마리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다녀온 지금도 걱정투성이다.
나는 꿈이라는 곳에 닿을 에스컬레이터라도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내가 올라가야 하는 건 결국 세상이 변해도 너무나 아날로그적인 사다리였던 건데.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한 칸 한 칸 내발로 올라가야 하는 건데, 그렇게 간단한 거였는데. 백수 주제에 놀 핑계를 너무 거창하게 댔다. 스스로에게 조금 더 엄격해지기로 했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날, 바로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스터디를 신청했다. 매일 아침부터 신문을 읽고, 글을 쓰고, 회사가 원하는 인재가 될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취준생 일기는 없다.’ 제주도에서 그거 하나 결심했다. 힘들다는 글을 써봤자 징징거리는 기분이야…. 꿈을 이룬 사람이 되어서 다시 글을 쓰자. 그때는 정말 멋진 말만 해야지. 고생은 하나도 안 한 척해야지. 그리고 다 이룬 양 행복한 척해야지!
이상은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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