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비를 품은 바람 소리가 쏴 하고 불어온다. 후드득 비 듣는 소리가 고운 멜로디보다 감미롭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던 단비인가? 산천에 산들꽃이 시들시들 연명하듯 버티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운 지난 몇 달이었다. 하도 가물다 보니 식물이 제대로 크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잎과 줄기에 온갖 물것들이 달라붙어 진을 빼는 통에 꽃다운 꽃을 보기가 힘들었다. 산과 들판에 자라는 풀꽃은 폭우에 푹푹 잠기기도 하고 비바람에 시달리며 이리저리 부대끼고 흔들리며 자라야 향도 짙고 꽃 색깔도 아름답다. 오랜만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제 건강하고 생기 넘쳐나는 모습으로 반겨줄 산들꽃을 그려본다.
울릉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동해안 한가운데 외로이 우뚝 솟은 섬이다. 우리나라 식물의 갈라파고스와 같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좁은 면적의 섬 전체가 동해의 거친 바람을 사계절 받으며 많은 절벽과 험준한 지형을 가진 화산섬이다. 새나 짐승, 해류 또는 바람에 의해 육지의 종자나 식물이 섬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눈과 비가 어느 곳보다도 많이 오는 독특한 기후와 섬 중앙에 성인봉이 우뚝 솟은 지형으로 난대식물부터 고산식물까지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분포한다.
이처럼 자연생태가 육지와 사뭇 다른 독특한 식생을 띤 울릉도는 우리나라 식물자원의 보고이다. 우리나라 특산식물 320여 종에 울릉도 특산식물이 36종이나 된다. 독특한 지역 환경과 신비한 동식물의 분포로 육지에서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계로 들어온 것과 같은 특이한 식생분포를 실감할 수 있다. 울릉도에서 독특한 형태와 크기로 자생하는 식물에 ‘섬’자를 붙여 구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섬초롱꽃, 섬말나리, 섬개야광나무, 섬현삼, 섬바디, 섬자리공, 섬기린초, 섬벚나무, 섬피나무, 섬수국 등 모두가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특산식물이다.
울릉도를 찾을 때마다 신비와 비경이 숨어 있는 환상의 섬을 보는 것 같아 늘 가슴이 설렌다. 푸른 파도를 타며 넘실거리는 풍랑에 시달릴지라도 기대와 기다림에 설레게 하는 울릉도 특산의 식물을 만나볼 수 있어 울릉도를 찾는다.
울릉도 순환 둘레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천부 해안 길에서 섬괴불나무를 만났다. 섬바디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한여름을 장식하는 해안 도로 비탈에 홍보석처럼 붉게 빛나는 열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뭄으로 시들시들한 풀꽃 사이에서 가뭄에 아랑곳하지 않고 짙푸른 초록 잎새 사이사이로 햇빛에 반짝거리는 섬괴불나무 열매가 싱싱하게 돋보였다.
섬괴불나무도 접두사 ‘섬’자가 말해 주듯 울릉도에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이름 중 ‘괴불’은 동글동글하게 톡 불거진 두 개씩 매달린 열매 모양이 마치 수캐의 생식기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우리 식물 이름에는 꾸밈없고 솔직하게 자연을 바라보는 옛 조상의 삶의 의식과 자연관, 생활 풍속이 담긴 이름이 참 많다. 며느리밑씻개, 개불알풀, 도둑놈갈고리, 말오줌때, 쥐똥나무, 요강꽃, 미치광이풀 등이다.
섬괴불나무는 울릉도 바닷가 근처에서 자란다. 어린 가지는 속이 비었으며 잎과 가지에 부드러운 털이 빽빽이 나 있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에 가까우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잎자루가 짧다. 꽃은 5~6월에 피고 인동과 식물의 꽃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처음 하얗게 피어서 수분(受粉)이 끝나면 노랗게 변한다. 수분이 끝난 꽃에서는 달콤하고 좋은 향이 난다. 향기도 좋고 꿀도 많아 밀원(蜜源) 식물로도 가치가 있다. 열매는 꽃이 지고 7월경이면 노랗게 물들다가 붉게 익어간다. 열매는 장과로 둥글고 지름 8mm 정도로 2개씩 서로 떨어져 열린다.
한방에서는 괴불나무, 인동덩굴과 함께 금은화(金銀花)라 하여 뿌리를 학질에, 잎, 열매, 꽃은 해독, 이뇨, 종기, 감기, 구토 등에 약재로 사용한다.
비슷한 종으로 괴불나무가 있다. 괴불나무는 잎끝이 길게 뾰족하다. 잎의 앞면은 비교적 매끈하고 평탄하며 뒷면 그물맥 위에만 털이 있으며, 꽃은 잎겨드랑이에 2개씩 2열로 달린다. 섬괴불나무는 잎이 약간 육질로 두툼한 편이며 잎끝은 둥글거나 짧게 뾰족하며 앞면 그물맥과 뒷면에 털이 많다. 괴불나무보다 꽃자루가 길며 꽃이 2개씩 달린다. 꽃은 괴불나무 꽃보다 크기가 다소 작고 소담하며 풍성하게 모여 핀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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