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통속적인 것을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적 가치를 내세워 이를 외면하고 있지만 통속성은 이미 거대한 정서로 이 시대 예술에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팝아트는 통속적 정서를 바탕 삼아 20세기 가장 성공한 예술이 되었다. ‘B급 정서’로 통하는 통속성은 이 시대 예술의 중심에 자리 잡은 게 사실이다.
1950년대 전후 폐허에서 서정을 피워냈던 박인환 시인은 이미 오래전에 통속성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는 대표작 ‘목마와 숙녀’에서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이라고 노래했다. 통속적 감상주의로 다듬어낸 박인환의 시는 한국시 고전의 한 축이 되었고, 가요로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우리의 감정을 촉촉이 적신다.
삶은 실은 통속적이다. 통속적으로 사는 게 어쩌면 행복이 아닐까. 그래서 소설가 이병주는 “평범하게, 통속적으로 사는 게 가장 어렵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삶이 통속적일진대 거기서 태어난 예술 또한 통속적일 수밖에. 통속을 고상으로 포장한 지식층의 위선을 까발려 예술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얻은 홍상수의 삶 역시 통속적인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통속적 대중가요를 들으며 격하게 감동하는 게 아닌지.
배병규는 삶의 통속적 정서를 그린다. 일상의 빤한 장면을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그럼에도 우리의 눈길을 붙잡는 이유는 뭘까. 내 얘기 같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가 잔잔하게 묻어나는 작품 한 점을 보자. 제목에서부터 통속적 감상성이 보이는 ‘겨울 여행’이다. 작가가 아내와 함께한 여행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겨울의 바다다. 철 지난 쓸쓸한 겨울 바다는 생각만으로도 낭만적이다. 아마도 동해일 게다. 속초나 강릉 경포대 같은 곳이면 겨울 바다 정취는 한결 돋보이겠지. 겨울 바닷가에서 작가는 마치 연인 같은 포즈로 추억을 만들었다. 중년 부부의 포즈는 어설프다. 그러나 행복해 보인다. 통속적으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추억이 모여 삶이 되고, 바로 그런 삶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게다.
바쁜 일상 속에서 짬을 내어 겨울 바다를 찾는 일. 한가롭게 바다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 이런 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행복이 무엇일까 하는 자기 성찰도 하게 된다.
이 소소한 행위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내야 하니까.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찾기 위해 우리는 매일매일 열심히 일을 한다. 행복한 삶을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며, 남보다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배병규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서 찾아낸 행복의 모습을 담박한 붓질과 진솔한 색채로 그려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통속적 정서를 확인하게 되고, 행복의 참모습을 되새기게 된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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