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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심정지 환자와 어머니, 아! 어머니

40대 심정지 환자가 의식을 잃은 채 이송됐고 그의 어머니가 따라왔다…

2017.07.20(Thu) 14:00:14

[비즈한국] 1.

하루 동안 172명의 환자가 왔다. 그중 심정지 환자는 한 명이었다. 40대 심정지 환자가 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의료진은 급박하게 그를 맞을 채비를 했다. 그는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들어왔고, 이미 맥이 돌아와 있었다. 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전기 충격을 가해 그의 심박을 돌렸다고 했다. 그 뒤로 그의 심장은 멈추지 않고 뛰었고, 다만 의식까지 회복되지는 않았다. 대원들은 의식을 잃은 그를 그대로 여기까지 이송했다. 뒤에는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따라왔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보호자분이 직접 보셨나요?”

“아 아니, 제가 봤다기보다는, 아들 방에 비명 소리 같은 게 나길래 들어가 봤더니 쓰러져 있었어요.”

“발견 당시 깨워도 반응이 없었나요?”

“약간 발작하는 것도 같았고, 하여간 반응이 없어서 바로 신고했어요.”

 

그는 40대였고, 몸도 건강해 보였다. 그가 쓰러진 경위와 제세동기로 맥이 돌아온 것을 감안하면 부정맥으로 인한 심정지로 보였다. 대원들은 빠른 시간에 도착했고, 추정 심정지 시간은 최고 15분 정도였다. 애매한 시간이었다. 나는 의식이 없이 눈을 반만 뜬 채로 누워있는 그를 마구 흔들어 깨워 보았다.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뇌손상으로 의식이 없는 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제 막 심정지를 겪었기에, 나는 그가 깨어날지, 안 깨어날지, 이제 죽을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저체온요법을 적용하고 중환자실에서 며칠 재운 후 깨워보아야 했다. 그때도 나는 그가 깨어날지, 안 깨어날지, 이제 죽을지, 알 수 없었다.

 

“보호자분, 아드님은 심정지였습니다. 그 상태는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면 죽은 상태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걸 지금 의료진이 심장만 살려낸 겁니다. 그런데 사람은 심정지가 일어나자마자 뇌로 피가 가지 않아 뇌손상을 입습니다. 그건 아주 짧은 시간부터 발생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사람이 견딜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지금 호흡도 있고 움직임도 약간 있어서 회복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죽었던 사람이 어디까지 돌아오느냐 기대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체온 치료를 할 겁니다. 3일 정도 뇌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저체온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지켜볼 겁니다. 또 저체온을 버티기 위해 안정제를 써서 환자분을 재울 겁니다. 환자분이 얼마나 돌아올지는 그 이후 알 수 있습니다.”

 

“솔직히,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돌아올 확률이 어느 정도인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략 25%는 깨어나고 50%는 평생 지금 이대로 자극에 반응만 하고 25%는 죽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펜을 쥔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 아들이 살아날 확률이 25%라고 알아들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연이어 촬영한 그의 뇌 CT는 끔찍하게 부어 있었다. 뇌에 피가 가지 않으면 뇌조직은 저렇게 제 갈 길을 잃고 부풀어 오른다. 이 손상이 회복되지 않으면 사람은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는다. 

 

나는 그에게 저체온 패드를 붙이며 재차 깨워 보았다. 반응이 없어 평생 의식이 없었던 중환자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는 환자의 이 모습만 보았으므로, 깨어있는 모습을 잘 상상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사람은 이대로 평생 살아가게 될 것 같았다. 나는 긴 싸움을 위해 그를 중환자실에 입원시켰다.

 

2.

이튿날 아침까지 더 이상 심정지 환자는 없었다. 나는 172명의 브리핑이 끝난 후 환자를 맡기고 퇴근했다. 다음 당직은 3일 후였고, 나는 입원한 환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평범하게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책을 읽고 술을 마시며 지냈다. 이따금 그가 궁금했지만 굳이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지금은 근무 중이 아니었다. 나는 3일 후에 출근해 환자를 다시 책임지면 되었다.

 

3.

평온한 3일이 지나고 나는 172명쯤의 환자를 보러 다시 출근했다. 출근길부터 그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다. 가운을 입고 스테이션에 나오자마자 그의 차트를 뒤져 보았다. 저체온 요법은 막 끝났고, 이제 안정제를 끊고 있었다. 마침 그가 얼마나 의식을 되찾고 살아갈 수 있는지 결정되는 시간이었다. 그간의 나머지 결과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제법 희망적이었다. 나는 그를 보던 주치의에게 물었다.

 

“환자, 깨어날까.”

“모르죠. 있다가 알게 되겠죠.”

“보호자는?”

“아 맞다. 보호자분이 그날 밤 이후로 한 번도 집에 안 가셨어요.”

“그 어머니?”

“네. 하루 면회 시간이 점심 저녁 10분씩 2번, 20분밖에 안 되는데, 나머지 시간에도 그냥 그 앞에서 지키고 계세요. 벌써 3일 넘었나. 저희한테 뭘 묻지는 않고 그냥 계셔요. 어디 떠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다들 알고 있는 눈치여서, 이미 유명한 이야기인 듯했다. 병원에서 이런 이야기가 화제가 된다는 것은 때로는 새롭다. 나는 잠시 일을 하다 그가 일어날 시간쯤 중환자실에 올라갔다. 중환자실 앞 긴 의자에는 정말로 3일 전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행색을 한 어머니가 가로로 누워 있었다. 나는 그녀를 스쳐서 환자를 보러 갔다. 

 

격리병실에 들어가자,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환자가 눈을 뜨고 검은자로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초점이 맞아 보였다. 내가 환자 옆으로 가자 그는 나를 따라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그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도 끄덕거렸다. 그는 돌아온 것이다. 나는 재차 그의 오른 주먹에 손을 넣고 여기 힘을 쥐라고 말했다. 오른손에서 악력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완벽한 귀환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쉬라고 말한 뒤 그의 호흡관을 뽑았다. 그는 콜록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발작이었습니까.”

“심장발작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하루는 3일 전일 겁니다.”

“이젠 괜찮습니까.”

“여긴 보시다시피 병원입니다. 괜찮습니다.”

 

그는 크게 기쁜 표정이 아니었고, 더 이상 입을 열어 내게 묻지도 않았다. 그를 둘러싼 의료진이 더 기뻐했을 정도였다. 하긴, 심정지가 온 사람이 그대로 죽었다면 기뻐하거나 노여워할 틈도 없을 것이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그대로 떠났을 것이다. 그렇게 급사하는 사람은 모두 어떠한 감정도 없이 죽는다. 

 

하지만 심정지를 겪은 사람이 돌아와 눈을 뜬다면, 그 사람은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생이 그냥 그대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죽음의 순간을 분노하거나 증오하지 않을진대, 반대로 살아남을 기뻐해야 할까. 죽음은 죽음 그대로 당연한 것이고, 삶은 삶 그대로 당연한 것이다. 그가 기쁨에 찬 표정을 짓는 것은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하여간 나는 이제 살아난 사람에 맞는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그에게서 뒤돌아 격리실을 나왔다. 오히려 그보다도 더 기뻐할 그의 어머니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면회 시간이 많이 남아 그녀는 여전히 긴 의자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다. 몰골은 푸석했고, 그리 희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보호자분, 처음 오셨을 때 뵀죠?”

그녀는 일어나 대답했다.

“네네네. 선생님. 무슨 일이 생겼나요?”

“지금 환자분이 눈을 떴습니다. 저랑 말도 나누었습니다. 앞으로도 평생 그럴 겁니다.”

“선생님… …, 선생님.”

그녀는 나의 손을 와락 붙들었다.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온 기운을 다 짜내 울면서 나의 손을 얼굴에 마구 비볐다. 짭짤하고 뜨거운 온기가 손등으로 흘렀다. 그녀는 아들이 살아날 25%의 확률만을 생각하며 그를 지키고 있다가 이제 환희의 순간을 맞은 것이다. 이 병원에서는 매우 드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고 하지만, 나는 3일간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자리에 누워 지냈고 그녀는 아들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가끔 그가 궁금했고 그녀는 여기서 한 번도 아들의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에게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치 내가 그를 살려낸 것처럼 말했다. 나는 차라리 그녀가 그를 지키고 살려냈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나는 살아났음을 전달했을 뿐이고, 온전히 당신의 헌신이 그를 살려 냈다고, 허나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대신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 아들의 손인 듯 붙들고 오래 울었다. “선생님…, 이 은혜를…, 은혜를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고 돌아섰다. 뒤에서 울먹이는 외침이 들렸다.

 

“○○아, 빨리 와라. 눈을 떴단다. 그래, 이전처럼 살아났단다. 앞으로도 살 거란다. 빨리 와라. ○○아. 빨리.”

 

4.

나는 당직실로 돌아와 나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에게 무슨 이야기든 하고 싶었다. 나의 어머니는 다짜고짜 밥 먹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안 먹고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의 어머니는 밥을 왜 안 먹느냐고 했고, 나는 방금 다른 사람의 어머니가 나를 붙들고 울었다고 했다. 그녀의 아들이 죽었고, 나는 어쩌면 그걸 살린 셈이 되었으며, 그동안 그녀는 아들 곁을 한시도 쉬지 않고 지켰노라고. 어머니는 잘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에겐 그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냐고, 워낙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그렇게 전부인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당신께 그녀처럼 나를 지킬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밥을 먹으라고 했다. 나는 목이 매여 밥을 먹겠다고 했다. 당직실이 다시 고요해졌다. 나는 묻지 않아도 안다. 내가 죽는다면 당신은 삼십 일이라도, 삼백 일이라도 나를 지킬 것이다. 그러니 나는 방금 의미 없는 문답을 하나 줄인 셈이었다. 아, 어머니, 나는 붉어진 눈시울로 일을 하기 위해 응급실로 나섰다. 수많은 어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만약은 없다’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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