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경쾌한 음악과 함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시작된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떤 제품을 써보라는 권유가 이어진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한 표정을 지으며 제품을 써보는 일반인은 차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오, 이거 뭐예요?” 급기야 구체적인 칭찬이 이어지며 정말 좋다고 호들갑이다. 마지막에 아주 잠시 제품 이름이 노출된다.
요즘 페이스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상 광고의 패턴이다. 이런 광고에는 어마어마한 댓글과 좋아요가 달린다. 대부분 반응도 호의적이다. 짧으면서도 설득력 있는 영상을 본 소비자들은 처음 보는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구매를 다짐하거나, 지인을 소환해 사달라고 조른다.
이러한 광고 영상을 제작한 곳과 제품을 유통한 곳은 대부분 같다. 광고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고 여길 수 있지만, 이는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한쪽은 영상 제작업이고 다른 한쪽은 유통업 혹은 제조업이기 때문이다. 업종의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보통은 유통업자가 영상 제작자에게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광고 제작을 의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제는 영상 제작업자가 물건을 직접 유통하면서 제품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 판매를 극대화한다. 이것이 바로 요즘 스타트업 및 유통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비디오커머스’ 혹은 ‘미디어커머스’의 주된 방식이다.
# 영상 대박 나도 제작비 푼돈…차라리 직접 팔아볼까
전통적으로 영상 콘텐츠 제작 대행은 수익성이 낮다. 많은 영상 외주 제작사들이 영세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최근 높은 주목을 받고 있는 MCN(Multi Channel Network)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유튜브 광고를 통해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버는 사례도 일부 스타 콘텐츠 크리에이터에 한한다. 개인 입장에서는 큰돈이지만, 이들을 관리하는 대가로 수익을 분배받는 MCN 입장에서는 기업을 운영하기에 한계가 있다.
페이스북에 수백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모바일 영상 콘텐츠 스타트업도 수익성 문제에 봉착했다. 광고만으로 회사를 유지하기에는 콘텐츠 제작 원가가 지나치게 높다. 기업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SNS 마케팅 영상 제작도 지속적인 광고주 확보가 아직까지 어렵다. 광고주가 원하는 콘텐츠는 파급력이 약하고, 대중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는 광고주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영상은 잘 만들 자신이 있지만 만족할 만한 수익모델이 없는 이들 기업에게 미디어커머스는 급부상하고 있는 사업 아이템이다. 제품을 직접 확보한 다음 영상 콘텐츠 마케팅을 통해 판매 이익을 취한다. 영상의 파급력과 비례해 이익이 커지는 구조다.
한 모바일 영상 콘텐츠 기업 관계자는 “예전에 피부 관리 팁(Tip) 영상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이 영상에 등장한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며 “영상은 아무런 대가 없이 만들었지만, 제품을 유통한 업체는 큰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 무조건 대박은 ‘오해’…제품 경쟁력이 ‘필수’
몬캐스트 설립자이자 메이크어스 이사였던 남대광 대표는 지난해 돌연 퇴사 후 블랭크TV를 설립하고 남성 화장품 브랜드 ‘블랙몬스터’를 론칭해 3개월 만에 1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에는 담배 냄새를 확실히 잡아줘 이성에게 호감을 일으킨다는 섬유 향수와, 수압을 높여주고 물을 정수해주는 샤워 꼭지로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설립 초기부터 커머스로 방향을 잡은 ‘우먼스톡’도 꾸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SNS 플랫폼 대신 자체 애플리케이션(앱)과 포털 제휴에 주력해 자생력과 파급력을 동시에 노렸다. 이곳도 대부분 제품에 영상을 제작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비단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기존 유통 강자들도 비디오커머스 시장에 관심이 많다. 티몬은 ‘티비ON’을, CJ오쇼핑은 ‘겟꿀쇼’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스타트업과 기존 유통 강자들이 너도나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들이 미디어커머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높은 구매 전환율 때문이다. 어떤 광고보다 노출 대비 많은 구매를 이끌어낸다는 것이 영상 콘텐츠가 가진 잠재력이다. 30초 안에 승부해야 하는 TV CF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면서, 텍스트나 이미지에 비해 전달력이 훨씬 강력하다. 가령 소셜커머스는 오픈마켓에 비해 풍부하고 깔끔한 이미지와 자세하게 쓰인 제품 정보를 통해 기존 유통 강자와 경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바일 영상은 이보다 ‘한 수 위’라고 미디어커머스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디어커머스의 실체에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한다. 영상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는 방식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TV홈쇼핑에서 플랫폼을 바꾸고, 플랫폼에 맞는 영상을 제작하는 것 이외에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성공 사례도 일부 제품이나 기업에 국한된 이야기인 만큼 좀 더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한 전직 영상 콘텐츠 스타트업 관계자는 “부풀려진 것과 달리 실제 판매량은 대단히 저조했다”며 “페이스북에 광고비를 그만큼 썼는데도 하루에 수십 개 정도 팔리는 데 그쳤다”고 털어놨다.
남대광 블랭크TV 대표 역시 “주위에서 미디어커머스 성공사례로 치켜세우지만 우리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며 “영상은 홍보나 마케팅 수단일 뿐이며 결국 제품 자체가 좋아야 성공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신선함 떨어지기 전에 진화 모색해야
넓은 의미의 미디어커머스나 영상 콘텐츠에 포커스를 맞춘 비디오커머스는 아직 구체적인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다. 업체별로 유통 방식이나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당연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미디어커머스 스타트업을 표방하는 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금까지 확인된 성공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갖춘 좋은 제품 확보이며, 다른 하나는 제품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 아이디어다.
이런 점에서 유통 경험이 없는 영상 콘텐츠 기업이 과연 경쟁력을 갖춘 좋은 제품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부호가 남는다. 지금까지 많은 미디어커머스 기업들이 화장품이나 향수와 같은 뷰티 제품에 주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뷰티 제품의 경우 화장품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주문자 상표 방식(OEM)으로 생산을 해주는 공장이 많다. 카탈로그를 보고 팔릴 만한 제품을 고르면 공장에서 생산에서 패키지 포장까지 일사천리로 책임져 준다. 따라서 생산 공장이나 연구 개발이 전혀 필요 없다. 또 뷰티 제품 특성상 마진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여기에 개별 제품가격도 보통 3만 원을 넘지 않아 즉흥적인 구매가 이뤄진다.
문제는 뷰티 이외에 제품군을 확대하기가 아직 조심스럽다는 점이다. OEM 생산이 가능하면서 개별 제품 단가는 저렴하고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제품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른 유통방식도 마찬가지다. 수입을 하자니 경험이 없고, 사입은 리스크가 크고, 위탁 판매는 마진이 낮다.
영상 아이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에는 일반인 체험 후기 형태의 광고 영상이 넘쳐난다. 검증된 포맷이지만 워낙 비슷한 영상이 많다보니 갈수록 신선함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제 새로운 영상 포맷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여전히 많은 후발업체들은 ‘미투’ 전략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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