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세상을 바꿀 순 없다. 바꿀 필요도 없다.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깨기 위한 원대한 꿈은 접어야 한다.”
올해 초 종영한 드라마 ‘내성적인 보스’ 첫 회 장면이다. 주인공 은환기는 쓸데없이 쓰이는 마케팅 비용을 실제로 돈을 지출할 사람에게 써야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엔씨소프트의 행보는 이 조언을 현실에 적용한 듯 보인다. 2014년 엔씨소프트가 내놓은 게임의 거듭된 실패로 12만 원대까지 떨어진 주가는 현재 40만 원 직전까지 올라 있다. 주가가 3배 넘게 오르는 시간은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답은 리니지였다. 엔씨소프트를 최고의 게임 회사로 만든 리니지에 다시 집중했다. ‘리니지 레볼루션’에 이어, ‘리니지M’을 출시하며 주가가 폭발했다. 2016년 12월 리니지2 레볼루션은 첫날 이용자 약 40만 명, 매출액 79억 원으로 역대 최고기록을 세웠다.
지난 6월 21일 리니지M은 출시 첫날 이용자 210만 명, 매출액 107억 원을 기록해 기존 기록을 깼다. 리니지의 기록을 리니지가 깬 것이다. 새롭진 않지만, 성공이 보장된 리니지로 게임을 만들어 연이어 성공시킨 것이다.
이러한 성공에는 ‘린저씨(리니지 유저 아저씨)’가 큰 공을 세웠다. 리니지M이 열린다고 하자 린저씨들이 ‘적금 깨고 게임에 쏟아붓겠다’고 나섰다. 리니지 화폐 아데나는 비트코인보다 먼저 가상화폐로서 큰 가치를 갖고 실제 화폐와 교환되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하듯 아데나를 벌기 위해 리니지를 수십 대의 PC로 돌리는 채굴장도 있었다.
대표적인 고가 아이템인 ‘진명황의 집행검’은 강화됐을 경우 1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다. 또 다른 가상화폐의 장이 될 수도 있는 리니지M에 신속하게 터를 잡아 이곳에서 아데나를 벌어보겠다는 것이다.
역대 최고기록을 세운 리니지M에 접속해 게임을 해봤다. 그 옛날, 20년 가까운 시간쯤 전에 말하는 섬에서 에너지볼트를 날리던 때를 생각하며 마법사를 선택했다. 수없이 죽었던 추억 아닌 추억, 화려한 마법으로 세상을 제패해보겠다며 어두운 PC방을 드나들던 기억을 떠올리며 게임에 접속했다. 그때는 몰랐다. 마법사는 최악의 직업이라는 것을.
처음 퀘스트를 받아 적당히 터치만 해주면 레벨이 오른다. 그 옛날 레벨 하나 올리는 데 수없이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허무할 정도다. 리니지의 레벨 업은 극악하기로 소문나 레벨 50을 처음 달성한 유저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레벨 업을 위해 생활을 포기해야할 정도다.
리니지M은 다르다. 클릭 몇 번만 하고 따라가다 보면 반나절 만에 45레벨을 달성할 수 있다. 45레벨을 달성하기까지는 지루한 편이다. 1998년에 나온 게임을 약간의 그래픽만 손보고 거의 그대로 모바일로 이식해 놓은 ‘낡은’ 게임이다.
획기적으로 달라진 점은 최근 모바일 게임 추세에 맞게 ‘자동사냥’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동 버튼을 눌러 놓고 구경을 하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 게임을 왜 하는지 알 수가 없어진다. 화면은 진부하고, 액션이 화려하지도 않다. 그냥 지켜볼 뿐이다. 보다가 잠이 와서 꾸벅꾸벅 졸았다.
레벨이 45에 도달하면 급작스럽게 레벨업이 느려진다. 45까지 오르던 속도에 비교해보면 사실상 멈췄다고 보일 정도다. 이때부터 ‘아인하사드의 축복’이란 아이템이 중요해진다. 이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써주지 않으면 레벨업이 최대 7배 차이난다. 안 그래도 느린 레벨업이 사실상 멈춘다. 더군다나 아이템 드랍, 아데나 획득률에도 영향을 미친다.
엔씨소프트에서 하루에 일정량을 주긴 하지만 작정하고 자동사냥을 돌리는 유저라면 사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게임이 시간제 과금 게임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제대로 레벨업하기 위해서는 시간마다 이 축복을 사야하기 때문이다.
레벨이 47에 도달하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레벨업은 더욱 정체되고 게임을 하면서 어떠한 재미도 못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마법사는 초보가 하기에 적절한 직업이 아니었다. 굳이 한다면 요정을 하자. 무조건 요정이 답이다. 멀리서 화살을 쏘면 되니 자동사냥을 돌리기 가장 적합하다. 휴대전화로 하기보다는 PC에 블루스택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플레이 하는 게 편하다.
이처럼 재미가 없다, 오래된 게임 재탕에 불과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100억 원이 넘는 하루 매출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수치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꿀잼’이었다는 신호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해봤는데 게임으로서는 정말 싫다. 그래도 100억이라는 숫자가 증명한다. 비평하기가 힘들다”고 털어놨다. 일반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평가가 엇갈리는 까닭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봤을 때 이 게임은 리니지1을 지금까지, 오랫동안 즐기고 있던 유저에게는 재미있는 게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PS4의 콘솔이나 화려한 온라인 게임을 즐기던 유저에게는 맞지 않는 게임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덧 레벨 47에 도달했다. 리니지의 추억을 생각하며 즐기기에도 레벨 47이 한계였다.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서는 이 게임을 두고 ‘설렌 맘 안겨주던 첫사랑 그 사람이, 오늘 나에게 다단계를 팔러 왔다’고 평가했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비유다.
김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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