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역설이 지배하는 시대다. 자본주의로 세계 최강대국이 된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의 정치 기술인 포퓰리즘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가졌다.
물질문명도 그렇다. 인류를 풍요롭게 했지만 그만큼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굳이 환경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물질문명을 비판한다. 특히 지식층에게는 필수 항목처럼 되었다. 물질문명 덕에 안락하고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으면서.
물질문명을 자양분 삼아 금세기 막강한 세력을 갖게 된 팝아트는 이런 모순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준다. 팝아트는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로 물질문명의 혜택을 톡톡히 받았다. 그런데 팝아트로 성공한 작가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그리고 이것의 성공 모델인 미국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으로 부와 명예를 얻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이런 역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인터넷 공간이다. 빠르고 편리하게 소통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보통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한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고립되고 사람 사이의 정서는 단절된다. 얼굴을 직접 맞대지 않고도 거의 모든 생활이 가능한 인터넷 공간에서 우리는 주체하기 힘든 만큼의 자유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까지 나누지만 그것이 진정한 소통인지는 여전히 물음표에 머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현대인에게 익숙하며, 즐기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개인의 공간, 취향, 행위 같은 것이 가장 소중한 관심사다.
지난 세기 중·후반으로 넘어오면서 서구 중심의 종교, 철학, 왕권, 이념 같은 절대 가치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다양한 가치가 들어앉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금세기로 들어서면서 세력을 넓히는 것이 ‘개인의 생각’이다. 이런 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한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시대다. 개인의 생각, 가치, 정서를 위해 우리는 스스로 자신만의 공간으로 유폐시키고 있다. 쿨한 정서로 무장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스마트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유영미의 작품은 이런 우리 시대의 초상화다. 스스로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버린 우리의 모습을 ‘혼자서 즐긴다’는 주제로 표현한다. 그가 이런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대상은 물고기다. 어항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금붕어를 보다가 문득 ‘이게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어항 속에 있는 금붕어는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혀 있다. 어항 공간만큼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롭게 세상과 소통하지만, 스스로 자폐의 신세로 전락한 우리 모습을 담은 그의 물고기는 외로워 보인다.
표현 방법도 포스트모던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와 기법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새로운 감각의 한국화를 꿈꾼다. 전통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먹과 철판을 재료로 붓질의 효과와 판화 기법을 결합시켜 자신만의 독자적인 회화를 보여준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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