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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일본 국적의 페르소나5는 '헬조선'이다

전작에 이어 8년 만에 한글화 출시…게임으로 풀어낸 사회적·철학적 주제

2017.06.20(Tue) 10:38:20

[비즈한국] 본 칼럼은 아틀러스에서 개발한 플레이스테이션4 게임 ‘페르소나5’를 소개하는 리뷰가 아닌, 게임을 끝까지 해본 사람을 위한 비평을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상당한 ‘스포일러’가 있어, ‘페르소나5’를 플레이 할 계획이 있거나 하는 중이라면 읽지 말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게임 ‘페르소나5’가 지난 6월 8일 한글화를 거쳐 국내 정식 발매됐다.

 

게임에도 국적이 있다. 같은 이야기를 다뤄도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관점에서 다른 세상이 투영된다. 일본 게임 개발사 코에이가 만든 ‘대항해시대’는 16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엄연히 일본인 눈으로 바라본 유럽의 역사다. 물론 명작 반열에 오른 게임은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게이머들에게 사랑 받지만, 여전히 자국 개발자들이 만든 게임이 주는 섬세한 정서는 자국 게이머들만이 느낄 수 있다. 영화도 이와 비슷하다.

 

일본 게임 개발사 아틀러스의 대표적인 RPG게임 ‘페르소나’ 시리즈는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고등학교 2학년인 전학생 주인공이 1년간 학교 생활을 다룬 게임이다. 주인공과 주변 친구들이 우연찮게 ‘페르소나’의 힘을 각성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사건을 차례대로 해결해 나가는 스토리를 다룬다. 3편 이후로 굳어진 페르소나 시리즈의 공통된 설정이다.

 

타지에서 전학 온 주인공이라는 설정 역시 3편 이후 전통으로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사진=페르소나5 스크린샷

 

‘페르소나’ 시리즈에 흐르는 특유의 정서를 일본인만큼 잘 이해할 수는 없다. 만약 그 다음을 꼽자면 한국인이 유력하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그리고 중간, 기말고사 등 학제가 비슷한 까닭에서다. 물론 페르소나 시리즈는 명작 반열에 오른 게임이며 모든 면에서 이질적인 서구 시장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시리즈 첫 작품이 선보인 후 20년, 전작인 4편 출시 이후 8년 만인 지난 2016년 ‘페르소나5’가 많은 우여곡절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 한글화를 거쳐 지난 8일 정식 출시됐다.

 

# 분석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탄탄한 설정

 

‘페르소나’ 시리즈는 스위스 분석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연구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융이 정의한 페르소나는 자신의 본성을 감추는 가면이자 타인과 관계를 이루는 사회적 인격이다. 융은 인간의 본성을 감추고 페르소나 뒤로 숨는 것이 불행한 일이며, 꾸준하게 본성을 찾는 노력을 ‘자기실현’이라고 정의했다. 아울러 가면 뒤에 숨은 자아를 ‘그림자’라고 지칭했다. ‘페르소나’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모든 몬스터를 ‘섀도(shadow)’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전작도 그렇지만 이번 작품도 이러한 융의 이론은 철저하게 게임 전반을 관통한다. 타인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지나치게 소극적인 삶의 태도가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일본에서는 대단히 강렬한 주제의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5편에서는 ‘반역’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같은 주제를 좀 더 직설적이고 선명하게 다룬다.

 

전작은 숨겨진 자신의 본성을 인정할 때 페르소나의 힘을 각성한다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억압된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가면을 벗고 페르소나의 힘이 각성된다. 사진=페르소나5 스크린샷


이는 등장 인물의 각성을 상징하는 장치에서도 드러난다. 가령 3편에서 관자놀이에 권총을 겨누는 방식으로 새로운 자아의 탄생을 표현했다면, 4편에서는 탁한 세상을 선명하게 본다는 의미의 안경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하지만 5편에서는 페르소나 그 자체인 가면을 등장시켰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사용한 가면에서 유래한 용어다.

 

특히 4편이 매스미디어 뒤에 숨는 대중의 익명성에 대한 비판을 다뤘다면, 5편은 일본 사회가 갖고 있는 구체적인 적폐를 숨김없이 고발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미성년자인 고등학교 2학년이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계는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주인공 일행은 괴도단을 결성해 나쁜 어른들의 욕망을 상징화 한 이세계(異世界) ‘팰리스’에 잠입해,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보물을 훔쳐낸다. 이를 통해 현실 세계의 나쁜 어른이 잘못을 뉘우치고 개심한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그 나쁜 어른들의 면면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가 않다.

 

성추행과 체벌을 일삼는 운동부 교사, 문하생의 영감과 재능을 가로채는 유명 화가, 사기와 협박으로 서민을 짓밟는 사채업자, 노동력을 착취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프랜차이즈 업체 사장,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사,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기득권과 결탁하고 법까지 무시하는 정치인.

 

게임은 전반부는 주인공이 경찰에 붙잡힌 이후 심문하는 과정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법한 교차 편집을 통해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사진=페르소나5 스크린샷

 

그 어느 것 하나 대한민국이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각각의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사례를 대입할 수 있다. 특히 게임 후반부에 등장하는 정치인은 온 나라가 침몰해도 자신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기득권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왜곡된 욕망을 ‘배’로 상징하고 있다. 마치 세월호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게임 후반부 등장하는 대중이 만든 집단 팰리스 ‘메멘토스’는 페르소나5에 담긴 문제의식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메멘토스 최심부는 감옥이다. 여기에서도 페르소나 특유의 철학적 장치가 엿보인다. 바로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밴담이 제안한 원형 감옥 ‘팬옵티콘’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 

 

메멘토스 속 대중은 스스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자유에 기뻐하며 스스로 감옥에 갇혀 있다. 타락한 신은 이러한 대중들의 나태함이야말로 세계를 파멸하기로 한 결정적 이유라고 말한다. 신에 대한 반역이야말로 이 게임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궁극적 자유다.

 

# 8년의 기대, 조금도 저버리지 않았다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분석심리학 이론으로 풀어낸 치밀한 설정을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게임이 선사하는 재미는 충분하다. 플레이스테이션2 게임으로 출시된 전작에서 무려 한 세대를 건너뛰면서 8년 만에 출시된 게임의 완성도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핵심적인 문법은 그대로 두고 볼륨을 더욱 키웠다.

 

1년 동안 매일 달력을 뜯는 느낌으로 진행되는 학교생활은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인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페르소나의 힘을 키운다는 설정 역시 그대로다. 특히 5편에서는 나쁜 어른을 개심시킨다는 메인 스토리와 각각의 인간관계에 얽힌 서브 스토리가 적절하게 맞물리도록 시나리오가 더욱 탄탄하게 짜였다.

 

게임 내 모든 그래픽은 빨강과 검정의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주제 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살리고 있다. 사진=페르소나5 스크린샷

 

플레이타임이 무려 80시간에 달하는 방대한 볼륨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단연 50곡이 넘는 배경음악이다. 1편부터 한결같이 게임음악을 담당해 온 천재 작곡가 쇼지 메구로의 실력은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황색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즐겨 사용한 브라스 계열 악기를 완전히 배제하고 현악기 위주의 편성 역시, 빨강과 검정을 주제 색상으로 그려난 감각적인 게임 그래픽과 썩 잘 어울린다.

 

결말부의 스릴러 영화 못지않은 극적 반전은 게임을 처음부터 꼼꼼하게 즐긴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통쾌함이다. 극적인 시나리오와 눈을 즐겁게 하는 그래픽, 경쾌한 음악이 어우러진 ‘페르소나5’는 게임이 왜 영화를 뛰어넘는 21세기 종합예술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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