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여자가 관심 있는 남자를 판단할 때 카페나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를 본다는 얘기가 있다. 자기보다 약자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그 사람의 인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주문할 때 반말을 함부로 하거나, 뭔가를 요청할 때 부탁이 아닌 명령조로 한다거나, 심지어 주변 테이블 무시하며 너무 큰소리로 함부로 떠든다거나 하는 게 다 감점 요소다. 데이트한다면서 식당 예약을 여러 군데 해놓고 거리낌없이 노쇼하는 것도 감점 요소다. 이런 건 실수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애티튜드이자 살면서 쌓아온 인성이기 때문이다.
강자 앞에선 강하고 약자 앞에선 약하라는 말은 멋지지만, 따라 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강자든 약자든 차이 없이 그냥 평소처럼 하면 된다. 상대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킨다는 건 보는 이에 따라선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지위가 높아지고, 소위 성공하고 나서 안하무인이 되는 이들이 있는데, 갑자기 성공한 경우가 많다. 대개 오랜 기간 꾸준히 쌓아가며 성공하고, 그 성공을 길게 유지하는 이들은 정말 젠틀하다. 배려가 몸에 배어 있을 만큼 여유 있다.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이들은 성공하기 전부터도 이런 태도를 가졌으리라.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 특히 인성이자 품성은 그렇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를 판단할 때 카페나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를 본다는 건 꽤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법 같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만큼 나쁜 게 없는 것 같다. 돈 내는 사람이 갑이라는 건 참 유치하다. 사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이 없다면 불편하다. 서로 필요에 따라 주고받는 것이고 공생하는 것인데, 이를 갑을관계로 권력구도처럼 이해하는 건 참 비겁하다. 기업에서 경영자, 상사가 직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기업이 오래 갈지 중간에 탈이 탈지 가늠이 된다. 웃기는 건, 가족 같은 회사를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기업이 갑질문제는 더 많다. 그리고 진짜 가족은 절대 서로를 이용하거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여간 가족 같은 회사라거나, 손님은 왕이란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구시대적이기 쉽다.
최근 치킨값 인상 소동이 하루아침에 일단락된 것도 참 웃긴 해프닝이다. 그럴싸했던 인상 이유가 하루아침에 다 철회되는 걸 보면, 이럴 거면 왜 그랬니 싶기도 하다. 요즘 눈치 보며 긴장하는 기업들이 꽤 많아졌다고 한다. 새로운 공정거래위원장 때문이다. 한국 기업에는 소위 갑질 문제를 비롯해 약자에게 유독 강하게 구는 낡은 인습이 있다. 웃기는 건 갑의 위치에 서면 자신이 말단 직원임에도 을 기업에 칼자루를 휘두른다. 못된 건 금방 배운다. 요즘 을지로를 지날 때마다 ‘을지로위원회’가 떠오른다. 을을 지키는 길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몇 해 전 발족됐는데,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의 성에서 유래된 원래 을지로의 의미보다 더 먼저 떠오를 정도다.
얼마 전 도쿄에 ‘오더 미스테이크(Order Mistakes)’라는 팝업 식당이 열렸다. 식당 이름이 주문실수다. 아니 주문한 것과 다른 걸 갖다주는 뻔뻔한 식당이 있단 말인가 싶겠지만, 사실 이곳은 치매 할머니가 주문과 서빙을 본다. 요리는 수준급 셰프들이 만들지만, 치매 할머니들이 주문받고 서빙하다 보니 주문받은 걸 잊어버리고 다른 걸 갖다주기 마련이다.
치매 노인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란 의미에서 만든 이벤트성 식당이었는데, 아마 이 식당에서 밥먹은 사람들 중 주문실수에 화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거다. 오히려 유쾌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노령화사회가 되면 치매노인도 그만큼 더 많아질 수 있고, 그들을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치매노인을 비롯해 장애인, 성소수자 등 여러 경제적 약자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게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오더 미스테이크 같은 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일어나길 희망한다. 정책이나 복지만이 아니다. 우리 태도부터 달라져야 한다. 기다려주고, 배려해주고, 이해해주고. 이런 여유가 좀 더 필요하다. 여유는 남자의 ‘클라스’를 높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걸 이해하는 남자야말로 요즘 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남자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가 삼척동자, 즉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하는 남자라고 한다. 그렇다고 여자가 돈 없고, 무식하고, 못난 남자를 좋아한다는 게 아니다. ‘척’, 이게 문제다. 가진 것보다 더 많은 척, 아는 것보단 더 아는 척, 잘난 것보다 더 잘난 척. 묻지도 않은 연봉 얘기나 학벌 얘기 떠벌리는 것도 없어 보인다. 특히 사사건건 뭐든 다 설명해주려는 ‘맨스플레인(mansplain)’도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남녀 모두 비슷하게 갖고, 비슷하게 배우고, 비슷하게 알고, 비슷하게 잘났다. 남자가 우월적 지위를 갖고 기선제압 한다는 식의 접근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에서 남자가 어떻게 독신이 되는지 아는가? 여자가 독신주의자가 되면 남는 남자는 자연스레 독신이 된다. 선택권은 이미 여자에게로 넘어갔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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