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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웃음가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의료 마취제를 파티용으로 '무모하게' 사용…엄연한 환각 물질

2017.06.16(Fri) 22:16:02

[비즈한국]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는 말이 있다. 개가 풀을 먹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싶긴 한데, 육식동물들도 소화불량 등의 경우에 장을 자극하기 위해 풀이나 나뭇가지 등을 먹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쨌든 개가 즐겨 먹는 풀 중에 ‘개박하(catnip)’라는 것이 있는데, 사실 이 풀은 고양이가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강을 위한 채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가 특별히 풀을 좋아할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이 풀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개박하의 네페탈락톤(Nepetalactone)이라는 물질이 고양이에게는 환각 물질이자 최음제로 작용하는 것이다(그렇게 건강에 해롭지는 않다고 한다). 또 호랑이나 표범과 같은 고양잇과의 다른 동물들도 개박하를 좋아한다. 그러나 20~30%의 다른 고양이(혹은 고양잇과 동물)들은 개박하에 별 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의 환각 물질에 취하는 동물들은 고양이 외에도 많이 있다. 돌고래들은 복어를 살짝 깨물어 복어의 독성 성분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을 “기분이 좋을 만큼”만 섭취하여 환각 상태를 즐기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코끼리들은 또 술꾼이다. 자연에서 저절로 발효된 열매를 먹어 알코올을 섭취하는 걸 즐긴다. 서부 벵골에서는 수십 마리 이상의 술 취한 코끼리들이 난동을 부리며 건물을 부수고 인명 피해까지 입힌 적이 있다. 

 

술을 즐기는 것은 코끼리뿐만이 아니다. 푹 익어서 발효된 두리안 열매는 오랑우탄의 기호품이다. 두리안 술에 취한 오랑우탄은 나무에 채 오르지도 못하고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는데, 과일을 주로 먹는 박쥐도 이런 열매를 먹고서는 취해서 날다가 여기저기 부딪혀 떨어지곤 한다. 

 

광대버섯도 자연에서 유명한 환각제여서 순록들이 이걸 먹고 날뛰는 경우가 있다. 광대버섯에 취해 날뛰는 순록을, 역시 광대버섯에 취한 사람이 보고서는 하늘을 난다고 착각한 것이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순록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실제로 스칸디나비아 반도나 시베리아와 같이 추운 지방의 옛 풍습에 이 광대버섯을 먹는 축제도 있었다.

 

코끼리가 즐겨 먹고 취하는 마룰라 열매로 만든 술. 코끼리 그림이 술병에 그려져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동물들이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 또는 우연히 자연의 환각 물질을 이용하거나 먹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딱정벌레 유충이 분비하는 물질은 황개미에게 환각 작용을 일으켜서 개미들이 자신의 애벌레들을 돌보기를 게을리하고 딱정벌레 유충을 돌보게 한다. 

 

이런 못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기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어느 과학자가 몽구스의 집 근처에 강한 환각 작용을 하는 식물을 심어 놓고 몽구스가 이에 관심을 가지는지 관찰한 적이 있었다. 두 달을 관찰하는 동안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던 어느 날 큰 폭풍이 닥쳤다. 집은 엉망이 되었고 그 중 한 마리는 목숨을 잃게 되었다. 배우자를 잃은 아픔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을까? 남은 몽구스 한 마리는 그때부터 환각 작용을 하는 그 식물을 씹기 시작했다. 

 

동물들이 환각 물질을 이용하는 것은 이렇게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 또는 다른 개체를 복종시키기 위해서나 고통을 잊기 위한 이유로 보인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사람들이 환각 물질을 이용하는 이유와 꽤 많이 겹친다. 대략 1만 년 전부터 인간이 마약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 목적은 앞서 말한 동물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샤머니즘의 의식과 같은 초월적 또는 종교적 체험의 목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예전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일부 부족들의 경우에 환각 물질을 신과 접촉하는 매개체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마약 또는 환각 물질을 인간이 사용한 역사는 진통과 마취 작용의 약물 역사와 많이 겹친다. 물론 부작용의 위험이 매우 높은 약물이므로 현재의 경우도 엄격한 관리 아래 정해진 용도로만 사용된다. 그 중에서 전신 마취제로 최초로 도입된 것이 아산화질소, 일명 웃음 가스이다.

 

럼퍼드 백작 벤자민 톰슨과 험프리 데이비가 왕립학회에서 웃음가스를 시연하는 장면.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산소 원자 하나에 질소 원자 두 개가 결합되었으니 정확히 표현하면 일산화이질소인 이 기체는 1772년 영국의 과학자 프리스틀리가 최초로 발견하였다. 이 후에 험프리 데이비라는 과학자가 이 기체를 마실 경우 기분이 좋아지고 웃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실제로 웃는 것은 아니고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켜 웃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수십 년을 파티 용도로 사용되던 이 기체를 외과 수술의 마취제로 사용할 것을 최초로 생각해낸 사람은 미국의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다. 웃음가스를 마시고 자신의 어금니를 통증 없이 뽑는 데 성공한 호레이스는 다른 의사들 앞에서 시연을 보였다. 그러나 적정 양의 기체를 흡입시키지 못해서 환자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바람에 그 시연은 실패했다. 처음의 실패가 있었지만 이후 다른 의사들에 의해 다양한 마취제가 개발되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고 아산화질소도 지금까지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

 

1846년, 호레이스 웰스가 치과 치료에 아산화질소를 마취제로 사용하는 것을 시연하는 모습. 그러나 환자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병원에서 아산화질소를 사용할 때에는 산소와 함께 환자에게 흡입시키며 적절한 시간과 양을 환자에 맞게 의사가 조절을 하기에 안전하다. 독성이나 자극성이 약하고 안전한 편에 속하는 기체이지만 개인이 함부로 사용할 경우에는 산소결핍증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최근에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대학가나 클럽 등에서 파티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 4월에는 아산화질소의 과다흡입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있었고 이에 정부는 환각 물질로 지정하여 관리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위험을 알면서 무모한 시도를 하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치료의 용도가 아닌 이상 그 어떤 약물도 우리의 삶을 망칠지언정 개선하지는 못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정인철​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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