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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남자가이드] '늘 마시던 걸로' 지칠 때 위스키 한잔이라는 피난처

독한 술 한 잔이 생각날 때 찾아가 볼 만한, 지극히 개인 취향의 바 추천

2017.06.14(Wed) 17:18:15

[비즈한국] 굳이 패셔니스타나 트렌드세터가 되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 하지만 아주 약간의 투자로 일상이 달라질 수 있다면? 은근히 센스 있다는 말이 듣고 싶은, 바로 당신을 위한 가이드.

  

상수동의 디스틸(d.still). 사진=장예찬 제공


남자 주인공이 바(bar)에 걸터앉아 우수에 찬 눈빛을 보낸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바텐더가 다가와 주문을 받으려 한다. 주인공은 시선을 허공에 둔 채 ‘늘 마시던 걸로’라며 짧게 말한다. 

 

이제는 영화나 드라마에도 나오지 않는 오래된 클리셰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이런 로망을 갖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는 단골 바 하나쯤은 있어야 조금 더 멋진 남자가 아닐까. ‘​바’​라고 하면 젊은 여성들이 말동무를 하며 술을 따라주는 공간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빼도 박도 못하는 아재다.

 

한남동과 청담동을 중심으로 유행한 몰트 바는 이제 트렌드라 말하기도 난감할 만큼 대세가 됐다. 그 부작용으로 너도나도 우후죽순 몰트 바를 열기도 했지만, 어쨌든 방송을 통해 혼술 열풍이 불기 전부터 혼자 위스키 한 잔 마실 수 있는 몰트 바는 서울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가끔은 독한 술 한 잔이 생각날 때가 있다.

 

혼자여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라도 좋다. 자신있게 찾아갈 수 있는 바의 존재는 남자의 삶에 작은 위로를 주는 오아시스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늘은 철저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서울의 괜찮은 바를 추천하려 한다.

 

이제까지 ‘​보통남자가이드’​가 그랬듯 조금의 후원이나 협찬도 받지 않은, 100% 개인 취향에 기반한 추천이다. 그러나 감히 확신하건대 이 글을 읽고 찾아가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상수동의 디스틸(d.still).

 

맞다, 홍대입구와 붙어 있는 바로 그 상수동이다. 싱글몰트 위스키와 홍대입구, 이만큼 안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 디스틸은 상수동에서도 가장 시끄러운 장소인 밤과 음악사이 바로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치킨을 파는 옥상달빛 대각선, LP로 유명한 상수동 터줏대감 수지큐 건물 1층이다.

 

바깥 골목은 홍대스럽게 시끄럽고 난잡하지만, 디스틸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1층에 잇지만 간판도 없고, 내부를 볼 수도 없기에 뜨내기들은 디스틸에 들어올래야 들어올 수가 없다.

 

위스키나 칵테일에 대해 잘 모른다면, 어깨에 힘을 빼고 바텐더에게 추천을 부탁하면 된다. 디스틸은 청담이나 한남의 몰트 바에 비해 캐주얼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고, 동네 단골 호프를 찾는 듯 가벼운 마음으로 자주 발걸음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바텐더들은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운 고수들이다. 소속 바텐더들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바는 디스틸 말고 들어본 적이 없다. 허례허식을 버린 고수들의 편안한 공간이 디스틸이다. 심지어 안주로 나오는 음식도 맛있다.

 

좀처럼 강남을 벗어나지 않는 남자들에겐 청담동 라이언스 덴(The Lion’s Den)이 제격이다. 청담과 한남의 몰트 바는 어딘지 콧대가 높은 느낌이다. 그러나 라이언스 덴은 처음 방문해도 단골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만큼 바텐더들의 접객 내공이 깊은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바가 자릿세인 커버 차지를 받는다. 물론 커버 차지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담에서도 가장 비싼 동네에 자리하면서 커버 차지를 받지 않는 라이언스 덴에게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깔끔하게 슈트를 차려입은 바텐더들의 명성 때문인지 혼자 찾아온 여성 손님들도 많다. 혼자라면 바 구석에, 여럿이 왔다면 넉넉한 소파 테이블에 앉으면 된다. 가본 적 없는 미국의 클래식 바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마포의 라이언스 덴은 칵테일 비중이 높고, 손님들의 연령대가 다소 낮은 반면 청담 라이언스 덴은 싱글 몰트 위스키가 잘 어울리는 장소다. 종종 중년의 신사들이 시가를 즐기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내가 어떤 위스키를 좋아하는지 아직 취향이 확고하지 않다면, 청담 라이언스 덴은 누구보다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가장 자주 찾는 두 곳의 바를 소개했지만, 내자동의 텐더(tender)나 한남동의 더부즈(The Booze)처럼 위스키 마니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공간이 서울의 밤을 지탱하고 있다.

 

전주의 진주도가, 부산의 몰트 바 잭슨처럼 고유의 지역색을 지닌 바의 명성은 금방 전국으로 퍼진다. 최근에는 한옥마을이 아니라 진주도가를 방문하기 위해 전주 여행을 떠나는 지인들이 늘어나고 있어 놀라울 지경이다.

 

심신이 피로한 날, 단골 바에 쓰러지듯 앉았는데 익숙한 얼굴의 바텐더가 늘 마시는 보모어(Bowmore)를 말없이 내오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보통 남자들에게 나를 기억하고 늘 마시던 위스키 한 잔을 가져오는 바는 피난처다.​

장예찬 자유미디어연구소 대표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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