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계속되는 봄 가뭄! 곳곳에서 산불이 나서 공무원과 지역 주민의 고생이 여간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작물 농사에도 타격이 커서 모내기가 늦어지고 있다. 심어 놓은 밭작물 모종도 말라 죽어가니 농심도 함께 타들어 가는 6월의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가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작물뿐만 아니라 산천의 산들꽃도 마찬가지이다.
한라산에 오르기로 한 날, 비가 온다 하더니만 밤에 약간 내리다 그치고 말았다. 구름만 잔뜩 끼어 산행하기에는 좋은 날이었다. 영실에서 출발하여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한라산 등산길에 병풍바위와 오백나한상이 안개에 싸여 선명한 이곳 풍광을 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가뭄이 심해 한라산 등산길에 먹는 샘물도 거의 말라붙었다고 해서 물을 충분히 챙겨야만 했다.
아무리 가물다 해도 초목은 봄이 되면 새싹을 내고 꽃도 피워내야만 한다. 초목이 갖는 그해의 소망은 오직 꽃을 피우고 씨를 남기는 일이다. 식물의 꽃 피움은 주어진 그해의 삶에 보답하는 생명의 강한 불꽃이며 주어진 소명(召命)을 완수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그래야만 후대를 이어갈 씨앗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라산 윗세오름에 넘실대는 산철쭉, 그리고 노린재나무, 윤노리나무, 보리수나무 등 많은 꽃나무와 바닥에 붙은 구름미나리아재비, 세바람꽃 등 풀꽃들이 한창이었다. 가뭄 속에서도 마다 아니하고 피어나는 꽃들! 앙증맞게 피워낸 꽃들이 고와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눈물겹기도 하다. 초목일지라도 삶의 목적을 포기할 수 없어 기어코 꽃을 피워내는 산들꽃들이 곱고도 섧다. 피고 나면 지는 것이 꽃일진대 그렁저렁 지나가는 생(生)이 아니라서 가뭄 속 산들꽃이 더더욱 고와 보였다.
병풍바위를 지나 윗세족은오름에 오르니 고산지대 초원처럼 탁 트인 벌판이 드러난다. 앞 벌판에는 꽃물결 일렁이듯 한창 피어나는 산철쭉이 이어진다. 그 풀밭 고원지대에 숨어 있는 참으로 쪼매하고 앙증맞은 하얀 꽃을 만났다. 바로 흰그늘용담이다.
풀잎 사이로 하얀 얼굴을 빼꼼히 드러낸 흰그늘용담, 눈에 환하게 띄는 산철쭉만 보고 따라가면 자칫 지나치기 쉬운 아주 작은 꽃이다. 풀잎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은 꽃이지만, 한라산을 오르는 꽃쟁이들은 반드시 보고 싶어 하는 버킷 리스트의 한 종이다.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한라산 고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기 때문이다.
흰그늘용담은 구슬붕이와 닮았으나, 꽃이 희고 습한 고지에 주로 나는 것이 다르다. 잎은 뿌리 끝에서 모여 나고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가 막질로 되고 잔돌기가 있고 위로 갈수록 점차 작아진다. 꽃은 하얀색이며 줄기 끝에 1개씩 달리고 꽃자루는 짧으며 윗부분에 점 같은 잔돌기가 있다. 수술은 5개, 암술은 1개가 화관 통속에 들어 있다. 줄기는 높이 5~7cm이고 밑에서 갈라져 모여나기 하며 털이 없다. 한라산의 해발 1700m 이상의 습기 많은 풀밭 속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꽃을 피운다. 참 앙증맞고 귀여운데 사진으로 보면 배경의 풀들이 어지럽게 드러나서 주변 풀들을 다 제거하기 전에는 깔끔한 모습을 담을 수 없는 꽃이다.
비슷한 종으로 봄구슬붕이, 고산구슬붕이가 있다. 봄구슬붕이는 꽃이 연한 자주색이고 화관의 꽃받침이 훨씬 길며 열편 끝이 뾰족하다. 고산구슬붕이는 꽃이 하얗거나 연한 하늘색이며 화관 안의 선상 무늬가 짙은 자색이고 잎과 줄기에 잔돌기가 없는 것이 다르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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