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자연은 아직까지도 풀어내지 못하는 숙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물음에 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미궁 속에 있는 자연의 신비한 현상은 여전하다. 그런 곳에 깃드는 것이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정신을 풍요롭게 했고, 예술을 기름지게 만들어 왔다. 이를 자양분 삼아 자라난 대표적인 예술이 상징주의다. 과학으로 풀지 못하는 자연 현상을 그냥 넘기기에는 미심쩍었던 예술가들이 찾아낸 돌파구였던 셈이다. 배후에 불가사의한 힘 혹은 존재가 있다고 믿고 이를 표현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신화나 현실의 사물에 빗대어 풀어내는 방법으로. 그래서 상징주의 작품은 표현된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들여 접근하면 작가의 의도를 알아내기가 수월치 않다. 상징의 코드를 알아야 해석이 가능하다.
19세기 말 심각한 얼굴로 등장한 상징주의는 사람들의 호감을 얻지는 못했다. 진지한 만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기에. 호응도가 낮아서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서양미술의 영토를 넓히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해냈다. 그 영향력은 20세기를 관통하고 21세기 우리 미술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은 개인적 사물이나 자연 이미지에다 상징성을 부여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영희의 회화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그는 ‘꽃’과 ‘의자’라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조합으로 자신의 의중을 장식적 화면에 담아낸다. 그림 가득 무수히 많은 꽃의 이미지가 깔리는데 추상적 구성 방법을 택해서 원근감이 없다. 단색조의 색채는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무슨 상징을 포장한 꽃밭일까.
화가에게 가장 친근한 소재 중 하나는 꽃이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물이기 때문일 게 다. 정물화에서도 으뜸을 차지하는 것 역시 꽃이다. 동양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꽃을 주요한 소재로 택해 많은 화가들이 그려 왔고, 아예 ‘화훼’라는 장르를 정해 대접해왔다.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기 위한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꽃이 작가의 생각을 포장하는 상징으로 훌륭한 매개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영희의 꽃밭도 이런 상징을 품고 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꽃이 지닌 환상적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꽃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 보인다. 반짝이는 꽃은 조금씩 흔들리는 것처럼도 보인다. 화면 전체를 감싸는 공기가 보인다. 단색조의 색채 때문이다.
안개 속의 꽃밭은 우리네 인생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꽃밭 같은 미래를 꿈꾸지만, 꿈속처럼 모호한 인생길. 그 길의 지표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영희는 의자를 등장시킨다.
화면 중앙에 또렷하게 배치한 의자에서 작가의 의도가 확연히 읽힌다. 기하학적으로 정교하게 표현한 의자는 몽롱한 배경 때문에 입체감이 도드라져 보인다. 한 쌍의 의자는 음양을 상징하듯 밝고 어둡게 그려져 있다. 인생의 정확한 지표를 설정하기 위한 작가 자신의 마음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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