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이 가계 부채 문제로 고심하듯, 중국은 기업 부채의 급격한 증가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중국의 GDP 대비 부채를 부문별로 살펴보면, 기업이 부채 증가를 주도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2014~2016년 동안 세계의 교역량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중국의 경제성장률도 6%대로 내려앉았다. 경제성장이 가파른 고성장 시대에는 부채를 늘려 투자하는 게 타당한 의사결정이지만, 금융위기 이후 펼쳐진 저성장 시대에 기업들이 부채를 저렇게 급격히 늘릴 이유가 있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중국 기업들의 환경이 국영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으로 극과 극의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래의 그림은 중국 은행의 대출 및 예금금리 추이를 보여주는데, 상업은행의 대출금리가 연 4.5% 전후에 불과하다는 것에 놀랄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중국경제는 실질성장률이 6% 후반 그리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에 이르기에 시장의 적정 금리는 9% 전후인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시장금리는 결국 실질금리와 인플레이션 기대의 함수이기에, 실질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실질금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4%대 중반의 대출금리는 중국 경제의 수익성과 성장 속도에 비해 너무 낮기에 대출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대출이 어디로 집중될까?
대출 신청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중국은행들은 마케팅을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 정부 소유의 은행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은행들은 아무에게나 대출해줄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불운이 겹치거나 혹은 사기 대출에 직면할 경우, 부실 대출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영 상업은행은 가장 위험도가 낮은 대출처, 즉 국영기업에 대출을 몰아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국영 대기업이야말로 ‘수익성’ 및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출을 해주면 안 되는 곳이라는 데 있다. 왜냐하면 국영기업들은 이미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에 대출을 그렇게 많이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특유의 관료제로 인해 혁신을 주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 결과 중국 경제에 만성적인 문제, 즉 ‘그림자 금융’ 이슈가 부각된다. 여기서 그림자 금융이란 자산관리 계좌 및 위탁대출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결국 ‘재대출’이 핵심이다.
고성장 및 저금리 여건으로 인해 자금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돈 가진 사람은 국영기업밖에 없으니, 국영기업들은 돈이 급하게 필요한 벤처기업이나 민간기업에게 넉넉한 마진을 붙여 재대출하며 이게 ‘그림자 금융’이라는 점잖은 명칭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아래의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적정금리(=명목 경제성장률)와 대출금리의 차이로 측정되는 금융 억압의 정도와 그림자 금융은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즉, 적정금리수준에 비해 대출금리가 너무 낮을 때에는 그림자 금융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결국 국영기업들은 최대한 대출을 받는 게 이익이며, 또 이 과정에서 기업의 부채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물론 국영기업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매우 반가울 것이다. 아래의 그림에 잘 나타난 것처럼, 적정금리에 비해 대출금리가 크게 낮을 때. 다시 말해 금융억압이 심화될 때 중국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개선된다. 손 쉬운 돈놀이가 기업들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셈이다.
이런 경제환경은 중국경제에 크게 두 가지의 독이 된다
첫 번째는 효율적이며 성장 잠재력을 크게 보유한 기업들이 균형수준보다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게 된다. 최근 중국 경제 내에서 국유부문의 비중이 다시 증가한다는 지적이 높아진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셈이다.*
두 번째는 손 쉬운 돈놀이에 집중함에 따라 경쟁력 개선이 지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에는 알리바바와 텐센트, 그리고 바이두 등 혁신적인 기업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 기업들은 모두 민간기업이지 국영기업이 아니다. 정부의 직간접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저금리 여건을 누릴 수 있는 중국 국영기업들의 위상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세계적인 중국경제 전문가 니콜라스 라디 박사는 그의 책 ‘Markets over Mao: The Rise of Private Business in China’서 국영기업들의 수익성이 민간기업에 비해 턱없이 낮다고 지적한다. 민간부문에 매우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함에도 불구하고 국영기업 수익성이 낮은 것은 결국 지속적인 경쟁력의 ‘저하’ 이외에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중국 국영기업들이 지금 당장 경영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낮다. 국영기업들이 저금리 자금을 독점하는 데다, 손쉽게 돈놀이를 할 수 있어 경영 여건이 나빠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전반의 생산성은 빠르게 저하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이 임금과 지가 등 요소가격의 급등 속에 이른바 ‘중진국 함정’의 위험에 직면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금융시스템은 경제성장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각에서는 “중국이 경쟁력을 상실하면 좋은 일 아닌가?”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세계경제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누가 이기고 지는 1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세계경제가 가파른 성장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중국경제의 고도성장이 큰 영향을 미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이 열리면서 아모레퍼시픽 같은 코스메틱 기업들이 가파른 성장을 기록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부디 중국 정책당국이 ‘수출회복’이라는 호기를 잘 활용하여, 국영기업의 개혁은 물론 금융시장 자유화의 깃발을 높이 올리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Bloomberg(2012.6.29.), ‘The Rise of Innovative State Capitalism’.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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