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흰 피부가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겠지만, 기자처럼 콤플렉스인 사람도 있다. 영화 ‘패왕별희’의 주인공이 아니라면, 남자에게 흰 피부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인공태닝이다. 여유가 있다면 기계를 사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태닝숍을 이용하면 된다.
‘다크 스킨’에 대한 로망은 어릴 때부터였다. 1980년대 영화 ‘람보’ ‘코만도’ 주인공들의 근육질 몸매는 구리빛 피부와 함께였다. 영화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듯 험난한 학창생활을 견디기 위해서는 강한 남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소란을 피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싸움박질을 하기보다 조용히 팔굽혀펴기를 하는 쪽을 택했다.
태닝숍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2012년이었다. 우연찮게 헬스클럽을 등록했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짧은 운동복을 입을 수가 없었다. 피부가 너무 하얗기 때문이다. 검색을 통해 홍대 근처의 태닝숍을 찾았다. 그렇게 기계태닝을 시작했다. 이후 매년 여름철에는 태닝숍에서 피부를 태우곤 했다.
지난 4월 말, 3년 만에 태닝숍을 다시 찾았다. 2년 동안 헬스클럽에서의 운동에 게을렀더니 지난 겨울 몸무게가 100kg을 넘겼다. 올해 심기일전해 열심히 헬스클럽을 다니고 있다. 대선이 한창이던 4월은 봄이 무색하게 이른 더위가 찾아왔지만, ‘4월이라는 이유’로 헬스클럽은 냉방을 하지 않았다. 겨울용 운동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릴 수만은 없었다. 짧은 운동복을 입자니 태닝이 필요했다.
기계태닝은 비싸다. 10회권을 끊어 할인된 가격이 30만 원이 넘는다. ‘돈×랄’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돈을 주고 피부를 태우고 있다고 하면 실소를 보인다. ‘해수욕장 한 번 가지 그러냐’ ‘옥상에서 태워라’ ‘돈이 남아 도냐’ 등 다양한 반응이다. 그럼에도 기계태닝을 한다는 것은 짙은 피부색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는 뜻이다.
예전에 이용하던 태닝숍은 아직 그대로였다. 임대료 비싼 홍대 인근에서 비수기인 겨울을 몇 해 지나면서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 가격이 비싼 이유는 수요와 공급 간의 균형점일수도 있겠다. 더 비싸면 이용자가 줄어들 것이고, 더 싸면 숍 운영이 안 될 터다.
이전에 없던 월간 자유이용권 상품이 생겼다. 비수기인 5월까지만 파는 것으로, 한 달 동안 매일 이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격은 10회권보다 10% 정도 비싼 수준이었다. 가격적인 이점 때문에 두 달치 자유이용권으로 등록했다. 비수기에 매일 와서 많이 태우고, 성수기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와서 유지만 하면 되겠다 싶다.
영화 ‘데스티네이션3’에는 태닝숍에서 사고로 죽는 장면이 나온다. 기괴한 기계의 낯선 형태와 푸른 램프의 색이 괴기영화와 잘 어울리는 듯하다. 영화에서는 보통 누워서 하는데, 최신 기계는 서서 한다. 끈적거리는 타인의 땀과 로션이 몸에 묻을 염려가 없고, 태닝숍 직원들도 매번 기계를 닦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이 가게에는 각 6.6㎡(약 2평) 정도 되는 개별 룸이 5개다. 기계는 사람이 안에 들어가고도 여유공간이 있다 보니 거대하다. 열을 빼기 위한 배기구까지 설치되면 기계가 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1.65㎡(0.5평) 되는 자투리 공간에서 탈의를 하고 기계에 들어가 스위치를 누른다. 속옷을 입거나 벗거나 자유지만, 굳이 속옷자국을 남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개는 입지 않는다. 여성용으로는 상하 주요 부위를 최소한으로 가리는 별도의 도구가 있다.
2.5m 높이의 천정은 뚫려 있어 옆방에서 탈의하는 낌새가 느껴지기도 한다. 20분 간격으로 돌아가는 이용시간 내에 태닝을 마쳐야 하다 보니 들어가면서부터 시간에 쫓긴다. 얼굴이 덜 타도록 선블럭을 별도로 바르고 시력보호 고글을 써야 하는 등의 준비와 마무리를 각 5분 내에 해야 하므로 바쁘다.
기계 사용시간은 최대 10분으로 세팅돼 있다. 피부가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만 해야 해서 짧다. 조금씩 자주 와서 해야 하므로, 부지런함과 인내심이 없으면 지속하기 힘들다.
기계 안에 들어가 스위치를 켠다. 20~30개의 하늘색 램프가 일제히 켜지고 10분 타이머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시야가 극히 좁아지는 보호용 고글을 쓰고 환풍기 모터가 시끄럽게 돌아가다 보니 시각과 청각이 온전치 못한 데다, 램프가 내뿜는 열기에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정신이 얼얼하다고나 할까. 10분 동안 스스로를 고문하는 기분이다.
첫날엔 태닝 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너무 약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다음 날 태닝을 반복했다. 그날부터 빨간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3일 내리 갔더니 등짝이 따갑기 시작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등이 아리다. 처음엔 인터벌을 3일 정도 두고 갔어야 했지만 월간이용권이라 매일 가겠다는 욕심이 앞섰다. 해수욕장에 갔다 온 것처럼 껍질이 벗겨지지는 않은 대신 각질 가루처럼 피부가 벗겨진다. 샤워 후 보습제를 발라서 가루가 날리지 않게 해야 한다.
4월 말에서 5월 중순까지는 예약이 빡빡하지 않았지만 6월을 넘어서면서 이용자가 많아져 원하는 시간에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남는 시간대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여름이 다가옴을 실감할 수 있다. 출퇴근 경로가 아님에도 단지 태닝을 위해 홍대 앞을 방문해야 한다는 점이 때론 번거롭기도 하다.
카운터에서 대기할 때 보면 남자고객보다 여자고객이 월등하게 많다. 태닝숍은 네일아트처럼 미용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청순해 보이는 하얀 피부를 갈망하는 여성도 있지만, 진한 피부색을 원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태닝숍까지 이용할 정도면 외모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숍에 보이는 남녀고객들을 보면 거의 20~30대이며 출퇴근 복장을 한 사람은 없었다. 셔츠를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퇴근길에 들른 기자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부모님 세대가 여기를 와 본다면 ‘천하의 둘도 없는 낭비’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공급과 수요가 있기에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다.
기왕 돈을 주고 살을 태운 김에 운동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운동도 태닝도 좀 더 멋있어지기 위해 하는 거니까. 연간 회원권을 끊고서 주 1회 겨우 가던 헬스클럽을 주 2회 이상 가게 된다. 게을렀던 자신에게 운동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태닝이라는 극단적 처방을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피부가 어두워지면서 얼굴의 잔주름이 잘 보이지 않고 탄력 있어 보이는 점은 덤이다.
네일아트, 피어싱, 타투는 알아보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일반적인 직장, 남자의 세계에서 태닝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얼굴은 덜 태우려 선블럭을 발랐기에 티도 많이 나지 않는다. 결국 태닝은 자기만족이다. 부끄러움을 없애주고 당당해지는 기분을 위해서랄까.
이런 만족감과 자신감은 일과 대인관계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그런 믿음으로 태닝숍과 헬스클럽에 투자한 금액이 아깝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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