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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영장 기각, '인정한 잘못'만 넣은 검찰의 완패

심사 과정서 혐의 입증 논란 피하려 했다가…재신청·발부 가능성 낮아

2017.06.03(Sat) 11:32:43

[비즈한국] “영장에 청구된 범죄 사실에 따른 피의자의 가담 경위와 정도, 기본적 증거 자료들이 수집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현시점에서 (정유라 씨의)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는 2일 오후, 2시간 넘게 진행한 구속영장 실질심사 끝에 정유라 씨의 구속영장 기각을 결정했다. 법원의 영장기각 결정 후 오늘(3일) 새벽 2시 20분 쯤 피곤한 표정으로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모습을 드러낸 정유라 씨는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정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 뒤 청사를 떠났다.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가 3일 새벽 구속영장 기각 후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인천국제공항에서 긴급체포한 정유라 씨를 구속해야 한다며, 법원에 제시한 혐의는 단 두 가지. 정유라 씨의 청담고 재학시절, 봉사활동 실적 조작이나 허위출석 인정(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과 이화여대 부정입학 및 학점 특혜(업무 방해)뿐이었다. 정 씨가 가담 여부와 공모 관계는 부인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부분들만 혐의로 적용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 과정에서 범죄 혐의 입증 논란을 최소화하려 한 것. 하지만 검찰의 전략은 결국 ‘무위’로 끝났다.

 

법조계 관계자는 “정유라 씨가 구속될 가장 큰 필요성은 한국 수사기관에서 불렀지만 귀국하지 않았던 점을 통해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부분이었다”며 “검찰은 본인도 원하지 않았지만 불법의 수혜자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혐의만 적용해 법정에서 혐의로 다투지 않고 정 씨를 구속하려 했던 것인데, 이에 대해 법원이 ‘구속할 만한 사유가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정 씨의 구속영장 실질심사 전략도 주효했다. 그는 영장 실질심사에서 눈물을 흘리며 불구속을 호소했다. 억울함을 강하게 토로한 것인데 정 씨는 검찰을 나서며 눈물을 흘린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 “SNS에 안 좋은 글도 올렸고 그게 누굴 향한 글이었든 잘못된 글임을 확신하고 많이 반성하고 있다, 제 아이한테도 그런 말 하면 정말 기분이 안 좋고 속상할 것 (같아 울었다)”고 밝혔다. 범죄 혐의와 관계없이 국민적 지탄을 받는 부분이 있다는 점, 그럼에도 논란의 주인공이 된 것을 뉘우치고 있다는 점을 재판부에 강하게 호소한 것이다.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꼼꼼히 살펴보면 단호한 판단이 눈에 띈다. 검찰의 수사 부족과 함께 죄의 경중도 언급했기 때문. 법원은 ‘범죄 사실에 따른 정유라 씨의 가담 경위와 정도’라는 표현을 쓴 뒤 ‘기본적 증거 자료 수집된 점’이라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는 정유라 씨의 범죄 사실이 구속할 만큼 중하지 않다는 점과 검찰의 혐의 입증 증거가 부족했다고 차례대로 밝힌 셈이다. 자주 쓰는 ‘다툼의 소지가 있고’라는 표현 대신 더 단정적으로 밝혔다. 이를 놓고 검찰에 ‘혐의가 구속할 만한 이유가 아닌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장전담 재판부 판사 출신 변호사는 “국민적 관심을 받는 사건에서,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검찰과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장치”라며 “결과만큼 신중하게 작성하기에 그 속의 메시지를 보면, 검찰의 영장 청구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잘 알 수 있고,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 영장전담판사가 가장 납득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미진하다고 인식됐던 국정농단 의혹 재수사까지 고려했던 상황에서, 국정농단 재수사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정 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 검찰은 정 씨를 구속한 뒤 그를 위해 독일에 설립한 법인 코레스포츠에, 삼성전자가 78억 원을 송금한 과정을 추가로 수사할 계획이었다. 삼성에게 받은 돈으로 현지에서 부동산을 구매하고 덴마크 생활 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최종 수혜자가 정 씨였기 때문에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 보려했던 것. 

 

또 이 과정에서 정 씨가 새로운 범죄 사실들을 털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최순실 씨와 입을 맞추지 못하도록 정 씨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던 게 검찰의 복심이기도 했다.

 

검찰은 아직 영장 재청구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구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다’는 의견이 더 많다. 법원 관계자는 “국민적 지탄을 받는 수사에서 첫 영장청구가 기각되면 재청구 때는 범죄 혐의를 더 구체적으로 법원에 입증해야 한다”며 “정 씨의 범죄 혐의가 중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본인이 특혜를 원치 않았는데 최 씨가 일방적으로 했다는 호소가 법원에 주효했고, 어린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점 등까지 감안할 때 재청구를 하더라도 영장이 나올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고 내다봤다.

최민준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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