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동양미술의 핵심은 풍경에 있다. 자연을 주제 삼는 이런 그림을 ‘산수화’라고 불렀다. 이의 역사는 대략 2천여 년에 달한다. 장구한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화가들이 풍경을 그렸다. 주로 먹을 썼기 때문에 스치듯 보면 그 그림이 그 그림 같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백의 흰 종이와 먹의 검은 색이 공간을 구성하며 산과 강, 폭포, 구름, 나무와 바위 등을 그려냈다. 즉 그리지 않고 남긴 부분과 먹으로 채운 부분이 풍경을 연출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음과 양의 조화라고 불렀는데, 예부터 동양 사람들에게는 자연 이치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통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산수화에는 이 같은 생각이 담겨 있다. 단순하게 ‘보이는’ 자연 풍경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음과 양의 조화를 가지고 자연을 해석하려 했던 동양 사상을 담아낸 그림이었다.
박영학이 그려내는 산수풍경도 동양 사상의 자연 해석법을 따르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흔한 경치를 소재로 삼는다. 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산이 있고, 그 사이 언뜻언뜻 보이는 논과 밭, 길과 건물이 있는 보통 풍경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먹이 아니라 목탄으로 그리는데도 수묵산수화의 맛이 난다. 여백을 활용하는 공간 구성법 때문이다. 자연이 빚어낸 공간인 산과 숲은 목탄으로 그리거나 비벼서 표현한 것으로, 슬쩍 보면 먹의 농담 효과를 이용해 그린 것처럼 보인다. 박영학 회화에서 음적 요소로 보이는 부분이다. 이에 비해 논이나 밭, 길, 건물 같은 인위적 요소는 선으로 골격만을 그려 여백의 효과를 한껏 살려놓았다. 양적인 요소다.
자연적 공간인 숲이나 산은 인간의 손길이 가지 않은 순수한 부분이다. 인간 욕망이 닿지 않은 비어 있는 공간인 셈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부분을 목탄으로 꼼꼼하게 채워 ‘그려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간 욕망으로 채워진 인위적 공간인 길, 건물, 논과 밭 같은 부분은 공허한 울림이 들릴 정도로 덩그러니 비워 놓았다. 비움과 채움의 역설적 풍경인 셈이다. 이를 통해 그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인간 욕망과 자연의 대결 구도는 박영학 회화에서 수묵화의 여백을 이용한 공간 구성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백으로 비워 놓은 부분은 자연을 침범해 들어가는 개간, 개발의 인간 행위다. 그러나 자연을 정복해 인간 욕심을 채울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그가 그려내는 인위적 공간의 공허함이다. 산을 가로지르고 물길을 막아 인간 욕망의 영토를 늘리는 만큼 자연의 풍요로움은 줄어든다는 진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 메시지를 담은 그림임에도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 박영학 회화의 매력이다. 고향 풍경 같은 아련함이 묻어나는 친숙한 서정성이다. 왜 그럴까.
전통수묵화가 지켜온 서정성과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수묵을 전혀 쓰지 않으면서도 수묵화의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던 이유가 이런 서정성을 유지하고 싶었던 속마음의 결실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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