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한민국에 갑자기 불어 닥친 가상화폐 열풍으로 인해 거액을 날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가상화폐 관련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적금을 깨서 투자한 것은 양반, 대출까지 받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절반도 못 건지고 빠져나왔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가상화폐 거래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투자는 물론 투기를 넘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도박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일주일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간 가상화폐 시장을 추적해봤다.
# 달콤한 입소문에 ‘묻지마 투자’ 광풍
불과 얼마 전까지 가상화폐는 기술에 밝은 소수가 장기 투자 관점에서 구입하는 정도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분야였다. 비트코인에 대해 한번 쯤 들어본 사람은 많았지만 그걸 어디서 어떻게 사고파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적었다.
그런 가운데 이달 초부터 각종 커뮤니티에서 최근 가상화폐 급등이 심상치 않다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벌써 투자금의 몇 배를 벌었다는 자랑이 올라오면서 대중의 관심이 급격히 커졌다. 그 중심에는 ‘이더리움’이 있었다.
올 초까지만 해도 1이더리움은 1만 원 전후에 거래되던 가상화폐였다.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지난주 20만 원을 돌파했다. 올해 초 이더리움을 구입한 사람은 무려 20배를 번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커뮤니티를 넘어 언론매체들이 앞 다퉈 보도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됐다.
5월 18일부터 22일까지 4일 동안 이더리움 시세는 두 배가 올랐다. 그간 가상화폐를 모르던 사람들의 자금이 몰린 시기도 바로 이 때로 추정된다. 이더리움이 주도한 이러한 상승세는 비트코인을 비롯해 대시, 라이트코인, 이더리움클래식, 리플 등 다른 가상 화폐의 시세 상승까지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하늘 모르고 치솟는 이더리움 시세는 대부분 직장인들의 월급날인 25일 정점을 찍는다. 이른바 개미들이 가장 많이 몰려든 시점이기도 하다. 25일 새벽 5시 이더리움은 설마 했던 30만 원을 최초로 돌파한다. 이미 20배나 올라버린 이더리움에 투자하는 것을 망설였던 개미들의 경계심을 무장해제한 사건이다. 심지어 이더리움은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하루 종일 오르기도 했다.
결국 낮 12시가 되면서 이더리움의 가격은 38만 원까지 오른다. 불과 하루 만에 50%가 오른 셈이다. 상한가도 하한가도 없고, 이상 과열 현상을 견제하는 서킷브레이커도 없는 가상화폐 시장이니까 가능한 급등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상화폐 시장에서 발생한 ‘블랙 프라이데이’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 자고 일어나니 ‘반토막’…대처할 틈도 없었다
25일 낮 12시를 기점으로 이더리움, 비트코인, 리플 등 모든 가상화폐가 일제히 폭락했다. 38만 원에 거래된 1이더리움이 불과 1시간 만에 32만 원으로 내려앉았다. 이후 끊임없이 등락을 거듭했지만 결국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시세가 28만 원까지 폭락했다.
25일 정오를 전후로 부품 꿈을 안고 가상화폐에 투자한 개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시세가 오르고 내렸기 때문에, 일반인이 매도 타이밍을 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때만 해도 대부분 가상화폐 커뮤니티에는 워낙 시세가 급등한데 따른 조정 현상이며,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두 번째 폭락은 투자자들이 잠든 밤 12시를 기점으로 이뤄졌다. 38만 원에서 28만 원까지 하락한 이더리움은 이후 몇 시간 동안 시세를 유지했다. 이를 두고 손해를 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추가 매수를 통한 만회를, 신규 투자자들은 저점 기회로 보고 신규 매수를 도모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밤 10시가 넘으면서 이번에는 낮 시간인 미국 거래소에서 가상화폐가 폭락해 버렸다. 이미 28만 원으로 떨어진 이더리움이 27일 토요일 아침에는 22만 원까지 더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이를 본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패닉셀(Panic Sell)이 이어지며 오후 7시까지 16만 원으로 추가 하락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각종 가상화폐 커뮤니티에 투자를 후회하는 글이 넘쳐났다. 수천만 원을 투자했다가 반 토막이 났다는 사례는 부지기수. 심지어 대출을 받아서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술을 마신 뒤 자해를 했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무엇보다 대다수 투자자들은 뚜렷한 악재가 없는데 갑자기 왜 시세가 내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갑자기 이더리움을 포함한 가상화폐가 폭락한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 그중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 국가별 가상화폐 가치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가상화폐는 국경을 무시하고 마치 이메일처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런데 국가 별로 가상화폐의 가치가 다르면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미국 대표적인 가상화폐 거래소 폴로닉스에서 1비트코인이 2000달러(약 225만 원)에 거래될 때, 우리나라에서는 300만 원에 거래된다. 미국 거래소에서 1비트코인을 사서 한국 거래소에 보낸 다음 원화로 팔면, 환율과 수수료를 감안해도 15~25%의 차익이 발생한다.
이러한 거래액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편의성 때문이다. 아무래도 매매가 더 활발한 곳에서 더 비싼 값에 거래되는 것이다. 이를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흔히 ‘거래소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누구나 안전하게 이러한 차익을 노린 거래를 떠올리지만, 이는 의외로 쉽지 않다. 일단 대부분 가상화폐는 은행 이체거래처럼 송금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다. 짧게는 1~2시간에서 길게는 날짜를 넘기기도 한다. 만약 송금하는 동안 시세가 급락하면 제 때 팔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해외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국가의 은행계좌가 있어야 하고, 설령 계좌가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일정액 이상 송금하면 외환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 즉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나 할 수 없고 위험도 따른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상화폐 시장이 과열된 25일 우리나라 거래소 프리미엄은 무려 40%를 넘어 50%에 육박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차익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해외에서 가상화폐가 우리나라 거래소에 쏟아졌다. 여기에 수익실현 매물까지 겹치면서 이더리움을 비롯한 가상화폐 전체가 폭락했다는 것이다.
# 보호도 규제도 없는 살벌한 세계…개미는 무조건 밟힌다
1이더리움이 38만 원에서 16만 원까지 하락하는데 걸린 시간은 55시간에 불과했다. 상하한가 제도가 있는 주식시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러한 시세 흐름은 비단 이더리움뿐 아니라 비트코인, 대시, 라이트코인, 이더리움클래식, 리플 등 가상화폐 종류를 가리지 않고 비슷했다. 즉 가상화폐 고유의 가치가 변한 것이 아니라 투기 열풍에 따른 시세 변화가 이뤄졌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문제는 가상화폐의 시세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되느냐 하는 것이다. 단순히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기에는 가상화폐 시장에 허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일단 작전 세력의 존재 여부를 떠나, 누군가 시세 조작을 해도 막을 방법이 전무하다. 이를 관리 감독할 금융기관도 없고, 설사 수사기관이 나선다 해도 워낙 생소한 분야여서 입증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24시간 거래가 중단되지 않고 상한가와 하한가가 없다는 점은 투자자를 끊임없이 지치게 만들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언제 폭락할 지 알 수 없고 그 끝도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약간만 하락해도 투자자는 심하게 동요하게 된다.
29일 현재 이더리움은 24만 원 전후에 거래되고 있다. 이후 시세가 반등한 것. 하지만 앞으로 언제 떨어질지, 혹은 더 올라갈지 아무도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확실하게 수익을 올린 곳은 0.1%의 사고 팔 때마다 수수료를 받는 가상화폐 거래소뿐이 아닌가 싶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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