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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응원 프로젝트 vol. 2] '아름다운 추상' 제이미 리

2017.05.22(Mon) 17:01:20

 

[비즈한국] 추상은 구체적 형상을 빼버리는 것이다. 구체적 형상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실감나게 재현하거나, 신화 또는 역사적 사실 등의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그린 모양이나 모습을 말한다. 우리가 ‘회화’라고 했을 때 쉽게 떠오르는 형태가 분명한 그림 혹은 내용을 읽을 수 있는 그림이다.

 

따라서 추상은 형상이나 이야기가 없는 그림을 말한다. 그러므로 내용이 없는 추상화는 감상을 위한 미술이 아니다. 여러분이 순수 추상화를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추상화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 화면 구성이나 제작 방법 같은 걸 찾아내면 된다. 즉 점, 선, 면, 색채 배열의 조화로움이나 어떤 재료와 기법으로 제작했는지를 염두에 두고, 이것이 새로운지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이다. 이를 조형이라 부른다. 조형의 근본을 추구해가다가 그 끝에서 만나는 추상미술이 ‘절대주의’다. 이 계열로 이름을 얻은 러시아 화가 말레비치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흰 캔버스를 ‘흰색 위의 흰색’이란 제목으로 발표해 순수 추상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When October goes(가을의 끝자락): 61x46cm, 패널에 아크릴과 혼합재료, 2016년.


 

이때까지만 해도 추상은 더 나아갈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추상미술은 20세기 미술을 지배한 방식 중 하나로 살아남았고, 금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추상미술이 찾아낸 새로운 생존 방법은 추상적인 제작 방식에 다시 이야기를 집어넣어 표현하는 것이었다. 추상 방식에 어울리는 내용을.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감성적인 부분에 해당되는 다양한 감정의 표현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사랑, 불안, 공포, 장엄, 순수, 기쁨, 슬픔과 같은. 구체적 형상으로 그리기 어려운 이런 것을 표현하는데 추상적인 방식이 훨씬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제이미 리의 작업도 여기에 속한다. 그도 추상화를 그린다. 기법이나 재료에서 새로움을 찾고 이를 방법으로 만드는 추상화가 아니라, 추상적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추억을 표현하는 그림이다. 이런 점에서 추상표현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표현 방식은 상당히 개방적이다. 드로잉을 위한 다양한 재료는 물론이고 에어브러시까지 두루 사용한다. 기법의 스펙트럼도 넓다. 에어브러싱에 의한 분사 기법에서부터 번지기, 뿌리기, 기하학적 구성, 장식적 묘사, 사실 묘사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미지 표현에서도 진폭이 크다. 추상 이미지는 물론이고 연속적 문양에서 나오는 장식적 패턴 구성, 꽃이나 나비, 곤충의 형상까지 머뭇거림 없이 수용한다. 적극적인 표현 의지가 돋보이는 작가적 태도다.

 

Summer Snow(심해에 날리는 눈): 112x145cm, 캔버스에 아크릴과 혼합재료, 2017년.

 

 

그런데 작품의 결과는 밝고 유쾌한 기분이 드는 추상화다. 거기에 장식적 아름다움까지 보태고 있다. 삶의 긍정적 감정을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가 매력적인 이유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맞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거침없이 받아들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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