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스업] 문재인 대통령의 독서목록

[비즈한국]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여야 5당 원내대표 오찬을 할 때,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을, 김정숙 여사에겐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선물했다고 한다. 

책 선물은 우아하고 품격 있다. 적어도 자기가 읽어보고 감동받거나 매력적이라 여긴 좋은 책을, 그것도 상대에게 잘 맞을 만한 것을 고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읽어보지도 않은 걸 선물해서도 안 되고, 상대에 대한 이해 없이 급작스레 골라서도 안 된다. 선물의 가치가 돈의 액수가 아닌 상대를 생각하는 이해와 배려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볼 때 책 선물은 어려운 선물에 해당된다. 베스트셀러라고 무턱대고 사주는 책 선물은 센스 없다. 그래서 책은 애정 있는 사람 사이에서만 주고받는 게 좋다. 책 자체가 아닌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골랐을지를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쓰는 말 가운데 ‘책따’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으면 왕따가 된다’는 건데, 입시와 무관한 책을 읽는 걸 겉멋 든 행동으로 보고 기피하는 거다. 다 어른들 영향이다.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책을 끊고, 돈만 벌며 사회적 성공만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행태 때문이다. 책 읽을 시간 없다고 별의별 핑계를 다 대지만, 술 먹고 딴짓 할 시간은 흘러 넘친다. 그래 놓고 애들에겐 공부하라고 성화다. 참 무섭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공부 잘해서 명문대 가고 좋은 직장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며 출세하면 뭐하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편협하고,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에 빠져 있다면 공부 잘해서 뭐하겠느냐 말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힘으로 독서를 꼽았다. 원래부터 독서광으로 손꼽히던 사람이었으니 그의 대답은 그리 의외는 아니었다. 사상가와 정치가, 철학자의 책은 물론이고, 소설과 시, 심지어 성경까지도 애독의 대상이었다. 매일 잠들기 전 한시간 동안 독서를 하면서 각종 보고서와 정책 문건에 압도당한 뇌를 재충전시켰다는데, 그가 애독했던 책들로 셰익스피어의 고전 작품들이 꼽힌다. 

사실 좋은 책은 읽고 또 읽는다. 책을 통해 지식만 쌓는 게 아니라 휴식을 얻고 즐거움을 얻는 것이기에 읽은 책을 또 읽는 것이 주는 매력도 크다. 아예 휴가 때 같은 책만 늘 들고 가는 애서가들도 많다. 애서가는 일상에서 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기에, 애서가의 기질은 대대로 계속 물려가는 경우도 많다. 보고 자란 환경이 이래서 무서운 거다. 돈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강력한 유산일 수 있다. 자녀에게 책을 선물하는 부모, 책을 두고 ​부모와 ​토론하는 아이들, 이건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어떤 책을 읽는지가 그 사람의 인생과 ‘클라스’를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독서 목록을 처음 공개한 건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다. 독서광이자 명연설가로도 유명했던 그는 망명생활과 자택연금, 감옥투옥 등의 상황일 때도 방대한 독서편력을 유지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다독가로 알려졌는데, 그래선지 연설문에서 다독의 힘과 언어의 깊이가 늘 드러났다. 또 대통령의 독서목록은 국정 철학과도 연결되고,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와 지적 관심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로 앞으로 5년간 청와대에서 발표될 문재인 대통령의 독서 목록을 기대한다.

글쓰기와 말하기는 지위가 올라갈수록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가 된다. 남 앞에서 연설할 기회도, 매체와 인터뷰하거나 칼럼을 쓸 기회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때 언어 선택과 문장력은 독서의 영향이 크다. 유명 경영자와 정치지도자 가운데 유독 독서 예찬론자들이 많은 건 사회적 성공과 독서가 무관하지 않아서다. 책 많이 읽는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할 만한 자질을 가진 이들에게 독서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어쩌면 기본에 충실한 게 최고의 ‘클라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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