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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폭탄이 아닌 폭죽을

무기로 쓰여온 로켓이 이제 번영과 개척의 길로 가기를

2017.05.19(Fri) 15:12:14

[비즈한국] 아마 많은 아버지들이 그럴 것이다. 술 한잔 하고 들어와서는 잠든 자식들을 보거나 안거나 뺨을 부비거나. 늦은 귀가를 해도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라서 잠들지 않은 경우라면 이런저런 옛 이야기나 잔소리 아닌 잔소리로 애정을 표시하기도 할 테다. 

 

나의 아버지도 기운에 부쳐 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되기 전에는 그런 평범한 분이었다. 아버지의 단골 주제 중에서 내가 그래도 제일 재미있게 들었던 것은 군인 시절 미국에서 교육 받은 이야기다. 운 좋게도 육군 미사일 정비요원에 뽑혀서는 한국에서 그리고 미국의 미사일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미사일 발사대를 주로 정비하셨다고 한다. 미국이 넘겨준 중고 미사일이었지만 미사일을 운용하는 것도 정비하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던 가난한 나라에서 그 시작을 함께했음을 자랑으로 여기신다. 

 

아버지의 미국 시절 이야기 중에서 가장 놀라왔던 부분은 바로 브라운 박사에 관한 것이다. 그 유명한 로켓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이 아버지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우방국들에서 모인 미사일학교 학생들에게 짧은 강연이나 환영 인사 정도를 했었나 보다. 어린 나는 책에서나 보던 과학자를 먼 발치에서나마 직접 볼 수 있었던 아버지가 무척 부러웠다. 그런데 미사일학교에 왜 브라운 박사가?

 

V2로켓 모델을 들고 있는 젊은 시절의 브라운. 사진=마셜우주비행센터

 

미 육군 유도미사일학교가 있는 알라배마주의 작은 도시 헌츠빌에는 로켓/미사일을 연구개발하는 미 육군 레드스톤 병기창도 있고 로켓 발사체 연구를 주로하는 NASA의 마셜우주비행센터도 있다. 이 마셜우주비행센터의 초대 책임자가 바로 브라운 박사였기 때문에 그런 행운이 아버지에게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미국의 로켓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아폴로 계획에 사용된 새턴 5호 로켓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브라운 박사는 인류의 로켓 개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바로 이전 세대의 콘스탄틴 치올콥스키가 근대 로켓의 개념을 밝혀내고 독일의 오베르트, 미국의 고다드 등이 거의 같은 생각에 도달하여 로켓을 연구했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었다. 날개도 없는 것이 하늘을 날고, 공기가 없는 우주를 날아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로켓 비행 이론을 쓴 고다드의 박사 논문은 ‘뉴욕타임스로’부터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도 모르는 허황된 이야기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직전에 ‘뉴욕타임스’는 고다드에 대한 비평을 철회했다. 고다드에 대한 비평을 실은 지 약 50년 만의 일이었다).

 

애국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그런 형식의 기회를 빌려서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싶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베르트나 고다드 모두 자신의 정부에 로켓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제안했다가 거부당했다. 전쟁이 준 기회를 잡은 사람은 오베르트의 제자인 브라운이다. 대륙간 로켓을 넘어 달 로켓을 고안하던 브라운이지만 2차 대전 당시의 독일 군부가 원한 것은 강력한 무기였고 브라운은 충실히 이에 따랐다. 그가 만든 V2로켓의 폭격으로 약 1만 5000명의 희생자가 생겼다. 로켓을 제작하던 강제수용소에서는 제작과정에서 약 2만 명의 수감자가 사망했다. 당시 브라운은 나치 당원으로서 나치 친위대원이기도 했다. 세계적인 로켓 과학자의, 우주 비행 역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다.

 

브라운과 함께 핵심기술자들과 V2로켓의 완성품 및 주요 부품은 종전 후에 모두 미국으로 가게 된다. 전범으로서 처벌은 미루어졌고 그들은 미국의 핵심 연구 인력이 되었다. 남겨진 부품과 기술자들은 소련의 몫이었다. 우주 개발과 미사일, 양 부문에서 미국과 소련의 경쟁이 시작되었고 20세기 인류의 우주 개발 역사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물로켓을 날리며 깔깔대는 아이의 미소가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사진=온타리오대학 홈페이지


냉전은 끝났다지만 이젠 두 편으로 갈라져 겨루는 것이 아니라 제각각 겨루는 모양새일지도 모르겠다. 비용의 문제로 우주 개발과 탐사는 조금씩 제동이 걸렸다 풀렸다를 반복한다. 달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이 예산을 쏟아붓던 시절과 비교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인류는, 휘청거리면서도 밝고 위대한 역사의 길로 조금씩 가까이 걸어왔다. 로켓의 개발과 사용은 더 이상 무기가 아닌 번영과 개척의 길로 갈 수 있다. 물로켓을 날리며 깔깔대는 아이의 미소가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북한이 쏘아 올린 미사일이 뉴스에 등장하는 것도 이제 끝이면 좋겠다. 새로 바뀐 우리 정부와 대화의 기회를 만들려고 했다면 미사일이 아니라 폭죽으로 축하했으면 멋졌을 일을 꼭 그리 심통을 부려야 했나 모르겠다.

정인철​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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