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해 알파고 쇼크와 올해 대선을 거치며 ‘4차 산업혁명’이 핫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나 장밋빛 혹은 잿빛 전망만 있을 뿐 정작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명확히 짚어주는 글은 많지 않다. ‘비즈한국’이 창간 3주년을 맞아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짚는 특집을 준비했다. 이를 통해 독자 여러분이 한발 앞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4차 산업혁명’의 정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의 범주에 드는 현상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4차 산업혁명’으로 볼지 말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뿐이다.
개념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왜 ‘4차 산업혁명’을 하려는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자. 가장 큰 이유는 ‘자본의 이익’이다. 이를 신자유주의와 연결해 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WTO가 출범하면서 전 세계에 자유무역의 틀이 잡혔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선진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개도국의 싼 인건비를 이용해 생산하는 글로벌 분업화가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나이키가 베트남에 공장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 필요하다. 베트남에 공장을 세울 때 외국자본을 차별하는 법적 규제가 있거나, 베트남에서 생산된 운동화를 유럽으로 수출할 때 과도한 관세가 붙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WTO는 전 세계 공통의 무역규범을 만들어 이런 장벽을 없앴다. 자본이 자유롭게 전 세계로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로 불리기도 했다.
# ‘보다 싼 임금’ 찾던 자본의 대안
WTO 규범이 필요했던 이유는 ‘보다 싼 임금’을 찾아 옮기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한때 나이키의 하청공장이 있었지만, 산업이 발달하고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 이후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겨가며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WTO가 없었다면 개별 국가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투자에 대한 보장을 받아야 했겠지만, 164개국이 가입한(2016년 7월 기준) WTO 공통규범에 따라 자본은 자유로이 투자 대상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싼 임금’ 전략은 한계가 있다. 공장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지식, 성실성, 규율 등을 체득한 노동자를 보유한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대체할 만한 나라가 나타나지 않았다. 모디 인도 총리는 ‘메이크 인 인도’를 표방하며 인도를 새로운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문맹률이 높고 야당의 반대라는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마침, 4차 산업혁명의 범주에 드는 로봇, 인공지능, 3D 프린터, 사물인터넷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싼 노동력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해외공장이 아닌 자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드는 역전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경제적 동기가 4차 산업혁명의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아디다스는 2015년 말 개도국이 아닌 독일 안스바흐에 신발 제조공장을 설립했다. ‘스피드팩토리’로 명명된 이 공장의 제작과정을 유튜브에서 살펴보면, 과거처럼 사람이 가죽을 본드로 발라 붙이는 과정은 사라지고 자동화된 재봉틀이 운동화 갑피를 직조한다. 그리고 합성수지로 된 얇은 보강재를 군데군데 기계가 프린트한 뒤 뜨거운 롤러를 통과시키면 갑피가 완성된다. 단, 갑피를 입체 형태로 재봉하는 것만은 사람이 한다. 이후 로봇이 갑피와 밑창을 붙이면 운동화가 완성된다.
최근 나이키, 아디다스의 운동화 신제품 디자인을 보면 대부분 가죽이 아니라 직조형태다. 4차 산업혁명에는 자동화공정뿐만 아니라 자동화에 적합한 제품 콘셉트에 대한 고민도 함께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스피드팩토리의 장점은 개인 맞춤형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중국·베트남에서 대량생산될 때는 표준화된 족형에 따라 만들어져 색상과 사이즈만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디다스는 발 사이즈와 몸무게 등에 최적화된 밑창을 3D 프린터로 만드는 모델을 개발했다. 이런 과정을 아디다스는 ‘퓨처크래프트(futurecraft)’로 이름 붙였다. 개인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신발은 양산형 모델에 비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즉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려는 자본의 전략과 4차 산업혁명은 잘 어울린다.
독일에서 ‘인더스트리 4.0’ ‘4차 산업혁명’ 논의가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자동화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독일이기 때문이다. 공장자동화 세계 1위 업체 지멘스(Siemens)와 자동화로봇 세계 1위 업체 쿠카(Kuka)가 독일 기업이다(쿠카는 2016년 중국 메이디그룹에 매각됐다).
# ‘오프쇼어’에서 ‘온쇼어’로 유턴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벼락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BMW 공장 다큐멘터리에서 섀시 조립공정을 보면 2012년 전까지는 사람이 직접 도어를 부착했다. 그러나 2012년 버전에서는 주황색 몸체를 지닌 쿠카 로봇이 센서를 이용해 도어패널을 부착한다. 패널을 운반하는 로봇, 위치를 측정하는 로봇, 나사를 박는 로봇, 본드를 바르는 로봇의 움직임들이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리드미컬하다.
즉 공장자동화는 윈도7이 윈도8, 윈도10으로 업그레이드되듯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새로운 공장을 지을 때마다 새로운 자동화 공정을 추가해 나가면서 자동화율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 BMW 신공장의 섀시공정 자동화율은 90% 이상이다. 이런 점진적 과정이 축적되면 해외공장 대신 자국 내 공장 설립이 더 유리해지는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오며, ‘지금부터 4차 산업혁명’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 함의는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각국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반길 확률이 크다. 해외공장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re-shore)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동화율이 높아질수록 매출액 대비 고용인력 비율은 떨어지지만, 해외에 공장이 있으면 국내 고용이 0인 데 비해 자국 내 공장에서라면 작게나마 고급 일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공장 주변의 상권이 활성화되고 물류와 메인터넌스(유지·보수) 서비스 등의 파생산업이 생겨나게 된다.
현재 선진국은 국내 문제, 특히 실업 해소를 위해 일자리가 필요하다. 싼 임금을 찾아 개도국으로 진출하는 오프쇼어(off-shore) 러시가 수십 년간 이어지다 보니 자국 내 일자리가 감소한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 보더라도 미국 내 공장 설립을 강력하게 기업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기업들이 선진국의 비싼 인건비를 해결하려면 결국 자동화율을 극도로 끌어올려야 한다.
반면 개도국은 선진국 기업의 생산기지를 통해 제조업 역량을 키우는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 슈밥 교수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저렴한 노동력이 더는 기업의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전 세계 제조업이 선진국으로 회귀하는 리쇼어링 현상이 발생한다면 저소득 국가는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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